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4만원과 창문, 그리고 삶의 상관관계 / 이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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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0:30 | 최종 업데이트 2018-11-12 10:31

‘ㄱ 고시원’은 지은 지 35년이 된 낡은 건물이다. 2·3층을 통틀어 53개의 객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어 있지 않고, 경보용 화재감지기는 고장 나 있다. 하지만 주변 건물에 비해 월세가 비교적 저렴했다. 그곳에 살 이유는 그걸로 충분했다. 고작 3층짜리 건물이었다. 9일 새벽 불이 났을 때, 객실마다 창문을 열 수 있었다면 뛰어내려 목숨은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창문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창문이 없는 방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창문이 없는 방은 다른 방보다 월 4만 원이 저렴했다. 사망자 7명 중 4명이 창문이 없는 방에 거주했으며, 4만 원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갈라내었다.

▲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당했다. 화재 진화 후 한 거주자가 옷가지를 챙겨 나오고 있다. (사진=권우성 오마이뉴스 기자)

창문이 없는 방이 있다는 것도, 경제력과 주거 안전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하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올해 초만 해도 서울 종로의 한 여관에서 화재로 사망자가 발생했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매번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고 있다. 고시원, 쪽방, 여관 등을 ‘비주택 거처’라고 부른다. ‘비주택’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이 그곳에 산다. 지난달 도로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37만 명의 사람들이 비주택에 살고 있으며, 이 중 15만 가구가 고시원에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일용직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2014년 발표된 논문 ‘서울지역 고시원 거주자의 주거실태 및 만족도’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자들의 65%가 ‘집이 없고 경제적 형편상 달리 방법이 없어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유는 비슷할 것이다. 비주택 거처는 급격한 도시개발을 위해 판자촌이나 달동네 같은 무허가 정착지가 도심에서 빠르게 지워지며 성장했다. 살 곳을 잃었지만, 일자리가 많은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들은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를 선택했다. 참사가 반복되고 해결책 제시가 촉구됐지만,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고시원과 같은 불법(편법) 증축을 강력히 규제할 경우, 선택지가 없는 거주자들에게 제공할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 결과는 어땠나?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을 담보로 생명을 저당 잡히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이제는 무력한 익숙함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서울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내 고시원 등 소형 건물에 스프링클러 등의 안전장치가 설치됐는지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불법적인 증축을 규제해나가고, 정기적인 점검을 통해 안전시설을 확보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제공하는 방식 등 이미 제안된 좋은 정책들을 시행해야 한다. 그래서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꾸준히 살펴야 한다. 동시에 나이, 노동수준, 경제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거권’에 대한 고민 또한 시작되어야 한다. 주거권이 헌법에 명시된 개념은 아니지만, 주거권 보장은 국가의 책무다.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제 35조 3항이 그 근거다. 국가 차원에서 주거 안전성이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다.

월 4만 원과 창문, 그리고 삶의 상관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그 상관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비주택’에서 4년째 살고 있고, 다행히 그동안 불은 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살아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비주택’에서 살아가야 할 나는 내가 사는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는지, 정기적으로 안전 점검은 하고 있는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릴 공간은 있는지 확신이 없다. 이번 고시원 화재의 생존자들은 구청에서 마련해준 또 다른 고시원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그 고시원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소소한 논란이 있었다. 구청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겠다는 답 대신, 화재 생존자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들도 아직까지는 살아있다.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없다면 죽음은 그저 유예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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