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김수영-되기] (7) 현대식 교량

18:11

현대식 교량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
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
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
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닌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나는 나의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
(이런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신용이라고 해도 된다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이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 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

이런 경이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停頓)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나는 이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實證)을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

글에서 인용한 ‘현대식 교량’은 <김수영 전집 1(시)>에 수록됐습니다.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나 「사랑의 변주곡」이 낭만적 파토스의 과잉인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그가 영원한 청년으로 남은 것은, 후기시 중 뛰어난 작품에서 낭만적 열정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시에서 낭만주의를 소거하고 나면 남는 게 그리 풍성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시는, 비극적인 방향이든 아니면 뜨거운 열정 쪽이든 낭만주의자들이 쓴다. 낭만주의라는 불꽃은 알게 모르게 젊음을 태우며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시는 「거대한 뿌리」와 「사랑의 변주곡」을 직접 잇는 작품이다. 김수영은 “저 젊은이들”에게서 “새로운 역사”를 예감하는데, 그 예감의 근거라고 할까 아니면 시작은 “죄가 많은 다리”, “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 건너다니는 “현대식 교량”이다. 이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 그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되지만, 그 회고주의는 그 다리가 “죄가 많은 다리”인 것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식민지를 직접 경험한 그였기에 이러한 상기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식민지의 잔재물인 “현대식 교량”은 역사적으로 “죄가 많은 다리”인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김수영 스스로 식민지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죄 많은 역사’에 대해서 퇴폐적으로 비관하거나 도덕주의적 입장에 서서 서슬 퍼렇게 단죄하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되 역사를 오늘날의?관점으로 회칠하지 않는 이 지성은 그렇게 쉽게 획득되는 게 아니다. 식민지에서 주체적으로 해방되지도 못했고, 또 식민주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일반적이지 않게 극복해가는 인상을 이 작품은 준다. 화자는 식민지 시절을 가리키는 “죄가 많은 다리”인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킨다”. 그것은 그러한 “연습을” “무수히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심장을 중지시킨다”는 인상적인 구절은 “현대식 교량”이 “어째서”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르는 “나이 어린 사람들”의 인식에 보폭을 맞춘다는 의미이다. 가끔 시적 인식은 이런 하방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하방을 모르는 급진성이 관념의 노예가 되는 예는 차라리 부지기수에 가깝다. 그런데 독자인 내 “심장을 중지시”키는 결정적인 구절은 괄호 안에 버려진 듯 위치한 이 구절, “이런 연습을 나는 무수히 해왔다”이다. 체험하지 못한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인식 강도는 아무래도 무르기 마련인데, 김수영은 그것을 자신의 체험으로 억압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체험을 잠시 내려놓는 길을 택한다.

이런 ‘결단’은 돈오(頓悟)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연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김수영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습”은 5·16쿠데타 이후 보여줬던 퇴행을 막 빠져나오면서 쓴 「아픈 몸이」에서도 등장하며 그 구절은 이렇다. “아픈 몸이/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무한한 연습과 함께”. 그리고 그 다음에 쓴 「詩」에는 이런 다짐이 들어 있다. “어서 일을 해요 변화는 끝났소/어서 일을 해요”. 김수영이 후기시에서 보여주는 어떤 경지는 이렇듯 “일”과 “무한한 연습” 즉 점수漸修의 부단한 이행을 통해서 얻은?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무한하게 연습하는가? 어떤 시에서도 그 내용은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연습”이 “사랑”을 향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사랑은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무한한 연습”을 통해 “심장을 중지시”키면서 자신의 과거로 현재를 독단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먼저 이해하는 일, 이것은 사랑의 방법이기도 하면서 사랑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가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고 해서 “심장을 중지시”키는 “무한한 연습”을 “반항”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우리는 속을 필요가 없다. 그러한 반항 자체가 “무한한 연습”인 것이며, 그 “반항”을 통해 사랑은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의 인식을 억압하지 않고, 자신의 체험을 폭력으로 사용하지 않고 내려놓을 때 김수영은 “새로운 역사”의 가능성을 느끼는 것이다.

민중을 하찮은 “곤충”으로 전락시켜버린 식민지 시절은 전통의 흐름을 싹둑 잘라먹어버렸다. 김수영에게는 아마도 기댈 전통이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가 끝나고 남은 전통의 나머지가 혹 있었다면 이제는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식민지와 전쟁, 이 두 가지를 말하지 않고 한반도의 현실을 말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의 어떤 반동도 진보도 성립 불가능하다.

여담이지만, 고종석이 한겨레신문에다 미당의 「뻔데기」를 소개하며 한국시사를 ‘서정주와 나머지’로 표현했지만, 그 말은 ‘김수영과 나머지’로 언제든 둔갑할 수 있는 수사이다. 도리어 해체, 파괴된 전통에 대해서 미당은 진지하거나 솔직하지 못했다. 그가 택한 전통은 사실 환영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적 관점이 빠진 전통은 전통이 아니라 그저 시인의 창조물일 뿐이다. 김수영이 적잖은 시 월평을 쓰면서도 미당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무튼, 기댈 전통을 발견하지 못한 김수영에게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듯 보인다. 예컨대 훗날에 쓴 「사랑의 변주곡」에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것은 김수영의 지난 시간에 대한 회오를 나타낸다.

“새로운 역사”에 대한 가능성을 그가 순간적으로 느꼈을 때 과연 그것은 “경이”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이”는 크로노스적 시간을 벗어난 ‘존재의 들림’을 가져온다. “이런 경이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는 그것을 증언하며, 여기서 “정지”는 바로 크로노스적 시간의 정지를 말한다. 크로노스적 시간이 순간 정지해야 다른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아니 다른 시간이 찾아오면 기존의 시간은 순간적으로나마 폐기된다. (이게 아마도 김수영이 말하는 혁명일 것이다.)

이 시는 1964년 11월에 썼고 그 해 2월에는 「거대한 뿌리」를 썼다. 그런데 「거대한 뿌리」에서 김수영이 발견하고 흥분을 금치 못한 것은, 김수영이 민중의 반복되는 삶에서 “뿌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민중의 삶이 이루는 ‘영원한 사랑’이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모르는 “진보주의자와/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비숍 여사”의 책에서 발견한 조선 민중의 역사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며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그것은 폐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김수영이 가리키는 역사는 “왕궁의 음탕”(「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 아니라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같은 “무수한 반동”(「거대한 뿌리」)의 역사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을 알지 못하면 김수영의 후기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자유주의 비평가들이 농단에 가깝게 언급했던 김수영의 추상적인 자유는 재고되어야 하며, 그를 막연히 젊은 시인이라고 칭하는 것도 막연한 감상주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김수영이 인식하고 앙망했던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정치한 비평적 언술이 생략된 논의는 결국 엉뚱한 결론을 이끌기 마련이다. 예컨대 황현산은 김수영의 시적 후계자로 느닷없이 미래파 시인들을 지목하기도 한다.(「김수영의 현대성 혹은 현재성」)

물론 시인에게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정치적 진술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미 시적 인식으로 간파한 “새로운 역사”는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이면서 근대적 “속력과 속력의 정돈(停頓) 속에서” 빠르게 나타난다. 그것이 설령 다시 산문의 세계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해도 그것의 번개 같은 현현은 곧 불가능의 영역을 현실화시키는 시의 몫이기도 하다. 현실에서의 혁명은 이 순간의 “무한한 연습”의 누적에 의해서, 하지만 시적 순간과는 조금 다르게 일어난다. 이게 사회 혁명과 시적 혁명의 변증법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시적 혁명은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實證)”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작품 전문은 저작권자와 협의하에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