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분노가 우스꽝스럽지 않으려면 / 박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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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3 11:56 | 최종 업데이트 2019-05-03 11:56

일본의 연호가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바뀌었다. 일본의 연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트와이스의 멤버 사나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 연호를 사용하며 일본 국민으로서 느낀 감정을 밝힌 글을 게시하면서부터다. ‘사나 논란’의 시작도 이 지점이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이 전범국가의 국민으로서 피해국에 갖춰야할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 일본 연호가 군국주의의 표현이라는 점을 들어 강한 비판이 일었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사나는 지난달 30일 일왕 아키히토 퇴위에 따른 일본 연호 변경에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는 게시물을 올렸다. 사나는 일본어로 “헤이세이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가 끝난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헤이세이 수고 많았습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작을 향해 헤이세이 마지막 날인 오늘을 깔끔한 하루로 만듭시다"라고 썼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연호 사용은 군국주의의 한 형태로 보기 어렵다며, 연호 사용 자체는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단어사용이라고 했다. 언론 보도에서도 사나를 비판하는 이들의 반응을 ‘확대해석’, ‘억측’ 등과 같은 단어 사용으로 그들의 입장을 축소시켰다. 한국인이면서 ‘명예 일본인(‘명예’라는 표현은 일본인의 편에 섰다는 의미이다.) 행세를 한다와 민족주의에 갇힌 사람들의 비약일 뿐이라는 의견의 대립구도가 형성됐다. 전범국의 역사와 반성 없는 행태를 비판하지 못하고 우리끼리 싸우는 것에 머물게 되었다.

일본인의 보편적 문화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본인’ 자체에 대한 역사적 반감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정당한 사과를 받은 기억이 없다. 이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식민지배에 대한 상처는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저항을 일으키는 일종의 강박을 낳았다. 이 강박은 전범국인 일본뿐 아니라 일본 시민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트라우마가 부른 강박은 다른 측면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한다. 그들의 말처럼 ‘명예 일본인’이 되어 그들의 눈으로 역사적 피해를 모른 척 하자는 게 아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할 지점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켜 우리의 피해를 주장하고 올바른 해결을 위한 에너지를 소멸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일본인이란 개인에 대한 반감인지 일본이란 국가의 무책임함인지를 구분함으로써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힘이 생긴다. 지금의 논란은 일본인이라는 개인에 대한 혐오는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혐오는 사안에 대한 무비판적인 감정을 앞세워 문제를 해결할 판단을 무디게 만든다. ‘한국인이면서 역사를 잊은 것이냐’는 비난은 결국 한국인이라는 개인의 책임으로 한정되며, 한국인이라는 조건 이외의 모든 가능성을 제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적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알림으로써 전범국가로 인한 피해를 통해 서로에게 공감하는 연대이다. 전쟁피해의 연대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으로 발전한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나의 일본 연호 사용에 대한 논란은 ‘우스꽝스러움을 넘어서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일본의 연호 사용을 비판하는 지점이 전범국가로서 책임지지 않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비판하지 못하고 개인에게 고립되었다는 우려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사과 받아야 대상은 일본인 ‘어느’ 개인이 아닌 전범국가로서 사죄하는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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