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중대통령후보 백기완을 추모하며 / 장태수

10:28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셨다. 추모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선생이 맺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깊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추모도 선생과의 관계이다. 어느 시점, 어느 인연으로 닿았는지에 따라 추모는 똑같지 않다.

선생의 삶만이 아니라 추모하는 이의 삶도 추모에 묻어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선생을 민중대통령후보 백기완으로 추모한다. 그런 이유로 선생은 나에게 당이다. 그리고 이 추모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이들이 선생과 맺은 관계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었고, 지금도 그들의 존재방식이다.

선생이 가신 그제 새벽별이 하늘을 스물아홉 번 돌기 전의 그해 겨울이었다. 민중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선생은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백기완이 되라는 것과 목숨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주위사람들에게 돈 삼만 원을 받아오라는 구체적인 실천지침까지 요구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유세 ⓒ통일문제연구소

그날 그 장소에 걸린 여러 장의 플래카드 중에는 진보정당(또는 민중정당) 건설 구호가 있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선생이 말한 백기완은 당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많은 사람들은 당이 되었다. 지금도 당이 되어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삶을 바쳤으니 따지고 보면 목숨을 바친 셈이다. 실제로 목숨을 바쳐 당이 된 이들도 적지 않다. 세상사람 모두가 그렇지만,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이 주위에 진 빚은 또 얼마나 많은가. 삼만 원 받아오라는 실천지침까지 완벽히 지킨 셈이다.

92년 당시로 잠시 가보자. 그때 우리는 대통령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귤을 팔았다. 민중권력 쟁취라는 글자가 새겨진 장갑을 팔았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라는 책을 팔았다. 그리고 귤을 담은 비닐봉지와 책에는 민중의 시대로 가자는 격문 한 장을 넣었다. 당시 우리가 팔았던 것은 바로 격문, 우리들의 꿈이었던 것이다.

백기완 선생과 함께 꾸었던 우리들의 꿈은 심장박동을 빨라지게 했다. 불현듯 눈물을 솟게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우리들의 꿈은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고, 참을 수 없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세상모르는 철부지라는 비웃음은 혁명가의 순수함을 칭하는 것으로 웃어넘겼다.

용납할 수 없었던 조롱은 선생을 미제의 스파이라고 했던 것이다. 여러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외쳤고, 선동했다. 정권의 분열책동에 말렸다는 비판은 논쟁할 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제의 간첩, 씨아이에이(CIA)의 스파이라는 비난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낙인이었고, 배제였다. 다수파의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이 폭력은 왜곡이고, 시대변화를 읽지 못한 몰역사적인 것이기도 하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선생은 군부독재정권 종식을 주장하며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을 막기 위해 후보를 사퇴한 바 있다. 분열책동자라는 비판은 분열을 막기 위해 애쓴 선생의 노력을 왜곡하는 주장이다. 87년의 이른바 민주진영의 분열은 91년 김영삼과 노태우의 민자당이라는 보수대연합으로 퇴행했다. 그리고 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으로 퇴행의 모습은 진화했다.

역사의 퇴행은 민주진영을 정치적으로 대표 또는 대변했던 양김의 계급적 본질에 기인한 것이다. 반세기동안 굳어진 군부독재정권과 보수정치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부재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역사적 퇴행은 정치이벤트가 아닌 역사의 필연이었다. 이 역사의 필연에 조응하는 우리의 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였다.

92년의 민중대통령후보 전술을 미제의 간첩질이라고 조롱한 이들은 이 시대적 과제를 읽지 못한 것이다. 선생이 유별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우리말을 긷고, 사용한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것, 저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담아야하기 때문이다.

▲1992년, 예순 살. 제14대 대통령선거 민중후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민중대통령후보 백기완은, 앞에서 적었던 것처럼, 당으로 진화했다. 선생이 가신 지금, 당은 어느 때보다 위태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딨으랴, 하지만 의지의 낙관조차 쉽지 않은 시간이다. 역사의 진전은 일직선이 아니라 퇴보와 전진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위로도 좀처럼 마음에 닿지 않는다.

이럴 때 선생이 가셨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말씀만 남긴 채.
어설픈 희망의 언어 대신 오늘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가슴으로 불러야겠다.
민중대통령후보 백기완을 추모하며, 나의 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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