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출입국관리소 단속 중 이주노동자 다쳐…폭력단속 은폐 의혹

경주동국대병원 입원해 치료 일정도 잡혔는데
갑자기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들, 응급실 앞에 상주하며 코숨 씨 감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갑자기 병원 옮겨...폭력단속 은폐 의혹”

16:22

울산출입국관리소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과잉 단속으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코숨(가명, 31) 씨가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가 코숨 씨를 만나자 울산출입국관리소는 치료 일정까지 잡은 코숨 씨를 타 지역 병원으로 이송해 폭력단속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4일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코숨 씨, 단속 피하다 5m 아래로 추락
머리, 다리 골절…왼쪽 눈 위도 찢어져
경주동국대병원 입원해 치료 일정도 잡혔는데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들 갑자기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

4일 오후 울산출입국관리소는 경북 경주시 외동읍 한 공장에서 취업비자가 만료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을 벌였다. 공장에서 일하던 코숨 씨는 자신을 잡으러 오는 단속반 직원들이 나타나자 공장 밖으로 몸을 피했다. 코숨 씨는 공장 쪽 옹벽 쪽으로 이동해 철제망 펜스를 넘으려 했고, 단속반 직원에게 팔을 잡혔다. 비가 내리고 있던 상황에서 철제망 펜스를 놓친 코숨 씨는 약 5m 아래로 추락했다.

▲코숨 씨는 철제망 펜스를 잡고 피하려다가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팔을 잡혔고, 미끄러지면서 추락해 다쳤다. [사진=경주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코숨 씨는 옹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머리와 다리 쪽을 부딪치며 정신을 잃었고 인근의 울산시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왼쪽 눈 윗부분이 찢어졌고, 진단 결과 머리 부위와 무릎뼈 부분 골절이었다. 검사 이후 코숨 씨는 바로 경주시 경주동국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저녁 코숨 씨 소식을 알게 된 오세용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병원을 방문했고, 치료와 단속 과정 중 벌어진 폭력 행위 등을 확인했다. 울산출입국관리소도 치료가 먼저라고 판단해 입원 수속을 밟았고, 코숨 씨는 경주동국대병원에서 11일 치료 일정도 잡았다.

그런데 10일 오후 코숨 씨는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 의해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으로 갑자기 이송됐다. 수술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경주동국대병원에 왔다가 코숨 씨가 사라진 사실을 안 오세용 소장 등은 코숨 씨를 만나기 위해 양산부산대병원을 방문했다. 통상적으로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다치면, 해당 지역에서 치료를 하는데 굳이 타 지역까지 옮겨간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코숨 씨를 만나기 위해 양산부산대병원을 방문한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실랑이 과정에서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으로부터 폭행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울산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폭행 관련 부분은 쌍방이 경찰에 신고해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고 말했고, 병원 이송 이유와 관련해서는 “양산부산대병원이 시설도 더 좋고,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외국인 노동자 지원 병원이라 옮겼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라서 치료비 부담도 있어 옮긴 것이다. 울산출입국관리소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쳤으니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세용 소장은 “빠른 치료가 필요하고, 수술날짜까지 잡혔는데 굳이 병원을 옮길 이유가 없다. 겉으로는 취약계층 의료지원을 내세우지만,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과 접촉하지 못 하게 해 폭력단속을 감추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울산출입국관리소, 양산부산대병원과 입원·수술 일정도 협의 안 해
무작정 병원 옮겨와서 수술·치료 늦어져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들, 응급실 앞에 상주하며 코숨 씨 감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 “갑자기 병원 옮겨…폭력단속 은폐 의혹”

경주동국대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했다면 처음부터 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상식적이다. 4일 입원 후 10일까지 7일이 지났고, 수술날짜까지 잡혀 있었다. 또, 그동안 울산출입국관리소는 단속 중 다친 이주노동자 치료비를 위한 보험도 따로 가입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병원비 경감을 위해 병원을 옮겼다는 이야기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경남 양산시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에 입원 중인 코숨 씨. 병원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벌써 수술을 한 후였다. 코숨 씨는 지금 9일째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

12일 오전 기자는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코숨 씨를 만났다. 10일 저녁 이송된 코숨 씨는 아직도 응급실에 있었다. 경주동국대병원에 있었다면 치료 중이어야 했다. 울산출입국관리소가 양산부산대병원의 입원, 수술 일정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병원을 옮긴 탓이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지난 2014년 의료소외계층 지원 의료기관으로 선정돼 높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공공의료팀 관계자는 “울산출입국관리소에서 병원을 옮길 수 있는지 문의가 왔다. 상급기관에 확인해보니 이송은 가능하지만, 서류 등 절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울산출입국관리소에도 절차 등을 확인했다. 그런데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갑자기 (코숨 씨를) 데리고 와 버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학병원이기 때문에 입원과 수술 일정이 빡빡하다. 미리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지만, 우리 병원에 들어온 이상 책임지고 치료를 할 계획”이라며 “입원 대기 중이라 병실이 나오면 바로 입원하고, 수술 일정도 조율 중이다”고 말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측이 파악하기로 코숨 씨 건강 상태가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함께 양산부산대병원을 방문한 오세용 소장도 병원 측이 책임지고 수술과 치료를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돌렸다.

왜 울산출입국관리소는 이런 결정을 했을까. 코숨 씨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입구에는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 2명이 서 있었다.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왜 여기에 나와 있느냐. 치료를 위해 와 있느냐, 감시하러 왔느냐”고 수차례 질문했지만, 이 직원은 기자를 피하면서 “아무 할 말이 없다”고 응급실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 앞을 서성이고 있다. 기자가 이유를 물었으나, 대답을 피했다.

응급실에서 만난 코숨 씨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단속 과정에서 폭력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코숨 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 안 해요”라고 했다. 다시 말을 건네자 다리와 머리에 통증을 호소했다.

지난 4일부터 꾸준히 울산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코숨 씨 주변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주변을 서성였다. 괜스레 이야기를 꺼냈다가,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엿보였다.

잇페이 부산이주민과함께 의료팀장은 “치료를 위해 나온 것인지 감시를 위해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호자인 동생이 있는데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보호자 행세를 하는 것은 감시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울산출입국관리소는 지난 3월 6일에도 경주의 한 공장에 들어가 이집트 출신 이주노동자 7명을 단속했고, 단속을 피하던 이주노동자 1명이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관련 단체는 11일 울산출입국관리소 앞에서 폭력 단속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경주이주노동자센터 제공]

11일 경주이주노동자센터 등 인권단체는 울산출입국관리소 앞에서 “폭력단속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소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항의만 하다가 돌아왔다.

함께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비자 만료로 스리랑카 출국을 앞둔 코숨 씨 동생 마순(가명, 28) 씨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형이 치료받는 걸 보지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