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1980년 광주의 독일인, 2019년 홍콩과 한국인 / 허승규

12:57

2019년 10월, 대한민국은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에서 뜨거웠다. 바다 건너 중국과 마주한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는 중국 본토에까지 홍콩의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는 법은 많은 홍콩 시민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과 홍콩의 수도에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한 쪽에서 시위대에 대한 테러, 암살이 벌어진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이 2019년 홍콩에서 재현된다.

▲ 범죄인 인도법 반대로 불거진 홍콩의 시위는 복면금지법 등이 시행되면서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커지고 있다. (사진=김한주 참세상 기자)

대륙의 최고지도자는 홍콩에 함께하려는 이들에게 “중국의 어떤 영토라도 분열시키려는 이가 있다면 몸이 부서지고 뼛가루로 산산조각이 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 협박한다. 홍콩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은 칼부림과 테러를 방조한다. 액션 영화로 친숙하며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렸던 홍콩 시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간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느끼진 않는다. 친할수록, 거리가 가까울수록 우리는 남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우리의 문제로 여긴다. 인류애는 모두에게 똑같을 순 없고, 원근친소에 따라 차별적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벌어진 참사들에 슬피 애도하지만, 머나먼 대륙에서 일어나는 아픔에는 미온적이다. 거리의 문제도 있겠지만, 내가 그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 행위에 보통의 대한민국 시민은 어떤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지구촌 시대지만 대다수 국제 분쟁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바다 건너 시민들에게도 연대와 지지를 보낼 때가 있다. 우리와 비슷한 경험이 다른 곳에서 일어날 때, 바다 건너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로 읽힌다. 2019년 홍콩과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이 닮아있다.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과 냉전의 흔적,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를 마주하는 것도 비슷하지만, 특히 오랜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한국 현대사는 2019년 홍콩 시위와 겹쳐진다. 최근 홍콩 시민은 광주 민주화운동 단체에게 도움의 메시지를 보냈다. 홍콩 시민들의 생명이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광주를 기억하는 한국 시민들의 연대는 어떠한 힘이 있을까?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2003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만났다. 처음 광주를 접하고 쏟아졌던 눈물을 기억한다. 인상 깊었던 인물은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였다. 안동중학교 도서관에서 눈물을 닦으며 나와 일면식도 없는 독일인 기자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경북 안동이란 보수적인 소도시에서 입시에 종속된 학창 시절을 보내던 나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린 독일인 기자의 삶은 크나큰 희망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광주의 시민들은 군부독재에 진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의 역사로 부활하였다.

군부독재 주역들도 죽음 앞에선 같다. 선악을 불문하고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역사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진다. 지금 당장의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알리고, 정의를 세우는 노력은 역사에 남는다. 불완전하고 잘못된 시간만큼, 순리대로 바로 잡아가는 시간도 공존하는 것이 인간사다. 나는 광주의 진실을 알린 독일인의 존재를 1980년 광주 이후 23년 뒤인 2003년에 알았다. 39년이 흐른 2019년, 광주는 홍콩 시민들에게 다시 호명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광주는 광주다. 홍콩 시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라도 홍콩은 홍콩이다. 1980년 광주의 독일인을 기억하며 2019년의 홍콩 시민들에게 연대를 전한다. 홍콩 시민들의 생명과 평화와 자유를 지지한다.

마지막으로 홍콩 시민들의 희생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이는 대륙의 지도자 시진핑 주석이다. 당신의 뼈도 결국 흙에 묻힌다. 당신의 목숨도 순간이며, 인과를 피할 수 없다. 대중의 생명과 권리를 가벼이 여기는 지도자의 끝을 역사에서 배우길 바란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은 중국 전국시대에서 유래한 말이다. 조상의 지혜를 살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자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