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누군가에 의해 재현되는 사람들 /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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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문학은 문학의 한 장르나 다름없다. 남한의 경우 김유경의 <인간모독소>처럼 ‘탈북 문학’이 있다. 난민 혹은 이주자의 목소리를 담은 연극, 미술, 문학 등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보여준다. 저쪽의 시민이 이쪽의 난민이 되어 한 사회에 도착할 때는 반드시 폭력의 역사를 안고 온다.

베트남계 미국인 비엣 탄 응우옌의 <동조자>를 읽으며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발견을 한 적 있다. 베트남 전쟁을 전하는 목소리는 헐리우드 영화나 안정효의 <하얀 전쟁>처럼 늘 한국 혹은 미국을 통해 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미국발 목소리다. <지옥의 묵시록>이나 <플래툰> 같은 미국 영화에서 보여준 ‘전쟁의 참상’이란 어디까지나 미국의 시각에서 보여주는 ‘참상’이다.

그들의 참전, 그들의 반전. 전쟁을 지지하는 목소리든 반대하는 목소리든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입장을 전하는 목소리가 제일 크다. 적게 잡아도 베트남 사람만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전쟁이 벌어진 장소 또한 베트남이지만 베트남 사람의 목소리가 없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온 셈이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베트남 현지 여성을 사랑하는 미국 군인이 등장한다. 강간당하거나 지배자의 연인이 되는 여성 인물은 가해자의 시각에서 매력적이다. 식민지는 흔히 여성으로 상징되기 때문에 영화와 문학 등에서 여성들은 이처럼 제국에게 짓밟히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피식민자의 이러한 모습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

응우옌의 작품은 가해자 시각의 서사에 문제제기 한다. 1971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는 4년 뒤 부모와 함께 ‘보트 피플’이 되어 미국에 난민으로 도착했다. 식민지와 전쟁을 다루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러한 폭력적 역사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난민과 이민자의 이야기는 여기서 분리된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베트남 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났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끝나지 않았다. 난민이 발생하고, 이산이 이어지고, 언어가 붕괴되고, 세대 간 반목 속에서 지배자들이 떠난 자리에 전쟁은 살아남는다.

<동조자>의 주인공은 그 자체로 베트남의 역사다. 그는 프랑스가 지배하던 시절 프랑스인 신부와 그의 하녀인 미성년자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합의되지 않은 관계, 곧 강간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피식민지의 입장을 상징한다. 이 소설의 ‘나’는 미국적인 것을 ‘피해망상증’이라 한다. 제 설움과 분노만 기억할 뿐 스스로 어떤 폭력을 저질렀는지는 망각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들의 피해서사를 쓰고, 역경을 극복한 성공서사를 이어가며 자화자찬한다.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의 기억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 미국은 표현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한다. 이 기억전쟁에 대한 응우옌의 논픽션이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이다.

▲베트남 빈호아 마을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를 형상화한 조형물.

한국에게 베트남을 포함하여 ‘동남아’란 매우 폭력적 상상을 허용하는 장소다. 프랑스처럼 직접 찾아와 물리적으로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주의도, 미국처럼 전쟁에 개입하거나 영화를 통한 문화 제국주의도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은 충분히 이 장소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다.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선진국’이 동남아 지역에 돈을 주고 쓰레기를 보내듯이, 돈을 주고 이 지역의 사람을 사서 인권을 유린한다. 가사도우미, 매매혼, 대리모, 다양한 방식의 성착취 등이 이 ‘동남아’ 여성들의 인권을 위협한다. 결혼 이주 여성은 이 모든 문제를 오직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다 감수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국에게 베트남은 ‘우리’가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음을 매우 명료하게 보여주는 세계다. 한국으로 온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 음식을 만들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문화를 익히려고 애쓴다. 생존을 위해 그들은 배워야 한다. 그들이 배워야 하는 만큼 그들과 결혼한 한국 남성과 가족들이 베트남에 대해 배워야 할 필요를 느낄까. 베트남 문화를 반영하자면 아침밥은 집에서 해먹는 게 아니라 밖에서 사먹어야 한다.

최근 한 이주 여성을 가혹하게 폭행한 30대 한국 남성이 구속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민 여성들이 폭행, 강간, 살인의 피해자가 되었고 이를 전하는 기사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번에 특히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영상으로 폭행 현장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폭력을 선별적으로 기억하던 이들조차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니 모른척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와중에 가해 남성이 구속되면서 한 말을 예사롭게 넘기기 어렵다.

“언어가 달라서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그것 때문에 감정이 쌓인 건 있는데,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질 거 같은데, 복지회사에서 신경을 좀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사람을 때려놓고 그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갈등으로 포장한 뒤, 다른 남자들의 연대를 구하고, 제도의 지원까지 당당하게 요구한다. 이 남성은 자신이 이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대변될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반면 한국어가 서툰 이주 여성은 온전히 대변되지 못한다.

언어적으로 고립되고, 결혼 이전의 가족 및 친구들과 단절된다. 대신 성관계를 강요받고, 한국 문화에 흡수될 것을 강요받고,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출산과 낙태를 강요받는다. 결혼 전의 한 사람을 완전히 지우고 결혼이라는 명분으로 철저한 재생산의 도구로만 존재하도록 강요받는다.

대한한공 조씨 일가가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여권을 빼앗았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분개했다. 이 분개의 초점은 어디에 있을까. 필리핀 가사 도우미의 인권을 짓밟아서? 이때 필리핀 가사 도우미의 인권은 ‘재벌가’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매개로만 활용될 뿐이다. 왜냐면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고 광고하는 결혼중개회사의 현수막이 여전히 펄럭이기 때문이다.

결혼중개업체들은 베트남 여성은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순종적이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광고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한국 남자들이 베트남 여성을 좋아한다는 말도 했다. 통계상 이주 여성 중 베트남에서 온 여성이 가장 많다. 그러나 순진하게 단지 한국 남자가 베트남 여자를 좋아해서, 베트남 여자가 한국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볼 순 없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여성들이 오늘날 왜 한국으로 결혼을 통한 이민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나라에 그동안 벌어진 착취의 역사를 외면한 채 순진한 개인들의 로맨스로 포장할 수는 없다. 이주 여성이 겪는 폭력은 가부장제와 글로벌 자본주의가 결합한 착취를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에도 베트남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이 있었다. 판응옥타인. 그는 살기 위해 한국에 왔을 텐데, 또한 살기 위해 제주로 이사를 하던 중일 텐데, 어처구니없게도 이곳의 부실한 시스템 때문에 삶을 잃었다. 수많은 희생자 중에서도 가장 기억되지 못하는 존재다.

표현 수단이 없는 이들은 타인에 의해 재현되지만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한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 더 이민자들이 스스로 제 서사를 지어 ‘우리’에게 이 사회의 추한 밑바닥을 들춰낼 것이다. 잘 모르면서 그들을 대변하고자 했던 그 모든 폭력에 대해. 그들이 “죄송합니다”를 반복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