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30년 진보정치인다운 장태수의 퇴장

12:22
Voiced by Amazon Polly

“당직선거의 시작은 당직의 마감이기도 합니다. 당을 새로 만들기로 결정하였으니 기존의 당은 그 정치적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 저도 진보정치인으로의 역할을 마감합니다.” 대구 진보정당의 얼굴, 장태수 전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이 은퇴를 선언했다. 대구 서구의원을 3차례 지냈고, 이제 겨우 50줄에 들어서기에 그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장태수 서구의원의 의정활동에 기대 행정 비판 보도를 했던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장태수는 “내 역할이 다 했다”며 퇴장했다. 장태수가 남긴 성과, 한계는 이제 정의당을 포함한 다른 진보정치인의 몫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태수가 첫 진보정당 선거운동에 발을 디딘 1991년, 민중당 장명숙 대구시의원 후보, 2002년 서구의원 선거, 2006년 서구의원 선거, 2008년 국회의원 선거(서구), 2010년 서구의원 선거, 2014년 서구의원 선거, 2018년 대구시의원(서구2) 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서구) 선거벽보

1991년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장태수는 그해 6월 20일 치러진 대구시의원 서구을 장명숙 민중당 후보 선거운동을 하며 정치에 발을 디딘다.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한 한국노동당이 1992년 민중당과 통합하면서 민중당원이 됐고, 그해 대선에서는 백기완 무소속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대학을 졸업한 장태수는 1997년 권영길 국민승리21 후보 선거운동 이후 민주노동당 창당에 함께하면서 서구 비산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서구문화복지센터에서 노동 상담을 하고, 실업극복 국민운동부 활동을 하면서 실직가정 생계비 지원, 임대차 상담을 도맡았다. 3년 동안 7천 건 상담을 했다. 누구보다 동네 사람을 많이 만났기에 2002년 지방선거 후보자가 됐고, 득표율 60.55%로 제4대 서구의원에 당선됐다. 정당공천이 없던 시절이지만, 진보정당 당직자가 공직선거, 그것도 대구에서 당선된 첫 사례였다.

▲장태수는 민주노동당 시기 길거리에서 주택, 상가임대차 상담 등을 도맡아 진행했다. [사진=장태수 제공]

장태수는 진보정당에 몸담으면서 두 가지 역할을 자임했는데, 그중 하나가 “진보정당이 제도 정치권에 안착할 수 있다는 걸 지역에서 증명하고, 노동조합에도 진보정당의 효능감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노동, 임대차, 실업 상담을 하면서 만난 서구주민 눈높이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게 목표였다. 시장, 작은도서관,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의 민원을 듣고, 무상급식을 실현하기 위해 농성하고, 파업 현장에 참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지만, 이들의 요구를 행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게 그의 역할임을 잊지 않았다. 진보정치인은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의제를 외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6일 서구의회 본회의장에서 “여성공무원의 주요보직 인사와 직장 내 양성평등실현” 문제를 지적했다. 2004년 11월 17일에는 전국공무원노조 파업에 참여한 서구청 공무원 징계의 부당성을 지적했고, 2005년 11월 30일에는 서구청의 청소환경업무 민간위탁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공기관이 민간에 위탁하는 업무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은 본 의원은 단언하건데 한 가지밖에 없다. 업무를 담당하시는 노동자들의 월급을 깎고 열 명이 해야 되는 일을 여덟 명에게 시키고 여덟 시간해야 되는 일을 열 시간 시켜서 노동환경을 굉장히 열악하게 만들어 생기는 비용 절감밖에 없다”는 2005년 그의 발언은 2022년에도 여전히 필요한 목소리다.

▲서구의원 시절 장태수

장태수의 의정활동은 진보정당 정치인들에게 이정표가 됐다. 다른 한편으로 감투나 쓰려고 했던 지방의원들은 피곤한 일이 됐다. 행정에서 몫이 없었던 주민의 목소리를 듣고, 삶의 현장에서 주민을 만나고, 특혜를 거부하면서 행정부를 날카롭게 감시하고, 사회운동과 함께하는 장태수가 일종의 진보정당 정치인의 표상이 된 것이다. 그는 2006년 낙선했지만, 2010년 재선, 2014년 3선 서구의원이 됐다. 그 사이, 동구, 북구, 수성구에서도 진보정당 소속 지방의원 당선자가 나왔다.

당선과 낙선을 거듭하면서 “진보정당의 강한정당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장태수의 두 번째 역할은 부침을 겪었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겪으며 그도 2008년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총선에도 출마한다. 이후 노동당을 거쳐 정의당에 몸담으면서 모두 7번의 선거(구의원 4번, 시의원 1번, 국회의원 2번)를 치른다. 민중당부터 시작하면 정의당까지 7개의 당적을 거쳤다. 2020년 총선(서구) 낙선 후 그는 정의당 혁신위원회, 중앙당 대변인, 당 대표 비서실장도 지냈다.

그는 “강한 정당으로서 유지 발전하려면, 시민과 공감하면서 구체적 실천을 통해 신뢰를 얻고 제도정치에 들어가는 대중정치인을 발굴하고 훈련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게 실패했다”며 “이걸 제 과제라고 생각한 20년 전과 지금 시민들의 처지가 달라졌다. 제가 이젠 그 역할을 수행할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정치 은퇴 이유를 밝혔다.

그는 자신보다 진보정치운동을 먼저 했던 선배, 그리고 후배 세대에게 “계속해 나가야 될 사람들의 출발선인 20년 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더 좋은 환경을 못 만들어준 것 같다”며 미안함을 토로했다.

▲장태수는 무상급식 조례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 단식농성, 의회 발언 등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사진=장태수 제공]

현재 그리고 미래세대 진보정치인은 퇴장하는 장태수의 모습에서 배움을 얻으면 좋겠다. 당 대표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장태수는 6월 말부터 서구 주민들을 만나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러고는 정치인 장태수의 퇴장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시민들한테 채용해 달라고 끊임없이 호소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퇴직 인사를 하는 게 정치인의 도리”라고 했다. 그 도리를 다한 덕인지, “장태수가 왜 그만두냐”, “국회의원 한 번 맨들어줘야 하는데”라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흔치 않은 풍경이다. 선거 때 반짝 나왔다가 사라지는 정치인은 진보정당이나 민주당에서 더 흔했기 때문이다.

그는 2018년 서구의원 직을 마무리하면서도 본회의장에서 “저를 키워주신 서구와 주민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제가 진정으로 관심있는 방향은 좌도 우도 아닌 아래입니다. 정치는 아래로 향하는 것이어야하고, 정치인은 낮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라고 퇴장 인사를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장태수는 자신이 몸담았던 서구 햇빛따라 도서관의 역할 전환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기자는 장태수에게 대구지역 90년~2000년대 진보정당운동사 구술을 부탁했다. 그의 인생 2막을 기대하며, 그가 남긴 성과는 계승하고, 한계는 넘어설 또 다른 진보정치인의 출현을 바란다. 그건 장태수의 퇴장을 말렸거나, 아쉬워한 이들의 몫이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