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대표 바첼레트는 칠레에서 인권 침해를 방치했다

[기고] 마카레나 발데스 살인 사건과 민주주의 칠레의 “인권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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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8:56 | 최종 업데이트 2018-08-28 18:56

올해 8월 8일 전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가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됐다. 한국 언론은 일제히 바첼레트가 옛날에 독재와 싸웠고, 소수자 인권을 위해서 일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본다면 바첼레트는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로부터 지금까지 인권을 위해 이룬 공적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대통령과 여당 세력이 80년대 말부터 20년 넘게 쭉 다스려 온 칠레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대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된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사진=flick.com dfid]

하지만 정말 그럴까? 칠레 현지에서 실제로 살아온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그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피노체트 정부는 사라졌지만 칠레 헌법은 피노체트 헌법 그대로이다. 피노체트 정부에서 자신들이 정권을 내려놓을 경우 다음 “민주주의 정부”에서 쓸 헌법도 정해 놓았고, 이 헌법은 지금까지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와 함께 경제-사회 체제 역시 독재 정부와 거의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칠레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과 비슷한, 때로는 더 비싸기까지 한 물가를 감당하면서도 한국의 최저임금 반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인구 절반 이상의 월급이 80만 원이 안 된다.

빚도 많고, 주택 임대료도 비싸다. 사회주의 천국을 꿈꾸었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죽기 전 남긴 연설에서 언젠가 사람들이 다시 자유롭게 걷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산티아고 중심가 알라메다는 거지와 좀도둑들로 득실거린다.

게다가 산티아고는 도시 자체가 마치 부유한 일본인이 사는 구역과 가난한 조선인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일제강점기 식민지 서울처럼 백인 귀족층과 이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불러들인 후손들이 주로 사는 부자 구역과 대개 피부색이 더 짙은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칠레 정부는 우익과 자칭 좌익을 가리지 않고 칠레 바다에서 고기 잡을 권리를 소수 대기업과 이를 다스리는 귀족에게 팔아넘겨 왔다.

이런 상황에서 칠레 정부가 인권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것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소수자들에게는 사치다. 사례는 아주 많다.

칠레 정부가 운영하는 어린이 및 청소년 보호 기관이라는 세나메(SENAME)는 열악한 환경과 대우로 시설에서 살던 어린이 1,313명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런데도 세나메 담당자 중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어른에게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칠레의 자살률(2017년)은 한국에 필적하여 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2위다(1위는 한국). 2013년 노조 지도자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칠레 경찰은 이게 범죄조직의 소년 하나가 잘못 쏜 총에 맞은 것이라고 발표했다.

칠레 역사에서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든 독재던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이 탄압받은 집단은 19세기 말 칠레가 밀어붙인 침략전쟁으로 영토를 잃고 소수 민족이 되어 버린 마푸체이다. 이들은 이 전쟁으로 토지의 95%를 잃었지만, 칠레 주류 사회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은 5%마저 빼앗지 못해 안달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런 태도는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다음에도 변하지 않아서 2017년까지 정부 측에 살해당한 것이 확실한 마푸체인만 14명이다. 이는 대개 중도좌익이라는, 바첼레트도 속해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연합’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밖에도 경찰이 어린아이를 등에 눕혀 놓고 고무탄을 난사해 벌집으로 만들거나, 아이들을 고문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빼앗아간 토지를 돌려달라는 마푸체들은 대개 범죄자,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으며, 칠레 법원은 이들을 악당으로 몰고자 고문으로 얻어낸 증언도 활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증거 조작도 빼놓을 수 없다. 칠레 경찰은 오뻬라시온 우라깐이라는 작전에서 마푸체 저항 조직인 아라우코 마예코 기획 본부(Coordinadora Arauco-Malleco)를 테러 조직으로 몰고자 증거 조작을 저지르다 발각되기도 했다. 이것도 바첼레트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가운데 더욱 기억나는 사건 중 하나는 마카레나 발데스 암살 사건이다. 마카레나 발데스는 칠레 로스 라고스 지역 팡이푸이에 있는 트랑길(Tranguil)이라는 지역에서 남편인 루벤 코이요와 함께 마푸체 가족의 일원으로 살고 있었다.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자연림이 우거진 그곳에 살던 마카레나 발데스는 그곳의 물길을 잡아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려 한 오스트리아계 다국적 기업인 RP Global에 맞섰다.

▲칠레 로스 라고스 지역 팡이푸이에 있는 트랑길에 수력발전소를 짓겠다고 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려는 RP Global과 이에 저항하는 주민들. [사진=ECOTV PRODUCCIONES 영상 갈무리]

남편인 루벤과 그 지역 마푸체 공동체도 다국적 기업에 맞서 싸웠다. 그곳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면 그곳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받을 것인지 적극 알렸다. RP Global은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원주민이 사는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면 원주민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169조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에 저항하던 이들은 그 대가로 온갖 협박을 받았다. 집을 불태우겠다고도 하고, 죽여 버리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위협은 결국 2016년 8월 22일에 현실로 나타났다.

▲2018년 8월 22일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마카레나 발데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날 마카레나 발데스(당시 나이 32살)는 집 안에서 대들보에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마카레나 발데스의 가장 어린아이로 태어난지 한 살 반 밖에 안 된 아눌렌이 있었다. 매우 수상한 상황이었다. 죽기 바로 전 마카레나는 아이를 위해 음식을 차렸고 진료소에 아이를 업고 갈 준비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남편에게도, 가족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마카레나의 자살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역 정부의 법의학 진찰 결과는 마카레나가 자살했다고 결론지었다. 가족들은 2차 부검을 요구했으나 정부 측은 부검 보고서 내놓기를 거부했다. 부검을 보증하며 도장을 찍은 의사 엔리케 로코는 부검 사진조차 찍지 않았다.

하지만 2차 부검 현장에는 다른 의사도 함께하고 있었다. 칠레대학 법의학 교수인 카르멘 세르다 아길라르는 부검에서 마카레나 발데스가 자살한 것이 아니고, 살해당한 다음에 목이 걸린 것이었음을 명확하게 입증했다.

카르멘에게 마카레나의 죽음을 자살 때문이라고 한 것은 법의학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엉터리 주장이었다. 모든 정황은 RP Global이 눈엣가시인 발데스를 살해한 뒤 자살로 위장하고, 칠레 정부는 이 기업을 보호하려 했다고 생각하게 한다.

▲2018년 8월 22일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마카레나 발데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후 RP Arroyo로 이름을 바꾼 기업은 발데스의 죽음 이전에도 침탈해왔다. 이들은 물길을 돌려놓고 그곳에 있던 마푸체 묘지 두 개를 파괴했다. 자신들의 작업을 위한 기계 시설도 설치했다. 발데스가 죽음을 맞은 바로 다음 날에는 전력 배급 기업인 SAESA의 직원들이 와서 전선을 설치했다. 이 모두 현재 국제연합 인권최고대표가 된 바첼레트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권보호라는 말잔치가 현재를 사는 약자들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바첼레트와 그 친구들의 칠레 정부는 기억과 인권 박물관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지만 피노체트 정권에서 박해당한 사람들만 강조하려 할 뿐, 피노체트 체제를,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유럽 백인 중심 식민체제를 사실상 자기 자신들이 잇고 있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사업에 방해가 되는 소수자, 약자,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인권 침해는 “대안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연 현상이다, 맞서서는 안 될 일이다. 정말로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인권 침해조차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대표한다는 사람으로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가 뽑혔다. 자신이 대통령이었던 나라에서도 지키지 않았고, 부단히 짓밟아 온 소수자들의 인권을 세계 단위에서는 정말로 지키려 할까? 재벌과 한때 민주주의 투사였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그 동맹 세력에 짓눌리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인권에는 도움이 될까? 나는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바첼레트의 유엔 인권최고대표 선정을 환영하는 한국 진보언론들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의 “라틴아메리카” 이해가 얼마나 얄팍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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