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경북민심번역기] “문재인 잘하냐” 물음에 설전 벌인 청송 노인들

한 살 연하에게 ‘이 어른’ 존칭하던 노인은
“문재인 대통령 잘하는 것 같아요?” 질문에 설전
‘정당’ 보다 사회 경력 본다는 주민들
그렇지만, 한국당 독점 구조 완연

12:13

“나는 잘하는 거 같애, 보낼 거 보내고 좀 바꿔야 해”

“좀 심한 건 있어, 적폐 깃대를 들고 막 잡아넣는데, 안돼”

“그럼, 뭐. 대구은행장 부정으로 채용해주라고 한 것도 다 나둬야 하나”

“열(잡아넣을) 거 넣지만, 김경수는 와 빠꾸시키노(되돌리나)”

“내가 시켰나? 경찰이 시켰지. 아니니까 빠꾸시켰지”

“여당에서 빠꾸시켰잖아”

“여당에서 법을 다스리질 않는데, 무슨”

“어허, 이 사람 참”

“그래, 매도하면 안 돼”

“김경수가 댓글로 그랬는데,
한나라당(자유한국당)에서 특검하자니까, 빠꾸시키고”

“특검하자 캤는데”

“하자 카긴 뭘 하자캐”

“TV 안보나”

“조건 없나?”

“조건 없이 한다 카더라.
아들 노는데 (일자리)예산 두드려주면 한다 카는데, 뭐, 나쁘나?
그럼 뭐가 하노?(뭘 가지고 하나?)
손가락 빼가 하나. 젊은 사람들 취업 안 되는데”

경북 청송읍 청송시장 인근 포목점, 팔십 줄에 접어든 두 노인이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은 청송에 800세대가 산다는 황가(家)네 일족이라고 했다. 77살이라는 황 씨는, 76살이라는 황 씨에게 꼬박꼬박 ‘이 어른’이라고 존칭했다. “항렬로 따지면 이 어른이 할아버지뻘이라” 77살 황 씨가 말했다. 77살 황 씨는 “황가가 청송에서 단일 본(本)으로는 제일 많이 살아. 한 800세대 정도라”라고 덧붙였다.

청송에서 만난 두 노인 이야기
한 살 연하에게 ‘이 어른’ 존칭하던 노인은
“문재인 대통령 잘하는 것 같아요?” 질문에 설전

<뉴스민> 6.13지방선거 경북민심번역기 여섯 번째 방문지로 경북 청송을 찾았다. 청송은 경북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적은 도시다. 2016년 기준 2만 4,262명. 이 중 34.1%, 8,271명이 65세 이상 고령 인구다. 고령 인구 비율만 놓고 보면 경북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평균연령은 53.5세로 의성(55.7세)-군위(55.3세) 다음이다.

<뉴스민>이 찾은 9일은 마침 청송 장날이었다. 시끌벅적하게 장날 분위기를 냈지만, 시장을 찾는 사람은 역시 대부분 노인이었다. 두 황 씨 노인을 만난 포목점은 시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한 살 어린 황 씨에게 77살 황 씨가 꼬박꼬박 존칭하면서도 설전을 벌이게 한 질문은 “문재인 대통령은 잘하는 것 같아요?” 였다. 77살 황 씨는 “잘한다”고 평가했지만, 76살 황 씨는 “심하다”면서 불뚝했다.

▲경북 청송읍에서 만난 주민들

두 황 씨는 2012년 대선에서 동일하게 박근혜를 지지했다. 당시 청송에서 박 씨 득표율은 82.8%. 청송 사람 10명 중 8명은 박 씨를 지지했다. 두 황 씨의 선택은 특별하지 않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6년 만에 그 선택은 77살 황 씨에게 “손가락을 ‘뿐지르고(분지르고)’ 싶은” 선택이 됐다. 황 씨는 “역대 대통령에 이런 법은 없어요. 박근혜는 그랬으면 안 돼”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76살 황 씨는 달랐다. 77살 황 씨의 실망을 전해 듣던 76살 황 씨는 “문재인도 끝나봐라”라고 무심하게 툭 뱉었다. 76살 황 씨는 “적폐청산을 그런 식으로 해가(하면) 안 돼. 자기네들이 적폐가 훨씬 많은데”라고 말했고, 77살 황 씨는 “그럼 우예해야(어찌해야) 하노, 상장 줘야 하나? 대안을 한 번 내봐라”라고 맞섰다.

두 황 씨의 이견은 문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 문제로 단순하게 치부할 순 없어 보였다. 76살 황 씨는 대화 내내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반면, 77살 황 씨는 싫고 좋음에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었다. 대화의 주도권은 77살 황 씨가 갖고 있었고, 76살 황 씨는 짧은 말로 맞장구를 치거나 불뚝거리기만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그랬다.

77살 황 씨는 “나는 홍 대표는 지지 안 합니다. 가만히 점잖게 있으면, 말이 없으면 금인데. 저건 뭐 은도 안 되고, 동도 안 될 거 같애. TV 보고 하는데, 맨날 좌파라고 하거든? 어디 가서는 뻘갱이 많다 하지. 당 대표로선, 내가 자격까지 운운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건 조금 그래”라고 말했고, 76살 황 씨는 “지나친 감이 있어”라는 말로 동조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의견이 갈린 두 황 씨 노인은 홍 대표에 대한 평가에서 의견을 같이했고, 후보를 선택하는데 정당보다 사회 경력이 중요한 고려 요소라는 데도 의견을 함께했다. 76살 노인은 “사견입니다만, 세금을 알고 공직에 다년 경험이 있는 자(가 좋다), 공직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도둑질을 해도 크게 못 해. 좀도둑 밖에 못 해”라고 정당보다 공직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직에 있었는지가 중요한 결정 요소라고 말했다.

‘정당’ 보다 사회 경력 본다는 주민들
그렇지만, 한국당 독점 구조 완연
6회 선거 중 다섯 차례 한국당 군수 당선
역대 군수 5명 중 4명 임기 중 직위 상실

두 황 씨 노인뿐 아니라 이날 청송에서 만난 주민들 다수는 선거에서 ‘정당’은 특별한 고려 사안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사회 경력이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했다. 청송시장에서 만난 이종현(62, 여)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 씨는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뭐냐는 물음에 “그 사람이 사회에서 한 일. 전직, 그런 걸 본다”고 답했다.

▲뉴스민은 9일 청송읍 청송시장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청과상을 운영하는 78살 여성도 “정당은 안 봐. 사람 좋으면 되지”라고 말했고, 시장 인근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여성도 “옛날부터 (정치를)해온 사람을 뽑고 싶지. 경력 있고, 청송 위해서 일한 사람을 뽑고 싶지”라고 정당보다 경력을 먼저 언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방선거 당선자 연혁을 살펴보면 청송 역시 한국당 독점 구조가 완연하다. 군수는 1995년 1회부터 2010년 5회까지 모두 한국당 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현직 한동수 군수가 2014년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당시 새누리당이 청송을 무공천 지역으로 정하면서 생긴 결과다. 한 군수는 2007년 재보궐과 2010년 5회 선거에서 모두 한나라당 공천으로 당선됐다.

한국당 공천을 받고 당선된 청송 군수들은 현직 한동수 군수를 제외하곤 모두 임기 중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사 처벌을 받거나 구속됐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6회를 제외하면 다섯 차례 정규 지방선거와 두 차례 재보궐 선거에서 모두 군수 후보를 공천했고 당선됐다. 한 군수 역시 현재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정당을 보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거나, 한국당 공천 후보의 경력이 월등히 뛰어났다는 의미가 된다.

6.13 지방선거 한국당 공천 잡음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민주당 12년 만에 군의원 후보 1명 낼 듯

곧 다가올 6.13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일 가능성은 높다. 다른 정당에서 언급되는 군수 후보가 없으면서 한국당 후보 무투표 당선 가능성도 언급됐다. 하지만 한국당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일면서 무소속 후보가 난립할 가능성이 열렸다. 이미 심상박 전 군위 부군수가 지난달 23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한국당이 공천 결정한 후보는 윤경희 전 군수다. 윤 전 군수는 2006년 4회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임기 1년을 겨우 채우고 2007년 선거법 위반, 횡령 혐의로 형사처벌 받고 직을 잃은 바 있다. 윤 전 후보는 두 황 씨 노인이 못마땅해한 ‘사업가 출신’ 후보다.

반대로 윤 전 군수를 지지하는 주민도 있었다. 시장 인근에서 만난 88살 남성은 윤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력에 대해 “그 사람이 돈을 먹은 게 아니고 어른들한테 줬는데 고발이 됐잖아”라며 “요번엔 그 사람이 돼야 해”라고 말했다. 남성은 “그 사람을 군수로 세우면 청송이 고향이고 청송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서 윤 전 군수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과를 속단하거나 예단할 순 없다. 분명한 건 이번에도 청송 군민들은 한국당과 무소속 외에 다른 정당 후보자를 선택할 기회를 얻진 못할 거라는 거다. 현재까지 등록한 예비후보자를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군의원 선거에 각 1명씩 나선 것을 제외하면 다른 후보자가 없다.

작지만 청송에서도 ‘변화’를 언급하는 사람은 있다. 청송읍에서 34년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권선아(59) 씨는 “변화가 되어야 하는데, 청송에는 한국당밖에 모르니까 뿌리가, 어른들부터···. 젊은 세대는 변하고 있어요. 우리 아들부터 변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들부터 변하고 있다는 권 씨는 스스로도 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지지하는 정당이 많이 활동하는 거 같냐”는 물음에 “요즘은 두드러지게 하는 것 같더라”고 여운이 남는 답변을 했다. 민주당은 2006년 이후 12년 만에 이곳에 군의원 후보를 냈다.

[청송=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취재팀]
영상: 박중엽 기자, 김서현 공공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취재: 김규현 기자, 이상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