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지금, 바로 여기의 동물권  / 김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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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있는 작은 정육점 외벽에 ‘동물을 죽이는 것을 그만둬’, ‘이제 채식을 할 때야’라고 누군가 낙서를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분명 백의 아흔아홉은 ‘애꿎은 정육점에 무슨 짓이냐’며 혀를 찰 것이다. 본인이 채식하면 하는 것이지, 죄 없는 정육점 사장은 왜 괴롭히냐는 생각이 들 테다. 영국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영국 켄트 지방의 작은 정육점 ‘말로 부처스’에 동물보호단체인 ALF가 ‘STOP KILLING ANIMALS’, ‘GO VEGAN’이라는 낙서를 하고 도망을 갔다. 영국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 해외토픽이 실린 기사 댓글창에는 ‘별 정신 나간 짓을 다 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ALF의 시위는 시위 방법의 당위성을 차치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WILL BE)’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것과,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극소수의 축산업자와 도소매업자, 소비자를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대다수의 ‘잡식인간’들은 공장식 축산과 비인도적 도축의 암묵적 가해자다. 소수성을 띤 모든 운동은 ‘우리의 문제는 소수가 주장한다고 해서 덜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지금 바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라는 것을 피력하고 싶어 한다. 선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지만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금껏 우리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인 문제, 그것이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장식 축산과 비인도적 도축’ 문제다.

▲식육견 합법화에 맞서 동물보호단체들이 대구 북구 칠성시장 내에서 집회를 갖고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조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 2016.10.29)

동물권 주장은 지금껏 수많은 벽에 부딪혀왔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벽이 ‘사람도 죽을 맛인데 동물권이 이 시점에 웬 말이냐’는 의견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물권 운동은 대다수 사람에게 ‘지금, 나의 일’이라는 좌표를 확보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공장식 축산이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고, 그게 다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도 그것이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감각을 일깨우지는 못한 것이다. 당장 50년 뒤에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사람 먹을 물도 부족해진대도 우리는 그것을 현재의 일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시점은 아득하게 먼 미래고 그래서 사람들의 감정이입에서 쉽게 탈락한다. 먼 시점의 멸망은 지금의 편리보다 가볍다.

결국 방법론에 있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동물권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시민들에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동물권에 있어서 하나의 문제라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해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단계는 ‘개와 고양이의 도축반대’다. 공장식 축산까지야 갈 길이 멀다 해도 비인도적 도축, 그것도 식용가축보다는 반려동물로 인간에게 더 친숙한 동물들을 고통스럽게 살해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은 비교적 시민들과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문제기 때문이다. 개와 고양이를 도축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은 7월 현재 서명인 20만 명을 훌쩍 넘겼다. ‘개를 먹는다는 것’을 문명과 야만의 척도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인도적 도축’의 첨병이 바로 개와 고양이 식용에 있기 때문이다. 축산법의 사각지대에서 식용개와 포획되는 길고양이들은 제대로 된 농장에서 길러지지도, 고통을 최소화한 방법으로 죽지도 못한다. 동물권이 가장 치열하게 논의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현재 시점의 문제다.

동물권이든 환경문제든, 이를 다루는 우리의 방식은 늘 ‘언젠가 일어날 남의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든 문제해결은 결국 지금이라는 시간 좌표와 ‘나’라는 공간 좌표를 확보하는데 달려있다. ‘보신탕과 나비탕’으로 대표되는 개, 고양이 도축 반대 여론이 20만이라는 선명한 숫자로 드러나는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다. 이를 시작으로 개, 고양이뿐만 아니라 동물권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