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법의 경계를 넘어 / 이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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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1:35 | 최종 업데이트 2019-04-12 11:35

“수정된 순간 생명은 시작되고 중절은 살인이에요!” 태아보호 시위를 하는 두 명의 남녀가 낙태클리닉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그들을 보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혀를 찬다. “쓰레기들!”이라고 욕하며 밀가루를 던지기도 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라며 호통을 치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영국드라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의 에피소드 중 하나다. 그곳에서는 낙태를 하는 여성이 아니라 낙태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비난의 시선과 말이 쏟아진다. 쾌적한 환경과 친절한 의료진을 대동한 낙태클리닉은 실존하며, 진료 수준 또한 여느 병원과 다를 바 없다. 드라마 속에서 낙태한 여성의 삶은 붕괴되지 않는다. 조롱받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두고 살인을 운운하는 타인들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의 삶은 쉽게 무너져 내린다. ‘낙태죄’의 보호 아래 임신과 출산의 책임은 늘 여성에게로 향했다. ‘몸을 막 굴린 여자’라는 식의 폭력 앞에서 낙태한 여성에게 허락된 것은 수치심과 침묵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려는 국가에 대항하고, 낙태가 죄가 아님을 따졌던 이들이 있었다. 그 오랜 싸움의 끝에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11일 임부의 임신중지를 금지한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의사 등의 임신중절수술을 금지한 270조 1항(의사 등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형법이 제정된 뒤 무려 66년 만에, ‘낙태죄’가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였음이 인정됐다.

헌재의 판결은 ‘처벌’을 통제의 도구로 삼던 시대가 끝났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이는 낙태죄의 완전한 폐지를 위한 일들이 이제 착착 진행되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국회와 정부가 임신중지에 대한 비범죄화를 분명히 하고, 시민의 기본권 또한 최대한 보장하게 되리라. 하지만 이것이 기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당장 ‘낙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 침해 행위’라고 합헌을 주장한 헌법재판관의 말을, 사문화 된지 오래인 낙태죄를 폐지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이 난 것을 보라.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정책에 대한 개입이 없다면,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의 수준은 계속 정체될지도 모른다.

법으로 시작된 폭력은 법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제 사회가 저지른 폭력을 시민들이 치유해나갈 시점이다. 그 시작은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던 낙태와 관련한 담론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미성년자나 미혼이어서, 장애가 있거나 강간을 당해서. 낙태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했다. 낙태 이후의 삶이 죄책감과 슬픔으로 점철되어야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왜 그들이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낳기 싫어서’라는 것이 낙태의 이유가 될 순 없는가? 왜 임신은 늘 출산과 동일시되는가? 이제 물음의 방향은 달라져야 한다.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낙태는 여성의 개인적 문제나 윤리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의제로 논의될 수 있다.

낙태가 사회적 의제로 논의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까? 보건의료 인프라 확충, 포괄적인 성교육의 시행,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의 모습을,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에 대해 급진적인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도심 한가운데 있는 쾌적한 낙태클리닉, 폭력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운 낙태, 낙태를 이유로 붕괴되지 않는 삶 같은 것들이 더는 드라마 속의 일로 머물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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