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에도 혼자 속앓이만…

"여성인권 지원 기관 분리하고, 이주 여성 쉼터 기능 개선해야"

19:08

남편이 오토바이로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평소에 애들 앞에서도 저를 죽인다고 목 조르고, 시어머님도 저를 때리고 그랬어요. 그래도 애들 아빠, 애들 할머니니까 맞고 있었는데 오토바이로 저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때는 살고 싶더라구요. 제가 죽으면 우리 애들은 어떡해요.

중국인 박소이 씨(가명)는 지난 2002년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서 한국 국적을 얻었다. 소이 씨는 시어머니와 남편,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10년 넘는 한국 생활 덕에 한국말은 많이 늘었지만, 아직 읽고 이해하는 것이 서툴다. ?목이 꽉 메인 목소리로 소이 씨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남편과 시어머니는 항상 나한테 빨리빨리 하라고 구박했다. 밥상에서도 맘 편히 밥을 못 먹었다.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오면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까 항상 옷도 못 벗고 잠이 들었다”며 “남편은 항상 내 국적을 취소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체류 연장 할 때도 남편이 증인을 섰고, 주민등록증 만들 때도 남편이 증인을 서서 남편이 내 국적을 취소시킬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소이 씨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가정폭력을 견디다 지난해 5월, 단돈 4천 원을 들고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를 찾았다. ?이혼 절차를 상담하고, 혼자 살 방법도 상담했다.

3일 오후 2시, 대구시 중구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가 주최하는 ‘이주여성 폭력피해 실태와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2015년 9월 말 기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국민의 배우자(E-6-1) 비자를 가진 이주 여성은 경북 7,025명, 대구 4,20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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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진 대구이주여성상담소장은 “지난 2013년부터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 상담이 전체 상담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배우자는 물론 시어머니의 폭력도 있다. 한국인 배우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내의 취약성 때문에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현진 소장은 “이주 여성 인권 정책이 다문화가족 정책에 매몰됐다. 다문화정책이 ‘건강 가족 유지’로 치우치면서 이주 여성의 인권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인권 지원보다는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에 주력하고, 또 다문화 가족 구성원 모두 이용하다 보니 이주 여성이 자신의 피해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 여성 폭력 피해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해 △적응 지원 기관(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폭력 피해 상담 기관(이주여성인권센터 등) 분리?△성인지적 관점과 다문화주의적 관점을 견지한 상담?△’합법적’ 체류자만 지원하는 법제도 개선 등을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길안 달서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총괄팀장은 “우리 센터는 결혼 이민자의 부부 문제 상담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가정폭력, 성폭력 관련 상담은 거처의 문제, 법률적 지원, 이후 자립 준비까지 요구돼 연간 40건 이상 상담사례를 타 전문기관에 연계한다”며 “이를 통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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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주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는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이 단순히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문제가 아니라 ‘범죄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국가의 책무”라며 “이들의 자립은 당장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 최소한 생존 조건을 확보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공동체에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성과를 함께 누리는 동등한 구성원, 즉 시민권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선주 박사는 피해 이주 여성을 보호하는 쉼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쉼터 입소 허용자 범위 확대?△취업 지원 및 취업 연계 사업 포함?△여성 노동시장, 복지체계, 재무 관리 등에 대한 교육 등을 제안했다.

소이 씨는 지난 5월 쉼터에서 나와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나와 보니까 한부모로 아이 둘을 키워야 하고, 이 학력으로 어디 좋은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다. 일을 하려고 해도 애들을 돌봐야 하니 그것도 걱정”이라며 “우리 애들 공부시키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힘들다. 다른 건 없다”고 걱정했다.

이어 “이주 여성 상담소가 있다는 걸 좀 많은 분이 알았으면 좋겠다. 2002년에 한국에 처음 왔는데 작년에 처음 알았다”며 “한국에서 살면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인정받으며 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