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미투’를 위협하는 ‘본말전도자’들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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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11:35 | 최종 업데이트 2018-03-05 11:55

‘미투(#미투, #me_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폭로가 잇따랐고 사회 각 분야로 옮겨붙고 있다. 모두가 ‘미투’라는 말을 알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이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났다. 그 오해들을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첫째, ‘미투’ 운동에서 ‘미투'는 ‘나도 당했다’가 아니다. 그것은 ‘나도 고발한다’라는 의미로 읽혀야 한다. ‘나도 당했다’로 해석될 경우 발언자를 오직 피해자로만 대상화하기 쉽다. 수많은 ‘미투’들, 그것은 순수한 피해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폭력을 증언하는 주체의 목소리이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다.

둘째, 한국의 ‘미투’ 운동은 방금 시작된 것이 아니다.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 폭로 이후 본격화된 ‘미투’ 해시태그 운동을 단지 모방한 운동도 아니다. 물론 최근 몇 주간의 ‘미투’ 운동은 안태근 검사의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 의해 촉발되었지만, 그것을 이 거대한 흐름의 기원으로 놓을 수는 없다. 단지 ‘미투’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성폭력 고발은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처절하게 지속되어온 저항의 하나였다. ‘미투’ 운동의 기원을 찾으려면 우리는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동시에 피해자의 심신에 새겨진 상처가 공개적으로 발화되는 찰나들 하나하나가 ‘미투’의 기원적 순간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셋째, ‘미투’ 운동은 남성을 단죄함으로써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을 최종목표로 삼는 운동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을 선언하는 운동이다. ‘인간의 존엄’ 같은 말은 너무 당연하거나 진부해 보여서 망막과 뇌리에 잘 꽂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미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원칙을 체화할 수 없다면 ‘미투’ 운동의 진정한 의미 역시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미투’ 운동은 무엇보다 먼저 피해자와 나의 동일성을 인식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길 요구한다. 가해자에게 분노하는 일은 당연하고 또 필요하지만 그것이 정작 피해자를 고립시키거나 소외시키는 형태여서는 안된다.

그런데 만약 피해자의 존엄보다 ‘다른 무언가’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 ‘미투’ 운동에 관해 떠들어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몇 주간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광경을 목도했다. 먼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경우. 2월 24일 홍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소위 ‘미투’ 운동이 좌파 문화권력의 추악함만 폭로되는 부메랑으로 갈 줄 저들이 알았겠습니까?”

홍 씨가 저 말을 한 바로 그날, 방송인 김어준 씨는 어느 팟캐스트에서 ‘미투’ 운동이 진보 진영에 대한 ‘공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이렇게 말한다.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서 등장시켜야 되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누군가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 타깃은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다.”

홍준표 씨의 발언과 김어준 씨의 발언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나는 안그렇지만) 정치적 적대자는 ‘미투’를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 상상한다는 점에서, 홍준표와 김어준은 완벽히 일치하고 있다. 물론 이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저 둘은 정치적 포지션만 다를 뿐 젠더 이슈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똑같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둘은 ‘미투’ 운동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미투’ 운동을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할 따름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명 국민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안중찬 씨는 2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제가 꽃다운 나이에 최태민 목사에게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40년 넘는 세월 동안 그저 뭣도 모르고 참아왔다. 그때 제대로 고발하지 못한 바람에 그 딸에게도 발목이 잡혀 나라까지 말아먹었다. 저도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글 밑에 “503호에게 ‘미투’를 허하라”라는 해시태그도 달았다. ‘재치 있는 풍자’라는 칭찬 댓글들이 무수히 달렸다. 하지만 고통받은 피해자를 모욕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나왔다. 며칠 뒤 안씨는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글을 삭제했다.

‘미투’의 본질적 의미를 지엽말단화하면서 ‘미투’를 진영논리에 옭아맨다는 점에서, 홍준표 씨, 김어준 씨, 안중찬 씨는 똑같이 본말전도(本末顚倒)를 저지르고 있다. 본말전도의 사고방식은 대체로 해롭지만, 특히 ‘미투’ 운동의 맥락에서는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저런 진영논리 프레임은 “내 고발이 정치 공작으로 비치면 어쩌지” 하고 머뭇거리게 함으로써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려던 미래의 고발자들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진보진영 남성들의 추악한 면모가 곧 진보의 이상을 버릴 이유는 될 수 없다. 진보는 윤리적 무결함이 아니다. 잘못을 ‘지금 즉시’ 고치려는 태도, 그게 진보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변화의 요구에 대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동의하는데 시기상조다” “동의하는데 나쁜 놈들이 악용할 것이다.” 명심하라. 이렇게 말하는 ‘본말전도자’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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