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단속 일변 불법체류 대응, 또 다른 ‘김민수’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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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대구 서구 한 교회에서 작은 기도회가 열렸다. 통근버스를 운행하던 중 맞닥뜨린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불응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30여명을 태운 버스를 그대로 몰다 단속 공무원들에게 부상을 입힌 김민수(가명, 42)의 사연이 전해지고, 그를 위해 열린 기도회다. (관련기사=접견 시간은 10분, 동료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24.2.28))

한켠에서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대표가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를 했다. 김민수의 이야기는 김 대표의 오래전 기억을 소환했다. 오랫동안 이주노동자와 함께 생활한 김 대표는 그 세월만큼 주변의 이주노동자가 강제 추방된 사건을 여러 번 겪었다. 그래서 그는 김민수가 느꼈을 트라우마가 선명하게 보인다. 본인의 상처와 같은 모양으로 여긴다.

▲기도 중인 김헌주 북부이주노동자센터장

2004년, 성서공단노조에서 이주사업부장으로 활동할 당시 김 대표는 출입국 단속에 붙잡힌 미등록 이주노동자 1명을 탈출시킨 적이 있다. 그해 4월, 중국 이주노동자 정유홍 씨가 임금체불 등 문제로 유서를 남기고 대구도시철도 아양교 역에서 투신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김 대표도 대책위 활동을 하고 있던 시기다. 김 대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탈출시킨 일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아 구속수사를 당하고,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2012년엔 인연이 깊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단속에 잡혔지만 속수무책으로 그의 강제추방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뒤늦게 단속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단속은 끝난 후였다. 외국인보호소에서 창살을 사이에 두고 그를 마주하는 게 전부였다. 무력감과 죄책감으로 며칠을 공황상태로 보냈다. 몸을 추스르려 찾은 목욕탕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추방당한 동료가 마지막 순간에 보낸 문자를 아직 보관하고 있다. “소장님 이재 나 업서 마야(친구) 힘들대 도아 주새요. bye…”

▲김헌주 대표는 2012년 강제추방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마지막 문자를 여즉 보관하고 있다.

강제 단속과 처벌로 일관되는 현행의 불법체류 대응 제도는 쇠락하는 공단에선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한다. 김민수 역시 과거 처벌 받은 전력이 있다. 2016년, 김민수는 사업상 필요로 인해 명목상 대표로 등기된 상태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사건에 연루돼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처벌을 받은 바 있다.

사업주 A 씨는 낙후된 공단에선 이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일로 처벌 받을 처지에 있는 사업주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한다. 대구 뿐 아니라 국내 공단 어디든 이주노동자 없이 회사 운영은 불가능한 상황이고, 고용허가제 규정을 모두 준수하며 고용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히 A 씨는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낙후된 공단의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A 씨는 “지금 당장 대구 공단 소기업 들어가 보면, 미등록 없는 공장이 없을 것”이라며 “우리가 필요한 인력만큼 기관에 신청한다고 다 배정해 주는 게 아니다. 한국 사람 수에 맞춰 정원을 배정을 하는데 정작 한국 사람이 안 온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등록이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면 어떻게 하나. 출입국이 그걸 모를까? 알면서도 단속하라니까 하는 걸거다. 현실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장 임대 전단이나 상가 임대 전단이 덕지덕지 붙은 낙후된 공단으로 유입되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 이주노동자다. 그덕에 빈 상점은 때때로 이주민 식료품 상점이나 휴대전화 상점으로 채워진다. 대구시를 비롯한 국내 이주노동자는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국가도, 지자체도 파악하지 못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없이 존속 불가능한 공단
출근하는 이주노동자 강제 단속, 언제까지

▲대구 한 시장. 상인도 손님도 이주민이 주를 이룬다.

대구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외국인 주민은 5만 4,537명으로, 총인구의 2.3%를 차지한다. 이중 외국인 자녀나 국적 취득자를 제외하면 3만 9,442명으로, 가장 큰 비율을 외국인 근로자(7,750명)나 기타 외국인(1만 4,829명)이 차지한다. 기타외국인의 대부분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결혼이민자나 유학생, 외국국적동포도 대체로 이주노동을 하며 생활하기에, 이들 약 4만 명을 대부분 이주노동자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대구 전체 산업단지 종업원 수가 10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공장의 절반 가까운 수를 이주노동자가 채우는 셈이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문제는 그들에게 자격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을 고용한 사업주 처벌, 그리고 강제 단속으로 파생되는 여러 인권침해, 행정력 낭비 등 다른 문제를 낳는다.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사업주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건 까다로운 제도가 만드는 빈틈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빈틈은 방치한 채 끊임없이 이주노동자 유치 정책을 펼친다. 인구소멸 문제를 겪는 지방자치단체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유치 경쟁에 뛰어든다. 유입되는 이주노동자가 많을수록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증가한다. 정확한 통계치는 알 수 없지만, 학계에선 30~40만 명 정도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도가 방치된다면, 앞으로 사업주 처벌과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의 문제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김민수가 명목상의 대표로 등기돼 처벌 받은 과정도 이러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경찰은 이번 사건에서도 김민수가 2016년 당시처럼 책임을 질 것을 우려해 무리한 도주를 했을 가능성도 수사했다. 하지만 A 씨가 나서서 김민수에 대한 월급 지급 내역 등을 제시해 김민수가 사업주가 아니며, 이주노동자와 고용관계도 없음을 증명했다. 경찰은 이러한 입증에 근거해 관련한 수사는 무혐의로 종결했고 우발적인 범행으로 판단했다. 대신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론 실제 사업주가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김민수가 구속수사를 받고 실형의 처벌까지 받는데는 끝끝내 그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1명을 도주시킨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반복된 추돌에 도주를 포기한 김민수는 단속 공무원들에게 체포되기 전 버스 안의 이주노동자들이 달아날 수 있도록 차량 앞문을 열었다. 그 틈으로 1명이 빠져나갔다. 이탓에 그의 공소사실엔 1명을 도주시켜 증거인멸을 하려 했다는 사실도 추가됐다.

A 씨는 “김민수는 자기 이익을 위해 도주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 차에 있던 직원에게 당시 상활을 들었는데, 외국인들이 단속 차량을 보고 아비규환이 됐다더라”며 “도망갈 곳이 없으니 뒷좌석으로 몰려가면서 소리쳤고, 창문으로 뛰어내린 사람도 있는데 잡혔다. 그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김헌주 대표도 마찬가지 의견이다. 김 대표는 강제 단속으로 인한 상처와 이어지는 트라우마에 주목한다. 그는 “사람들이 소리치는 그 상황에서 예전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는 것을 저는 이해한다. 그 트라우마는 오랜 시간 지우기 힘들다. 이주노동자와 생활해 본 사람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단의 소기업 사정을 보자, 한국인이든 이주노동자든 그냥 같이 손에 기름 묻히면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직장동료다. 형제처럼 지내게 된다”며 “사고 위험에도 이뤄지는 강제 단속이 문제다. 이번 사건도 명확히 그 문제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강제 단속, 비 오는 날 물웅덩이 퍼내는 격
출소한 김민수가 발딛을 우리 사회
얼마나 변해있을까

근본적인 해결이 없으면 또 다른 얼굴을 한 제2, 제3의 김민수는 어디에서든 등장할 수 있다. 법무부 출입국심사과장을 지낸 김도균 한국이민재단 전 이사장은 한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정책을 비 오는 날 물웅덩이에 물을 퍼내는 격이라고 비유한다. 점차 증가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단속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 전 이사장은 “불법체류 상황은 인권문제다. 얼마 전 농촌에서 인력을 공급하는 곳에서 외국인을 싣고 운전하던 중 사고가 크게 났는데, 119가 출동해보니 병원에 안 가고 다들 도망갔다더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이번 사건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30명을 들어냈다면, 그 자리엔 누가 들어갈까? 한국 사람이 들어갈까? 아니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할까?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어디든 마찬가지”라고 짚었다.

이어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해선 단속 외에 별다른 정책이 없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며 “단속으로 해결할 수 없다. 40만 정도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단속하나. 사람 잡는 일을 또 누가 좋아하겠나. 담당자도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런데 단속 실적은 법무부에 보고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요즘은 무작위 단속은 잘 안 하고 신고받은 걸 단속하는 추세인데, 단속을 안하면 신고자가 민원을 넣는다. 요즘은 노조도 신고를 많이 한다. 단속을 안한다며 출입국 앞에서 시위도 한다”며 “단속이 끝도 아니다. 송환하려면 여권 만들어줘야 하고, 출국 전까지 보호소 운영도 해야 하고, 짐 챙기고 체불임금도 해결해야 한다. 행정력이 상당히 든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문제를 법무부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다. 범정부 차원의 이민정책 컨트롤타워가 필요한데, 정치권에서는 이슈화하기에 부담되는 내용이라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민수가 얼마의 형을 살든, 교도소를 나와서는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민수가 다시 기계 앞에 섰을 때, 이주노동자 제도는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지난해 김민수가 통근버스를 운행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맞닥뜨린 현장.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