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김용기 선생이 전한 봉사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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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심이 아닌 인류와 사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긍휼한 마음으로 말없이 도와야 한다. 넓은 아량을 가져야 한다. 날마다 성찰하며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 1986년 연말에 장교임관을 앞두고 찾아뵌 김용기(1909-1988) 선생이 해주신 말씀이다. 김 선생님은 원주시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셨다. 그의 저서 <조국이여 안심하라>(1980, 규장문화사)를 읽고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찾아뵈었다.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방에서 폭포수처럼 쏟아낸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사진=재단법인 일가재단]

임관하고 교육받던 중 재차 찾아뵈려고 하는데, 언론을 통해 1988년 8월에 세상을 떠나셨음을 알게 되었다. 장례는 대한민국 최초 농민장이었다. 일가 선생은 농촌부흥을 위해 1962년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워 일평생 동안 60여만 명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는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의 씨앗이었고, 뒷받침한 밑거름이었다. 이러한 삶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있다면 광복 후에는 일가 김용기 선생이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선생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국가안보를 위해 불타는 열정이 아니라 개인의 영달을 위해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인류와 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은 다짐뿐이었다. 도리어 우리 사회와 이웃을 대안 없이 비판하곤 했다.

일가 선생은 청년시절 목숨 걸고 일제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르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이렇게 힘들게 얻은 광복이기에 우리사회를 위해 기꺼이 헌신했으리라. 요즘 주변에 말로만 봉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부끄럽게도 필자 또한 그렇게 살아왔기에 구별할 수 있다.

지난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보내며 그간 삶을 돌이켜 뉘우쳤다. 군 복무를 핑계로 가족들에게도 소홀했다. 1~2년마다 이사를 하면 더 많은 이웃을 만나고 더 많은 정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해 먼저 이웃에 손을 내밀지 못했다.

이번 스승의 날을 보내며 일가 선생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재활 전문가인 친구와 함께 인근 마을회관을 방문했다. 혼자 가기가 어려워 친구를 앞세웠다. 농촌에는 회관이 곧 경로당이다. 여러 어르신들 앞에서 필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는데, 친구는 어르신들과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다.

봉사도 운동처럼 연습이 필요하다. 봉사도 계속해야만 마음의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자신의 욕심을 버려야 진심 어린 봉사를 말없이 할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바로 드러난다. 현장에서 사진만 찍고는 떠난다. 봉사는 거창하지 않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긍휼한 마음으로 도우면 된다.

일가 선생의 말씀을 40여 년이 지나서야 현장에서 깨우쳤다. 이웃에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픔을 나눈다. 허물을 보면 덮어 주려고 한다. 때로 속아 주는 멋을 부린다. 교육과 노동을 통해 한평생 이를 몸소 보여 준 일가 선생처럼 실천해야겠다. 진심으로 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