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의원님, 왜 삭발하고 그러십니까 / 김자현

11:45

갑자기 ‘삭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9월 10일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국회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삭발을 시작하면서다.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뒤이어 동참했고, 여론의 관심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머리를 밀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9월 19일 기준 삭발한 현역 의원은 9명에 달한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삭발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처럼 워낙 삭발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니 구글에 ‘삭발’만 검색해도 ‘삭발의 의미’, ‘삭발의 역사’가 줄줄이 뜬다. 대체 삭발이란 무엇인가?

대개 삭발의 의미는 공동체와 연결되어있다. 그 의미는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동체에서 떠나고 싶을 때다. 스님은 속세라는 공동체를 떠나 불자의 삶을 살기 위해 ‘무명초’라 불리는 머리카락을 민다. 둘째,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낙인찍고 추방할 때다. 나치 치하 독일군에게 부역했던 여성을 공동체에서 낙인찍고 추방하기 위해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의 머리를 밀어 광장에 내몰았다. 셋째, 어떤 공동체에 속해서 소속감과 진정성을 증명하고 싶을 때다. 스킨헤드 들은 빡빡 깎은 머리를 하고 다니며 결속력을 과시한다. 넷째, 공동체 속에서 벌거벗은 약자가 자신을 던져 목소리를 낼 때다. 그 어떤 투쟁에도 공동체가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약자들은 머리를 민다.

말하되 사회에 들리지 않을 때 약자들은 탑에 오르고, 곡기를 끊고, 옷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민다. 없는 자들의 저항 수단, 기행(奇行)은 가끔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가능한 정치적 수단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있어도 허락되지 않을 때다.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회사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려 탑에 올랐고, 탑을 오르내리며 농성으로 4,464일을 보냈다. 대법원의 해고 유효 판결에 더해 사측도 문제 해결에 응하지 않으며 극한에 몰렸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단식을 시작한 ‘유민 아빠’ 김영오 씨는 46일간 곡기를 끊었다. 당시 정부가 세월호 조사부터 관련법 제정까지 방해하거나 손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하다 상의를 탈의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여성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법원에서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원청이 자회사를 이용한 간접고용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삭발도 대개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삭발에만 9명이 참여한 제1야당, 자유한국당에 남은 카드가 삭발이라는 기행뿐인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힘없는 야당도 아니고 무려 110석을 차지한 거대 정당이다. 20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9월 시작된 참이다. 그들은 얼마든지 국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강행에 대해 정치적으로 항의할 수 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도 있고, 대정부 질문도 가능하며 심지어 모두가 20대 정기국회의 마지막 카드라고 말하는 국정감사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가능한 정치적 수단이 널려있다. 누가 봐도 약자 최후의 발악은 아니다. 스님처럼 공동체를 떠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스스로 낙인찍어 광장에 내모는 것도 아닐 것이며, 약자 최후의 발악도 아니라면 남은 효능은 하나뿐이다. 당 내부나 지지층, 혹은 지지층으로 포섭하고 싶은 사람들을 상대로 진정성을 전시하는 것이다.

약한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당으로서 진정성을 강조하고 약자인 척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내용이 부실하단 소리다. 물론 사안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삭발을 선택하는 거야 자유다. 하지만 그 효용을 생각해 볼 때다. 우리 사회는 약자와 피해자의 목소리에 유독 야멸찬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행동으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아서 단식이며 삭발 같은 기행을 할 수밖에 없다. 약자의 언어가 기행으로 좁아진 상황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민의를 반영해주어야 할 정치권이 약자 최후의 목소리를 쟁탈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자유한국당의 진정성은 삭발하기 위한 의자 위가 아니라 국회 단상 위에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