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회 교육위, 유가초 통폐합 교육청 손들어줘

힘없는 시의회, 교육청 일방행정 제동 못 걸어
교육위원장, “교육청 행정절차 문제 있는 것 맞아”

16:34

작은 학교 통폐합을 두고 갈등을 겪던 대구 달성군 유가초등학교 문제가 9부 능선을 넘었다. 21일 오전 대구시의회 교육위원회는 대구교육청이 제출한 ‘대구광역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 개정안’을 원안대로 표결 없이 가결했다. 26일 본회의 의결만 남겨둬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21일 오전 대구시의회 교육위는 대구광역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 개정안’을 심의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21일 오전 대구시의회 교육위는 대구광역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 개정안’을 심의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지난 3월 학교장을 통해 공식적으로 학부모에게 알려진 유가초 통합 문제는 유가면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83개 가구에서 114명이 다니는 작은 학교가 쉼 없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마을은 찬반으로 나뉘어 찢어졌다.

대구교육청은 이전 통합을 ‘조용히’ 물밑에서 추진했다. 적어도 교육청은 2014년 9월부터 유가초 이전 통합 추진을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8일 시의회에 출석한 우동기 교육감과 21일 교육위에 출석한 교육청 관계자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학부모에게 공식적으로 알린 것은 올해 3월이다.

교육청은 학부모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나서야 유가초 동창회로부터 찬성 의견을 받고, 이전 통합 추진을 시작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동창회 내에서도 의견은 분분했다.

동창회도, 학부모도 의견 분분한 학교 통폐합
교육청만 “동창회도, 학부모도 다수가 찬성”

▲21일 오전 대구시의회 교육위에는 유가초등학교 이전 통합에 대한 찬성하는 학부모와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찾아와 방청했다.
▲21일 오전 대구시의회 교육위에는 유가초등학교 이전 통합에 대한 찬성하는 학부모와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찾아와 방청했다.

이전 통합에 반대한 동창회 관계자 하상철 씨는 “2015년 2월에 동창회는 이전 통합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교육청에 회신을 했다”며 “그런데 올해 일부 동창회원들이 회장도 없이 임시회의를 열고 찬성 의결해 교육청에 의견 제시를 한 상황”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교육청은 2015년 2월 의견서는 동창회 공식 의견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희준 행정국장은 “2015년 2월 의견서는 직인도 없었다”며 “동창회에서 반대하는 분이 소수”라고 말했다.

21일 교육위 회의에서도 통합을 촉박하게 진행한 이유를 묻자 정희준 국장은 “교명 문제를 두고 2016년 1월에 동창회에서 의견 회신을 했다”며 책임 소재를 동창회로 넘기는 듯한 답변을 했다. 교육청 설명을 그대로 인정해도 교육청은 교육 행정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반영하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교육청은 학부모 대상으로 첫 번째 설명회를 4월 25일 열었다. 하지만 이보다 닷새 앞선 4월 20일에 교육청은 유가초 학교장을 테크노4초 학교장으로 겸임 발령했다. 설명회를 통해 학부모를 만나 소통을 하기도 전에 학교 이전 통합을 기정사실로 하고 일정을 추진한 셈이다.

논란은 계속됐지만, 교육청은 이전 통합 일정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6월에는 9월 1일 개교를 마무리 짓는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7월 시의회에서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9월 1일 개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구나 개정안에는 유가초뿐 아니라 문제없이 진행 중인 달서구 용천초등학교 신규 개교 안도 포함됐다.

교육위는 의회가 용천초만 개교하도록 개정안을 수정 가결할 수 있는지 행정자치부와 고문변호사 등에 질의했다. 하지만 의회 차원의 수정 가결은 교육감 행정권을 침해한다고 회신받았다.

배창규 대구시의회 교육위원장(새누리당, 비례)은 원안 가결 후 시의회에서 논의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번 안건은) 원래는 시의회 논의 대상이 아니”라며 “우리가 수정 통과시킬 수 있다면 논의할 수 있지만, 원안에 대한 가부만 결정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배창규 대구시의회 교육위원장이 '대구광역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 개정안’ 원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배창규 대구시의회 교육위원장이 ‘대구광역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 개정안’ 원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힘없는 시의회, 교육청 일방행정 제동 못 걸어
교육청에 “제대로 해달라” ‘부탁’하는 게 전부

시의회가 제 역할을 못 한 측면도 분명 남는다. 의회가 직접 조례안을 수정할 수 없다면, 교육청에 수정안을 제출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었다. 이미 회의에서도 배재훈, 최재훈, 윤석준 의원(이상 새누리당) 등 교육위원 다수가 유가초 이전 통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결국엔 갈등 없이 추진해달라고 교육청에 ‘부탁’할 뿐 의회 차원에서 제동을 걸진 못했다. 일방행정을 추진해도 끝내는 뜻을 관철할 수 있는 교육청이 힘없는 의회의 부탁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신규 학교 개교 일정과 의사일정이 문제라면 일정을 조율해 회의를 소집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 지방자치법 45조 2항은 재적 의원 ⅓ 이상이 요구하면 15일 이내에 임시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대구광역시 의회 회의 규칙’은 회의에서 논의할 의안은 회의 시작 10일 전에 발의토록 하고 있다. 긴급히 처리해야 할 경우에는 10일 이내에도 발의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모색할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교육청의 일방행정에 제동을 걸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교육청이 제시하고 있는 이전 통합 찬반 설문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중요한 결격 사유가 있었다. 설문조사 내용도 내용대로 문제지만, 설문조사 과정에서 학교장이 개입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관련기사=유가초 교장, 통폐합 설문조사 개입)

이는 의회가 정말 작은 학교 통폐합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조율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지점이다. 결국 교육청의 불통식 일방행정 앞에 민의를 대변하는 시의회는 손을 들었고, 학부모는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관련기사=유가초 도약? 대구교육청, 통폐합 갈등 숨기고 언론플레이(‘16.6.8), 졸속행정 유가초 통폐합 갈등⋯대구시의회에서 해결될까(‘16.6.15), 대구교육청, 교명승계가 유가초 통폐합 명분?…“궁색한 논리”(‘16.6.17), 대구서부교육청 교육장, 학교통폐합 반대 학부모에게 “국가정책 반대는 반란”(‘16.7.6), 대구시의회, 학교통폐합 갈등 중재 나설까?(‘16.7.13), 학교통폐합 추진 대구교육청, 시의회 거수기로 여기나(‘16.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