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민을 후원합니다] 이 참호에 모래주머니 하나를 /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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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2019년까지 <뉴스민>에 칼럼을 썼다. 처음엔 개인적 인연이었지만, 기사를 하나하나 읽어보며 알게 됐다. 이 작은 언론사가 대구경북이라는 전쟁터의 대피소이자 최전방 참호라는 사실을. 이 숨 막히는 우익의 점령지에서, <뉴스민>은 그야말로 치열하게 버티고 있었다. 오해하지 말자. 대구경북을 무슨 사람이 못살 지옥으로 타자화 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전체가 우익의 점령지 아닌가. 대구경북은 다른 데에 비해 ‘밀도’가 좀 높을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을 ‘이중 불균형 사회’로 규정한다. 방금 말한 것처럼 사회 전체가 우경화, 즉 이념상 지극히 오른쪽으로 쏠려있다는 점에서 불균형이 있고 또 사회의 모든 자원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심-주변부 불균형도 극악한 수준이다. 오래 전 미국의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정치를 두고 “소용돌이의 정치”라 명명한 적이 있다. 모든 게 중앙(서울)으로 빨려 올라가는 특유의 현상을 절묘하게 포착한 말이다. 정치만이 아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이 다 서울이라는 중심에 집중된 사회가 한국이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은,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거대한 소용돌이’ 같은 사회다.

이 상황은 특히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진보파에게는 최악의 조건이다. 이념적 적대자들에게 포위된 상황에 더해서 저항의 자원들조차 소위 ‘중앙’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 버려서 조직화도 어렵다. 그런데 <뉴스민>은 지역에서 올곧게 진보의 목소리를 내며 10년 동안 끈질기게 버텼다. 보통 이렇게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를 우리는 ‘기적’이라 부른다. 그렇다. <뉴스민>은 ‘대구의 기적’이자 ‘한국 언론의 기적’이다.

하지만 이 매체의 생존이 기적이라 해서, 만들어온 이들의 역량까지 기적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예컨대 <뉴스민>은 코로나 시국이 한창이던 2020년부터 2021년 초까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라는 이름의 심층기획 보도를 내보냈다. 기획기사는 국내에서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유행한 대구, 경북 지역의 이주민, 이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보호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인민의 삶이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얼마나 위협받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역작이었다.

이 보도로 <뉴스민>은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하는 제10회 인권보도상 본상을 수상했다. 물론 충분히 상을 받을만한 좋은 기획이었지만 설령 상을 받지 못했더라도 반드시 널리 알려지고 상찬 받아야할 시도였다. 무엇보다 이 기획은 <뉴스민>이라는 이름에 특별히 걸맞았다. 이 언론이 대변하고자 하는 ‘민’은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힘겨운 사람들, 늘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 거대 정당과 언론이 결코 마이크를 쥐어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소위 메이저 언론들은 늘 그래왔듯, 코비드 19 유행이라는 미증유의 기간에도 이른바 ‘중산층 교양시민’의 불편과 불평을 주로 기사화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언론으로부터 일체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은 코로나 정국 동안 더욱더 ‘투명’해졌다. 부유하고 힘센 ‘중앙 언론’의 이런 직무유기를, 대구의 작은 언론인 <뉴스민>이 현장 취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발함과 동시에 한국 언론 전체의 수준을 ‘멱살 잡고 끌어올린’ 셈이다. ‘코로나19 대구 보고서’는 언론이 왜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는지, 또 어떤 사람들의 관점에서 취재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역작이었다.

안타깝게도, <뉴스민>은 여전히 존폐의 기로에 있을 정도로 운영이 어렵다. 홍준표 대구시장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이후 다른 언론이 평범하게 받고 있는 모든 지원이 끊긴 상황이다. 언론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수록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참 남루하지만 그 또한 인정해야할 우리의 현실이다. 언론이 정부의 입김과 자본의 압력에서 자유롭게, 오롯이 시민을 대변하기 위해선 결국 시민 개개인의 후원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는 후원자를 1,000명(28일 기준 738명) 모으면 최소한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보다 많은 이들이 <뉴스민>이라는 참호에 모래주머니 하나를 얹어주시길 소망한다. 그래서 바라건대 창간 20주년에는 <뉴스민>을 ‘대구의 기적’이 아닌 ‘시민의 각성과 결기가 만든 필연’이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싶다.

2019년 연말 <뉴스민>에 마지막으로 송고했던 칼럼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적어본다. 내가 참 좋아하는 시구다.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우리다.(We are the one we’ve been waiting for.)” 메시아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사진=박권일 제공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