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바다거북이만 걱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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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취재한 적 있다. 그해 4월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발생했고, 8월 환경부는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전면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2015년 해외의 한 연구팀이 공개한 콧구멍에 낀 빨대로 고통스러워 하는 바다거북 영상은 세계적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취재를 위해 만난 다양한 취재원들도 공통적으로 바다거북이 이야길 했다. 그해 11월에는 국내 커피전문점 매출 1위 스타벅스가 종이빨대 도입을 시작했다.

그 무렵 열린 서울 카페쇼에서 쌀 빨대를 만드는 중소기업 대표와 생분해 플라스틱 PLA 제조 영업사원도 만났다. 이들은 플라스틱 대체 수요에 대해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음료 제조업체 관계자도 포장재를 쉽게 분리할 수 있도록 만들거나, 무라벨 용기 제작 계획을 밝혔다. 당시 작성한 기사에서 2015년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 보고서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132.7kg이라고 썼다.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코로나 팬데믹 이후 플라스틱 소비가 더 늘어 2020년 기준 1인당 145.9kg이라고 한다.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어쩌면 순진했다. 예기치 않은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고, 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아니 더 심각해졌다. 수 년 간 종이빨대를 쓰고 있는 스타벅스는 시즌별로 다양한 텀블러를 출시하고, 증정품 마케팅도 열심이다. 농심은 이달부터 자사 음료 제품 종이빨대를 다시 플라스틱 빨대로 되돌린다고 밝혔다. 사라지거나 또는 달라질 것으로 보였던 테이크아웃 일회용컵도 여전히 건재하다.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8월 공개한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공청사 일회용컵 모니터링에서 음료 반입 수 대비 사용률이 83.1% 였다. 특히 대구시청은 100%로 나타났다.

기업과 공공기관 탓만 할 수 없다. 정부 제도부터가 후퇴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환경부는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전면 금지 조치 제도를 유예했다. 그 사이 플라스틱 일회용품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환경부는 2021년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개정했고,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 제한과 일정 규모 편의점과 제과점 등에서 비닐봉투 판매를 금지했다. 지난해 계도기간 종료를 보름 가량 앞두고,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철회했다. [관련기사=대구·경북서도 “일회용품 규제, 원안대로 시행하라” 촉구 공동행동(‘23.11.21)]

▲ 지난해 11월 21일 오전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대구지역 18개 단체는 ‘1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규탄 전국공동행동 대구참가자’로 이름을 올리고,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 기후시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민 자료사진)

당시 환경단체와 친환경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업체 반발이 컸지만 그 뿐이었다. 그때 카페쇼에서 만난 업체들은 여태 망하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을까. 바다거북이만 걱정일까. 위태로워지는 지구에 사는 우리의 미래는 정말 걱정이 안 되는 걸까.

오는 25일 부산에서 국제플라스틱 협약 5차 정부간협상위원회가 개최된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 ‘레인보우워리어호’가 부산항에 입항했고, 전국의 환경단체도 강력한 플라스틱 협약을 기대하면서 23일 오후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 대규모 플라스틱 행진을 기획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에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은 플라스틱 원천감량이 곧 기후위기의 해결책이라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2040년까지 생산량 최소 75%가 절감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생산부터 폐기까지 생애 전주기별로 플라스틱이 관리되는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이번엔 좀 더 세상이 나아질 수 있을까?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