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쪽방신춘문예] 12월을 사랑할 때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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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구쪽방상담소는 지난 11월부터 12월 12일까지 제1회 쪽방신춘문예를 열었습니다. 쪽방신춘문예에 당선된 글은 12월 22일 대구 2.28공원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에서 작은 책으로 묶여 발표됐습니다. 뉴스민은 대구쪽방상담소와 글쓴이 동의를 얻어 29일부터 1월 2일까지 당선작을 싣습니다.

정지훈

1(일)
하나. 나만의 공간- 저쪽 모퉁이의 한켠 「쪽방」.
언제부터인가 높은음자리 3·4·5는 잊어버리고 한 개, 1(일)이라는 날씬한 몸매의 숫자놀음에 푹 빠져버린 한 사람의 힘든 삶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과거 2·3이 주는 포만감과 느슨함에 하나(1)가 주는 진정한 가치를 뒤늦게 발견한 건 반백의 세월이 흐르고 난 후의 요즘. 반갑지 않은.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시린 12월이다.

차디찬 냉기에 눈 떠보니 매일 보아오던 익숙한 환경. 좁은 공간이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꽉 찬 살림.

나만한 부자가 또 있을까? 피곤한 삶의 흔적을 뒤로 한 채 오늘의 일과표를 물끄러미 챙겨본다. 변함없이 지루한 시간표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특별하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내 건강도우미. 희망을 품은 진료소를 방문하는 날.

나를 힘들게 하는 계단을 올라 거친 숨을 쉬는 나에게 오늘도 가족처럼 반겨주는 두 선생님의 백설 같은 미소와 한가지라도 더 챙겨주려는 말씀에 이미 절반은 치유된 듯한. 내 나쁜 건강. 문을 나서는 내 어깨 넘어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예쁜 말은 내게 안기는 더없는 덤이다. 오늘만큼은 1(일)이 아닌 +2=3이 된 느낌. 한참을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 느낌이다. 그 훈훈함을 뒤로한 채 또다시 외톨이. 나만의 쉼터이지만 ‘홀로’라는 단어로 포장해버리는 항상 낯설어 보이는 방문을 바로 노크하기는 싫어 조금은 혼잡해 보이는 거리에 발걸음을 옮겨 본다.

허나 매번 거부하는 내 시선 속에 둘(2)의 사랑스런 속삭임. 셋(3)의 시끌시끌한 웃음소리. 4·5·6 여행객의 즐거운 발걸음을 시샘하며 애써 모른 척 돌아서 알맹이 없는 불편한 숨을 쉰다.

마음속에 물음표(?) 던져본다 난 왜 저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할까? 왜 나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울타리 속에 나를 감추고 싶었는지 아니면 세상 밖의 밝음이 낯설었는지. 한 번씩 그림자 속에 묻혀버린 나를 발견하게 된다. 밝은 웃음소리와 다른 이들도 지닌 슬픔의 표정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고 한켠의 방에 팽개쳐져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어제의 시간이 아깝고 오늘의 내가 스스로 부끄럽다.

「이제 기어서라도 나가고 싶다. 걸음마를 다시 배워서라도 예전의 사람다운 세상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쉬고 싶다.」

다행이랄까! 여기 함께하자며 손을 내미는 고마운 이들이 있다. 풋풋한 웃음을 전파하는 봉사하는 학생단원들, 영양소가 되라며 찌든 건강을 챙겨주는 여러 후원자들. 그리고 때마다 들러 고민과 아픔을 달래주고 밝은 내일을 위해 밤늦게까지 불빛을 비춰주는 희망드림센터가족들. 처음엔 다소 낯설었던 웃음과 관심. 생각지도 않은 도움에 한 때 지나가던 바람이려니 하고 애써 진정시키려던 조금은 식어버린 심장에 연분홍 빛깔의 화사한 연꽃을 탄생시킨 느낌이다.

감사하다 진정 고마웁다. 과거엔 몰랐던 우연이었지만 옆자리의 허전함과 내 삭막했던 몸과 마음에 사랑이라는 온기를 채워준 인연이라는 고리. 비록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인연의 고리를 폼나고 빛나게 할 수 있는 이는 내 스스로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힘내어 내 지금의 분신 「쪽방」을 희망. 꿈을 키워주는 드림센터에 맡겨보고 싶다. 그 끝자락에 남들이 신기해하고 조금은 부러워하는 「쪽쪽방」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지켜봐주고 일으켜준 고마운 사람들 아울러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또 다른 이웃들과 자신에게 「왜」라는 물음표(?)를 던져보고 자신의 삶의 변화를 느끼며(!) 이제는 남들과 동행할 수 있겠다는 마침표(.)를 완성시키고 싶다. 어둠이 깊어간다. 모처럼 포근한 밤이 될 것 같다. 따스한 햇살이 비칠 아침에 그동안 지쳤던 기지개 켜며 희망의 꿈을 노래하고 싶다. 조금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으며.

비록 백지와 대화지만 이 지면을 벌어서라도 평소 하고 싶었던 베풀어주었던 애정. 사랑. 고마움에 한 번 더 감사하고 싶다. 다음 해엔 조금은 칭찬받는 뿌듯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자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