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이의 전단지 투쟁 일지 (2)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시즌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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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8 15:08 | 최종 업데이트 2016-01-11 17:47

[편집자 주] <둥글이의 유랑투쟁기>의 저자이자 전국을 유랑하며 환경운동을 벌여 온 둥글이 박성수. 그는 2015년 제작한 전단지를 제작, 배포한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뉴스민>에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시즌2’ 연재를 시작한다. 첫 번째는 전단지 투쟁 일지인데,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3차례 나누어 싣는다.

압수수색 사건 직후 경찰청장은 ‘전단지 배포하는 이들에 대해서 체포하라’는 지침을 만들어서 내렸다. 나는 강신명 청장의 ‘절대존엄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 사서 박근혜 가카를 뵐 때마다 옆에서 흔들어 대며 충성 열심히 하라고 화환을 몇 개 꾸려서 경찰청에 택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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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압수수색 사태로 인하여 나의 일상에 중대한 균열이 발생했다. 이는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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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핸드폰이 빼앗겨서 야동사이트 인증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압수수색 당했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서 군산경찰서에 ‘핸드폰 반환’을 요구했는데, 그들은 ‘준다’는 말만 하고 며칠을 미뤘다. 이에 격분한 나는 급기야 경찰서 앞에 개사료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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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후환이 있었다. 개사료 뿌렸다고 경범죄 스티커를 발부한 것이다. 이러한 수사당국의 무참한 대응에 나는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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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렇게 심신이 망가진 노숙자가 되어 한평생 길바닥을 떠돌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를 잡아준 고마운 손이 있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영원히 삐뚤어진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바로 그 고마운 은인 정보과 형사 아저씨가 천 원을 줘서 나는 희망을 안고 며칠간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며칠간 조용한 듯하더니 부산연제경찰서에서 소환장이 왔다. 그것도 ‘이메일 소환장’이었다. 내용인 즉, 내가 부산에서 전단지를 살포한 윤철면 님한테 이메일로 전단지 도안을 보낸 것을 수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윤철면 님이 대구에서 뿌린 전단지는 이하 작가가 만들어 제작한 전단지였고, 내가 만든 전단지 도안은 윤철면 님이 이메일로 받기만 했을 뿐, 그것을 만들어 뽑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메일로 도안을 보낸 것’ 자체를 수사하겠단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부산연제경찰서에 기저귀를 꾸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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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나는 이렇게 세 곳의 경찰서로부터 소환장을 받는 그랜드 슬럼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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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소환장이 2차, 3차까지 계속 도착했는데, 저들의 폭압에 맞서는 심정은 둥글 장군의 [공안몰이 일기]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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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탄압이 더욱 집요해짐에 따라 잡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기고 현격한 체력 저하 증상이 발생해, 나는 수시로 몸을 단련하는 운동을 병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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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은 국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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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성경찰서에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으로 소환장이 다시 도착하자 개껌으로 응수한 직후 부산연제경찰서로부터 기저귀가 반송됐다. 아마 ‘기저귀 찰 공무집행은 안 하겠다’는 입장표현인 듯했고, 그 후 부산연제경찰서로부터 소환장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반송된 기저귀는 둥글이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확인증까지 만들어서 경매에 부쳤다.

DSC08636.jpg그리고 기저귀는 조 모 씨에게 낙찰되었다.

그 직후 대구수성경찰서가 군산소룡동우체국을 압수수색하는 사건이 빚어졌다. 내가 전단지 발송한 목록을 얻으려고 우체국을 압수수색한 이 사건은 군산소룡동우체국 개국 이래 처음 발생한 압수수색 사건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입수한 주소를 전국에서 우편물을 받는 이들의 담당 경찰서에 할당했고, 경찰들은 전단지를 받은 이들에 대한 감시는 물론 직접 전화까지 해서 “당신이 전단지 받은 것을 알고 있다”는 직간접적인 협박까지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보낸 우편물은 전단지만이 아니라, 사적인 편지, 책 등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경찰은 내 우편물을 받은 이들 전부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서 감시와 협박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광주의 조 모 씨라는 분이 있다. 이분은 내가 3년 전 유랑캠페인 중에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교사이다. 내 활동을 보고 고생하신다면서 음료수와 후원금까지 주셔서 2015년 초 내 책이 나와서 감사의 편지와 함께 그것을 보냈던 것뿐이었다. 전단지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분이다. 그런데 수사당국은 이분마저 잠재적 범죄대상에 올려서 귀찮게 했다.

수사당국이 주의하여 어떤 것이 전단지고 어떤 것이 전단지가 아닌지 최소한의 확인절차를 통해서 정말로 문제될 전단지만 수사를 해도 ‘공안수사’라는 낙인을 벗어날 수 없는 터이다. 그런데 이리 물불을 안 가리는 수사는 그야말로 70년대 박정희식 털기 수사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이렇게 국민의 안위는 관심이 없고, 위에서 시키는 일은 앞뒤 안 가리고 인권을 짓밟는 수사를 나는 ‘꼬리흔들기식 수사’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꼬리흔들기식 수사 덕에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똥개까지 압수수색 당하고 이로 인한 개값 폭락을 우려하여 동네 멍멍이와 부둥켜안고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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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공안탄압에 대해 외신과 국제인권단체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우려를 표했는데, <글로벌포스트>는 박근혜 정부의 조치가 ‘정말 북한의 독재자에게 보일 좋은 본보기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내, 국제 정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 역시 좁혀 오는 경찰의 수사망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출소 앞에서 전단지 살포 인증샷을 찍어댔다.

▲사진은 경찰아저씨가 찍어줌
▲사진은 경찰아저씨가 찍어줌

이후 일산에서 전단지를 살포하다가 압수수색을 당했던 조성훈(둥글교 일산구역) 영주를 위로방문하여 개사료를 하사하고 다음 날 일산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 팩트 TV 고승은 기자
▲사진 팩트 TV 고승은 기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자회견 중 조성훈 영주의 개사료 살포를 경찰이 강경 제지한 이유로 원하던 성과를 충분히 얻을 수는 없었다.

▲사진 팩트 TV 고승은 기자
▲사진 팩트 TV 고승은 기자

4월 21일, 그간 나에게 끈질기게 ‘대통령 명예훼손’사건 소환장을 보냈던 대구수성경찰서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 중에 내가 군산 민주노총의 유선전화기를 1회 사용한 내용 등을 집요하게 추궁하면서 이 사건을 ‘조직사건’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이즈음 공무원 간첩사건 등 조작된 사건이 나오고 있던 터라, 조사받다 말고 뛰쳐나가 수성경찰서 표지석에 개사료를 뿌렸다.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다음날인 22일에는 대구지방경찰청 앞에서 대구지역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전단지 공안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했는데, 경찰은 가방 옆 개사료를 보자마자 강탈해갔다. 나는 개사료를 대구 경찰청에 뿌릴 의도가 없음을 명백히 밝혔음에도 대구수성경찰서 지능팀장은 새치기해가듯 아무 설명도 없이 뺏어갔다.

이런 황량한 절도 사건에 대해서 수성경찰서 지능팀장에게 ‘담배 한 갑 줄테니 개사료를 되돌려달라’고 거듭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 통해 수성경찰서 지능팀장이 새치기범 처럼 개사료를 강탈해 가기는 할망정, 뇌물에 눈이 멀어 있는 경찰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울 경찰청에 올라가 개사료를 뿌렸고,?대검찰청에 개사료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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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까지 와서 개사료를 살포한 것은 경찰이 전단지 사건에 대해 수사가 대검찰청의 지시 때문이라고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개사료 살포 다음 날 10여 명의 시민과 함께 대검찰청 앞에서 아래 현수막을 들고 ‘전단지 공안몰이 규탄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와중에 나는 ‘멍멍’이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대검찰청 공안 3과장에 의해 ‘집시법위반’으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서초경찰서에 끌려가 두 시간 동안 ‘멍멍’이라는 구호의 정치적 의미가 뭐냐고 취조 당했다.(나중에 사건이 대구검찰청에 이첩된 후에는 ‘멍멍’이라는 구호에 대해서 6시간 동안 그 의미가 뭐냐고 취조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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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경찰서에서 풀려나자, 현관 앞에 대구수성경찰서 경찰이 체포영장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간 다섯 곳의 경찰서에서 10여 건의 소환장을 보내왔던 것에 응하지 않고 콧방귀 뀌고 개사료 발송, 살포한 결과였다. 나는 바야흐로 저들의 아가리에 끌려 들어가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스릴을 느낄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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