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경북민심번역기] “홍준표 쫓가내야”…‘인물’ 강조하는 포항시민들

경북 최초 민주당 시장, 진보정당 시의원 배출한 포항
지진 진원지 마을 할머니들, “투표 갈지 말지 고민”
'당'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
‘홍준표’ 때문에 한국당 지지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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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19:22 | 최종 업데이트 2018-05-14 19:48

할머니는 여전히 마을회관에 있었다. 11일 낮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포항 흥해읍 용천1리 마을회관 옆에는 반년 전 봤던 파란 꽃무늬 보행기가 세워져 있었다. 마을회관 바로 앞에 찢어지듯 무너져가던 할머니의 흙집은 모퉁이 돌담을 조금 남기고 사라졌다. 집터에는 깨끗한 컨테이너 집 한 동이 섰다.

오순주(89)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포항 지진으로 집을 잃었다. 흙으로 지은 집은 ‘찢어졌다’. 그때부터 마을회관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 보조로 제공된 컨테이너 집에는 아직 수도, 하수, 정화시설이 연결되지 않았다. 마을회관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할머니는 “곧 해주겄지요”라면서 기자들을 맞았다.

‘경북민심번역기’ 일곱 번째 방문지 포항
경북 최초 민주당 시장, 진보정당 시의원 배출
지진 진원지 마을 할머니들, “투표 갈지 말지 고민”
“전부 도둑놈만 북적북적. 믿을 사람이 누가 있노!”

11일, <뉴스민> 6.13 지방선거 기획 ‘경북민심번역기’ 일곱 번째 방문지는 경북 포항이다. 포항은 지난해 지진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았지만, 역대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봐도 흥미로운 도시다. 포항은 경북 최초 민주당 시장과 최초 진보정당 시의원을 배출했다. 1995년 1회 지방선거에서 포항 시민들은 민주당 후보 박기환 씨를 시장으로 뽑았다. 2006년 4회 선거에선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이 각 6명씩 시의원 후보를 냈는데, 민주노동당 후보 2명을 시의원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뿐인 도시이기도 하다. 박기환 씨 이후 모든 시장은 자유한국당이 석권했고, 시의원 역시 한국당이 절대다수다. ‘최초’ 이후에는 ‘역시’라는 결과만 내놓고 있는 셈이다. 그랬던 포항의 민심은 어떨까? <뉴스민>은 포항의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포항 지진 근원지이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고향 마을과 멀지 않은 용천리를 6개월 만에 다시 찾았다.

▲할머니들은 지방선거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투표하러 갈 거냐는 물음에는 “갈지 말지 생각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용천1리 마을회관에는 오순주 할머니를 포함해 할머니 6명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낯선 기자들의 방문에 할머니들은 순간 경계심을 보였지만, 이내 손자, 손녀를 대하듯 이야길 풀어냈다. 할머니들은 지방선거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투표하러 갈 거냐는 물음에는 “갈지 말지 생각 중”이라고 답했다.

“투표하러 가실 거죠?”

“아직 누구 찍을지 정하지도 안 했고, 갈지 말지도 아직 생각 중이라”

“왜요? 왜 갈지 말지 생각 중이에요?”

“가면 뭐하나. 아무리 찍어줘도 다 한 가진데”

선문답 같은 대답이 이어지는데, 오순주 할머니와 ‘갑장(동갑)’이라는 할머니가 불쑥, “전부 도둑놈만 북적북적 거리지, 믿을 사람이 누가 있노!”하고 내질렀다. “누가 도둑질해요?”라는 물음에 “임금이라는 사람이 도둑질해가지고 안 들어 앉았나(구속 수감 중이지 않냐)”고 불뚝거렸다. 한 명이 내지르고 나서자 선문답을 하던 다른 할머니들도 “그러니까 투표하러 갈까 말까 고민 중이라”라거나 “재미가 없다니까”라고 말을 보태왔다.

“안 그럴 사람을 뽑아야죠”

“어느 게 그러는지 알아야재. 살다가 보니, 다 해묵고 그러는데”
“다 붙들려가고 그러는데”
“하매(이미) 들어갈 때 작정하고 갔지. 들어가매(들어가면서),
우리는 들어가면 한구찌(한몫) 한다카고 들어가고 그런거지”

“이제 그런 사람 찍어주면 안 되지요”

“그 사람 좋다고 뽑아놨는데 그 모양인데. 좋다고 뽑았잖아”
“그래서 갈까 말까”
“그래서 재미가 없어. 실망이 많이 됐지”

“이명박도 실망스럽고, 박근혜도 실망스럽고요?”

“그 물건이나 그 물건이나 마카(모두) 똑같다”

“지금 대통령하는 물건은요?”

“지금 대통령도 끝이 나봐야 알지”
“끝이 옳아야 하는데, 끝이 옳잖으니까”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할머니들에게서 투표할 재미를 앗아갔고, ‘누구나 똑같다’는 절망과 혐오로 번진 듯 보였다. <뉴스민>이 포항에서 만난 시민들은 할머니들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자유한국당을 향한 무조건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오히려 경북이 보수적이라는 건 “오해”라면서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북 사람은 보수적이라는 건 오해?
1회 제외 2~6회 시장 한국당 당선
기초의원 약 81% 한국당 선점

▲포항 죽도시장에서 채소 난전을 하는 60대 여성은 “원래 당을 안 본다”고 말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채소 난전을 하는 60대 여성은 “원래 당을 안 본다”고 말했고, 옷가게를 운영하는 60살 남성 홍 씨는 “지금 포항 주변 민심을 들어보면 당 보다, 누가 과연 포항시를 위해. 누가 서민 마음을 잘 읽겠나”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주차장을 운영하는 정광일(58) 씨도 “합리적인 사람, 하여튼 포항에 발전되는 사람들 뽑아주지요. 무소속 당선자도 많이 나옵니다. 생각이 약간 우쪽으로 간 사람들도 있어요. 포스코가 살아야 포항이 산다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다양한 정당이 와서 싸워야 한다”며 “민주당 바람이 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포항 시민들이 굉장히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포스코(포항제철)은 1968년 박정희 정부와 대한중석이 합작(정부75%, 대한중석 25%)해 설립됐다. 정부 출자금이 대거 투입된 포스코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중화학공업의 상징적인 존재이자 포항이 도시화된 배경이다.

오히려 “이제 여기도 한국당 정서가 아니”라고 한국당을 비토하는 시민도 포항에 있었다. 55살 남성은 “아직까지 후보자들이 한국당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하고 있는 게 문제”라면서 “나도 원래 한국당이었지만, 빨간 옷만 입으면 안 쳐다봅니다. 지금은 당을 완전히 무시해요. 한국당은 오히려 피해요”라고 말했다.

그간 선거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포항은 경북 최초 민주당 시장과 진보정당 시의원을 배출했다. 이것만 놓고 보면 포항이 보수적이라는 외부의 시선은 ‘오해’가 맞다. 오히려 무조건 특정 정당만 지지하는 도시들에 비해 ‘합리적’인 것도 맞다. 문제는 앞선 사례들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박기환 시장 이후 2~6회 선거에서 포항 시장은 모두 한국당 후보가 당선됐다. 포항 지역구 도의원 역대 34명 당선자 가운데 31명이 한국당 소속이다. 다른 3명은 무소속인데 이 중 2명은 이후 한나라당 후보로 선거에 나섰다. 사실상 한국당이 석권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초의원도 별로 다르지 않다. 정당공천이 실시된 4회부터 6회까지 당선된 84명 중 68명(81%)이 한국당 소속이다. 민주당 소속은 6회에 1명, 진보정당은 4명이다.

민주당은 여섯 차례 선거 중 박기환 씨가 당선한 1회를 포함해 4회부터 6회까지 총 4차례 시장 후보를 냈다. 민주당이 경북에서 가장 많은 단체장 후보를 낸 곳이다. 다만 박기환 씨를 제외하면 모두 20% 지지를 얻지 못했다.

‘당’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
‘홍준표’ 때문에 한국당 지지 철회
‘박기환’ 당선은 ‘당’보다 인물 보고 찍어

▲포항 죽도시장

경북 최초 민주당 시장, 진보정당 기초의원을 배출한 포항 시민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정답을 찾을 순 없었다. 다만, 당보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로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민들의 이야기 속에서 추론할 수 있었다. 한국당 지지 철회를 말하던 55살 남성은 한국당에 대한 가장 큰 불만으로 홍준표 대표를 꼽았다. 그는 “홍준표 보세요. 그 사람 빨리 쫓가내야(쫓아내야) 해요. 그게 어디 인간입니까”라면서 원색적으로 홍 대표를 비난했다. 인간에 대한 실망이 당 지지 철회로 이어진 거다.

민주당 시장이나 진보정당 시의원 당선도 뜯어보면 결국 당보단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방증한다. 박기환 시장 당선을 당시 <동아일보>는 후보 개인이 얻은 신망으로 ‘당’의 약점을 극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박 당선자가 민주당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경북에서 지역정서의 장벽을 뚫고 민자당 최수환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른 것은 (중략)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꾸준한 신망을 쌓아온 결과로 풀이된다”고 썼다.

죽도시장에서 만난 시민도 비슷한 추론을 했다. 옷가게 사장 홍 씨는 “특별한 건 없고 박기환 씨 인지도가 있고 믿음이 가니까, 인물 위주로 투표를 해서 그런 거겠지”라고 말했다. 홍 씨는 포항에서 한국당 지지세가 높은 것에 대해서도 “(당 지지)정서가 있었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하니까 찍었겠지”라고 당보다 사람에 방점을 찍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오랜 시간 체화된 경험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믿었던 임금이 도둑질 했다’며 화를 내던 용천1리 할머니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소감을 말하면서 “한국동란”을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시내서 고등학교 다니는 손주가 지진 났을 때, ‘할매 안 무섭더나 카더라’. 내가 ‘할매는 안 무섭다’. 그랬다. ‘할매는 지진보다 더 무서운 동란도 봤다’고 캤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동란’ 때 용천리로 피난왔다는 이야길 하면서 눈물을 찍어냈다. “북한 사람은 못 믿지, 대통령이 속을까봐 걱정”이라는 할머니 눈시울이 붉었다.

[포항=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취재팀]
영상: 박중엽 기자, 김서현 공공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취재: 김규현 기자,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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