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19 50일, “대구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박민경

22:36

50일이다. 일상이 사라진 지 50일이다. 대구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지 50일 째 되는 날 아침의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3주간 대구는 암흑의 도시였다. 상가가 문을 닫고,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밥 먹을 식당이 없어서 도시락을 사서 출근해야 했고, 아이들은 학교도, 학원도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는 자가격리를 했다. 정점을 찍던 2월 말, 3월 초가 지나고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자 삶의 바퀴는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닫았던 상가는 문을 열고 아이들은 밖으로 나왔다. 공원에 강아지와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 차가 늘어났고, 식당도 거의 대부분 문을 열었다.

50일이 되는 오늘 아침 출근길, 몇 군데 막히는 도로가 있다는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번 주부터 회사도 재택근무를 해제하고 전원 출근으로 전환했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식당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동성로 상가들의 음악소리도 커져 있었다.

일상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불안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언제 코로나19 확진자가 증폭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50일간 대구 시민들에게 주어진 심리적 상황도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구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존재 자체가 바이러스 취급을 받기도 했다. 생명권과 건강권을 유지하기 위한 병원 진료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도 철저하게 통제당했다. 아마 지금 대구는 사람들이 가게 문을 열고 움직이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더불어 쏟아질 비난도 충분히 예상되어 슬프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이 모든 게 대구 때문인데”, “대구사람들 양심도 없네”라는 말들일 것이다.

▲대구 지하철 내부 모습. 물리적 거리 두기가 몸에 베어 있다.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대구에 가해지는 비난은 코로나가 한창일 때 쏟아지던 비난보다 더 아플 것 같다. 먹고 살기 위해서 가게 문을 열어야 하고 감염자일 수도 있는 손님을 만나야 한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진통제로 버티던 이들도 치과나 피부과 같은 급하지 않았던 치료도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물리적 거리 두기는 매우 절실하게 필요하다. 방심하는 순간 이 몹쓸 감염병은 어디서 기지개를 켜고 들이닥칠지 모른다. 코로나로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말을 하며 답답함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왜 가게 문을 열었느냐고 비난만 할 수는 없어 보인다.

50일을 맞는 오늘도 어김없이 모든 대구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이동 중이었다. 작은 식당이나 상점조차 하루에 2회 이상 소독을 하고 있다. 가게들은 물리적 거리 두기를 위해 수익 대신 테이블 수를 줄이고 간격을 넓혔다. 다수가 모이는 시설은 아직 멈추어 있고, 부활절 미사, 예배와 부처님 오신 날이 몰려있지만 종교 행사도 잠정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예외는 어느 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구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행이었지만 전국에서 처음으로 혹독하게 맞은 코로나19 상황은 지금 대구를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도시로 만들었다.

대구에 온 지 4년차가 되어간다. 대구라는 도시에서 마주하는 숨 막히는 상황들도 물론 많았다. 사실 이렇게 대구를 변호하기에 앞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더 컸다.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은 정치성향, 보수성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편협함과 남성중심적인 가치관과 행정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 같은 것들은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대구가 더 이상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선거가 끝나면 또 어떠한 이유로 비난하겠지만, 코로나19와는 좀 연관 짓지 않아 주기를 바란다. 대구가 아니라 다른 도시였다면 또 다른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도 나와 다르긴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다. 연대의 기적을 위해 “힘을 내요 대구”라는 것 말고도 “대구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라는 말도 같이 얹어 주면 좋겠다.

지금 대구는 아주 조심스럽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