야간 미화원 (7)

‘산재’라는 말을 꺼내자 사무실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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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13:48 | 최종 업데이트 2015-09-09 13:49

33.
미화원이 하는 일, 그중에서도 ‘일상’은 아무나 해도 상관없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일에 불과하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현상은 이에서 비롯한다. 그걸 생각하노라니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이 생각났다. 책의 12장에서 이 천재적인 철학자들은 「1227년-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라는 이름으로 유목민적인 기술과 토착민적인 기술을 구별한다. 아래의 글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기술’ 및 그것과 관련한 문제점 일부를 파편적이나마 쉽게 설명할만한 사례라 여겨진다.

중세 봉건주의가 붕괴를 하였으나, 기계제 대공업이 발전할 정도로 성숙되지 않은, 자본주의 이행시기에는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충분히 착취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의 매뉴팩쳐는 노동과정이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과 관습에 의한 생산방식과 긴 수련기간에 종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노동자들의 불복종 행위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Marx, 2002: 496). 당시의 조건은 노동자에게 훨씬 더 유리했고 아동노동도 노동과정에 적합하지 않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Marx, 2002: 364-5). 따라서 이 시기에는 노동자들이 자본의 질서에 종속되지 않음으로써 자본가들을 경제관계의 힘만에 의해서는 충분한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할 수가 없었으며, 폭력을 동반한 국가권력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Marx, 2002: 362). 따라서 당시의 노동법은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릴 것을 강제하는 가혹한 법률이었다.

한편, 자본주의가 완전히 성립하면 이러한 경향은 완전히 반대가 된다. 기계제대공장이 보편화되기 시작하고, 숙련노동자가 비숙련노동자로 대체되면서 노동과정에서의 불복종은 타파된다. 개별적인 노동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자본에 종속되게 되며, 이제 이들의 생계는 전적으로 고용 여부에 달려 있게 된다. 이제 자본가는 국가 폭력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제한적인 노동시간 연장과 아동 및 여성의 고용이 이루어진다.

―임덕영, 「한국 자본주의 이행시기의 부랑인 및 부랑인 정책에 대한 고찰 : Marx 이론을 중심으로」, p12.

34.
탄력을 잃은 고무줄처럼 시간이 느리고 길게 늘어지는 느낌이다.?내쳐 잠을 잤는가 싶어서 눈을 뜨면 겨우 두세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허리가 아파서 그냥 누운 채로, 머리맡에 있던 책을 들고 접어둔 페이지를 찾아서 뒤적인다. 그러다 팔이 아프면 인터넷에 들어가 북캐스트를 켜서 듣고 싶은 책을 골라 듣는다. 요즘 나는 소설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 푹 빠져있다. 다른 북캐스트와 달리, 여기는 진행자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출연자 특유의 느린 말투 등으로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없다. 리뷰의 형식을 취하는 척하면서 특정 출판사의 신간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직접 글을 쓰는 소설가여서인지 그는 맛있고 좋은 책, 본문 중에서도 알짜배기 부분만을 골라 읽어주는 재주가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무슨 짓을 하든 느긋하다.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을 받고서 무얼 먼저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느낌이다. 매달 막아나가야 할 돈 걱정 따위는 멀찌감치 미뤄둔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다면 그걸 최대한 누리며 살자. 도대체 만사 걱정 없는 삶이 있기나 한가 말이다.

적어도 일 년은 작정했던 미화원 일을 중도에 그만두었다. 달로는 여섯 달이니 반년을 겨우 채우고 만 거다. 그러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단거리 경주하듯 살았다. 24시간을 쪼개서 일하고, 수업하고, 책보고, 글 쓰고, (가끔) 살림 살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같이 아슬아슬한 생활이었다. 미쳤나? 미쳤구나! 아니야, 넌 해낼 수 있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 땐 속으로 그런 주문을 외곤 했다.

사춘기에 TV로 즐겨본 만화영화가 <캔디>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로 시작한 캔디의 주제가는 “울면 바보다, 캔디 캔디야!”라면서 끝이 났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조용필의 노랫말과 통하는 그 노래를 주문처럼 들으며 성장했다. 한낱 만화영화 주제가가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를 여태도록 지배하는 느낌이다.

토끼잠을 자면서 틈틈이 일하고 책을 읽는 건 오랜 습관이었다. 마흔이 넘어 시작한 공부에 서재 같은 건 엄두를 낼 처지가 아니어서, 아이들이 TV를 보는 옆에서 책 읽고 글을 써서 등단도 했다. 눈치 보지 않고 실컷 책만 읽고 싶어서 한 등단이었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직업이 되었으니 소원을 절반은 이룬 셈이다. 경주마는 곁눈질을 못 하도록 눈 옆을 가린다. 누구도 강요한 적 없건만, 나 스스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남들 보기엔 열정적이거나 별났겠고, 나 스스로는 결핍과 부재를 확인하는 연속이었다. 결핍(욕망)에 시달리며 달려가지만, 도착한 곳은 언제나 ‘여기가 아닌데(부재)’라는 실망.

문화센터의 ‘키친kitchen 방’에서 나온 쓰레기가 그날따라 너무 무거웠다. 강사가 사용하는 싱크대 양쪽에 놓인 커다란 쓰레기통에는 젖어서 불어터진 음식물 쓰레기가 넘치도록 담겨 있었다. 비닐봉지째 들어 올리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혼자 들기가 벅찼지만, 누구라도 하는 일이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날부터 슬슬 아파져 오기 시작한 허리가 하루하루 심해져서 나중엔 전신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소염진통제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때뿐이었다.

며칠 쉬면 낫지 않을까 싶었으나 조퇴는 물론이고 결근도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앓는 소리를 하자 애써 챙겨놓은 휴무일을 바꿔줘야 하는 불똥이 떨어질까, 언니들은 신경이 날카로운 눈치였다. 더군다나 출근자들 수에 따라 작업량이 떨어지니, 아프면서 숫자만 불리는 사람은 자기 몫을 남한테 떠맡기는 꼴이었다. 중간 관리자 입에서 그만두려면 하루빨리 그만두는 게 낫다는 말이 어물쩍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아무나 해도 상관없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자로서의 비애를 맛본 며칠이었다.

구차하게 빌고 든다면 며칠이야 사정을 봐줬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몸이 영판 고장 나는 일과 미화원 수입을 저울질해보니 여기서 접는 게 수였다. 허리에 탈이 나서 책상에 앉지 못하면 어떻게 책을 읽고 글을 쓰나!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사직서를 쓰는 날,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근육 계통의 질병은 규정이 모호해서 산재로 인정받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고 했다. 결국,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산재’라는 말을 꺼내자 사무실 사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소장은 ‘건강’이라고 쓴 사직의 이유를 화이트로 지우더니 ‘개인사정’이라 고쳐 쓰기를 요구했다. 찜찜했지만 말대로 써주었다. 일련의 과정이 진부한 노동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노동자들이 속한 사회 구조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옮긴 병원에서는 척추의 5번과 6번이 협착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X-ray 촬영한 경비를 합해서 병원비가 6만 원이 넘었다. 허리에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해주며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쏟아지는 졸음을 물리쳐가며 아득바득 써서 보낸 시집의 해설비가 입금되자마자 뭉텅, 헐려 나갔다. 로또나 사서 긁어봐? 책 좀 읽어서 세상을 배웠다는 인간이, 이런 상황에 마침맞은 농담이라 떠올린 게 고작 그거였다.

35.
백화점을 나서려니, 친한 언니들과 칼국수 한 그릇 나눠 먹을 새도 없이 갑자기 그만두는 게 섭섭했다. 대신에 음료수라도 사람 수대로 사서 놓고 오려고 슈퍼마켓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출퇴근 시간에 엇갈리면서 낯이 익은 주간 반 언니가 대걸레로 계산대 주위를 닦고 있었다. 작업복을 벗은 모습이 평소와 사뭇 달라 보였던지 언니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서먹해 했다. “언니, 이제 일 그만둬요.” 나는 살갑게 손을 잡았다. 언니가 “잘됐네. 아는 척해줘서 고마워요.”라며 말을 흐렸다.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돌아서는데 묘하게 울컥하는 기분이었다. ‘뭐가 고마운데, 언니?’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나 역시 상황에 따라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게 차별과 배제에 상처 입어온 그 언니의 자존감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36.
현재진행형으로 쓰던 이 글의 시제를 그대로 끌고 갈까 망설였다. 하지만 고작 5~6개월의 미화원 경험을 가지고 마치 오래 겪고 있는 사람처럼 써나간다면 그건 속이는 글에 가깝다.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아직 털어놓지 않은 경험이 많고, 이제는 미화원 친구들도 제법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최근, L백화점의 주간으로 옮겼다. 그 친구와 내일 저녁 약속이 있다. 나는 L백화점의 근무환경과 그녀가 이번에 시작한 간병사자격증 공부가 궁금하다. 바라건대, 나는 이 글이, 내 모습은 희박해지고 ‘우리’의 목소리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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