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75주기, 한국의 기억] (3) “손대면 바스러지는 자료, 데이터화 의미”

[인터뷰] 기억연구회 그늘 김동호, 임동국

18:42

계기는 우연이었다. 김동호 기억연구회 그늘 대표는 지난 2017년 자신을 포함한 영남대 역사학과 대학원생 몇몇이 모여 만든 공부 모임을 통해 합천으로 답사를 떠났다. 민속학을 공부한 모임 구성원이 합천에 새로 생긴 원폭자료관을 기억해냈다. ‘그런 곳이 있나?’ 호기심으로 방문한 곳에서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을 만났다. 우연이 인연으로 바뀌게 된 계기다.

▲지난달 21일 기억연구회 그늘 임동국 씨와 김동호 대표(왼쪽부터)를 만났다.

지난달 21일 김동호(29) 대표와 팀원인 임동국(24) 씨를 만났다. 기억연구회 그늘은 김 대표를 필두로 구성되어 있다. 영남대 역사학과 학생, 대학원생이 주축이고, 합천 원폭자료관 자료 전산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문화인류학과, 일어일문학과 학생들도 참여하게 됐다.

이들은 심진태 지부장을 포함한 협회가 소장하던 원폭 피해 관련 자료를 전산화하는 사업을 지난해 수행했다. 작업은 1월 겨울 방학과 여름방학, 연말에 다시 찾아온 겨울방학을 통해 진행됐다. 김동호 대표는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어 가볍게 언약을 하고 돌아왔다가 2019년에 무작정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건비는 신경도 안 썼다”는 김 대표 말처럼 처음엔 그저 뜻 있는 학생들이 모여서 진행하는 일이었다.  김 대표는 자신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작업을 진행할 작정이었다. “인건비는 신경도 안 썼다”는 김 대표 말을 듣는 동국 씨는 옆에서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들으니 새롭다”며 웃음 지었다.

다행히 뜻 있는 활동에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나왔다. 사단법인 생명평화아시아에서 활동비 100만 원을 지원했다. 김 대표는 100만 원으로 성능 좋은 스캐너 두 대를 샀다. 딱 100만 원이 들었다. 이후 모든 비용은 스스로 충당하며 사업을 진행 중이던 3월, 지도교수로부터 새로운 연락을 받았다.

김 대표는 “정인성 교수님이 전화를 주셔서 일어일문학과에 최범순 교수님이 너를 찾는다. 너희 지금 이런 거 하고 있지 않느냐는 거였다. 그렇게 링크플러스 사업까지 진행하게 됐다. 그전엔 링크사업 자체를 몰랐다. 그냥 공대생들이 하는 거 정도로만 알았다. 덕분에 보고서도 발간했고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어려움은 오히려 다른 데서 생겼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던 자료 보관 상태였다. 손만 되면 바스러질 정도로 삭은 자료가 있는가 하면 스테이플러를 사용해 관리되던 문서가 스테이플러가 녹이 슬면서 함께 손상되고 있기도 했다. 일주일이면 될 거라고 전망했던 일은 방학 세 번을 거치고야 완성됐다.

▲김동호 대표

김 대표는 역사 연구의 사료로 볼 수 있는 자료를 디지털화한 것에 사업 의미를 뒀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자료도 있었는데, 전문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 그냥 꽂혀만 있던 것을 이미지 파일로 해서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한 게 크다”며 “자료마다 전문적인 메타 데이터도 부여해서 목록을 만들었으니까, 연구자들이 찾아보기도 수월할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김 대표가 의미 있게 본 자료는 원폭 협회 회원들의 신상카드, 구술증언 등이다. 단순히 목록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상카드와 구술증언은 따로 원문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김 대표는 “피해자들이 일본에 어떻게 건너갔고, 어떻게 살았고 지금은 어떤지를 담아놓은 자료”라며 “개중에는 일본어여서 저희가 직접 읽기 힘든 자료나 종이가 낡아서 취급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하루빨리 이미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역사학과생으로 사업에 참여했던 동국 씨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에 눈을 뜬 것이 인상 깊다고 했다. 그는 “인상 깊었던 건 일본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는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국에 돌아와서 힘들었다고 쓰여있는 자료들이었다”며 “어떤 분은 임신을 한 분인데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나서 동네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20대 청년 입장에선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좋은 뜻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합천군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이라고 꼽았다. 그는 “자료관에 합천군에서 나온 직원이 계셨는데, 눈치를 준다고 해야 할까? 언제 끝나냐 거나, 왜 자료를 가져가서 안 주냐 같은 말들을 해서 얼굴 붉히며 이야길 나누기도 했다”며 “또 합천군과 사업단이 MOU를 맺었는데 거기에 저희가 주체로 들어가지 못한 점도 아쉬운 점이었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합천 원폭자료관 소장 자료 보존을 위한 기록자료 영상화 사업에 참여한 기억연구회 그늘 구성원 명단이다. (괄호는 당시 직책)연구단장

김동호(록봉민속교육박물관 학예연구원)

연구원
김유신(영남대학교박물관 특별연구원)
최성한(영남대학교 역사학과 석사과정생)
박정완(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생)
임동국(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연구보조원
강봉수(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생)
홍기표(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생)
강찬(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김민성(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박정민(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송동훈(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이경수(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정광윤(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정민주(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정수현(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사과정생)
정지현(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최은빈(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
홍찬기(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사과정생)
홍효정(영남대학교 역사학과 학사과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