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바시]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기 싫은 대구 교사 강성규

대구를 바꾸는 시간 (2) 강성규

15:44

[대구를 바꾸는 시간, 대바시] 대구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대구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차별에 맞서 싸우거나, 이웃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거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뉴스민은 2021년부터 대구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민의 이야기를 짧은 강의 형식을 빌려 전하고자 합니다. 내가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주변의 사람을 추천해주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newsmin@newsmin.co.kr, 010-8585-3648)

두 번째는 대구 해올중고등학교 국어교사 강성규 씨입니다. 학교가 ‘존버’라는 말에 딱 맞다는 강성규 선생을 통해 코로나19 이전과 달라진 학교 풍경을 들어봤습니다. 코로나19 시국에도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그리고 입시의 정점인 수능 시험은 살아남았습니다. 사라진 것들은 무엇일까요? 강성규 선생은 코로나 이전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갑습니다. 우리 대구의 동료시민 여러분. 대구를 바꾸는 시간, 또는 대구에 살면서 제가 바뀌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시간. 대구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게 된 해올중고등학교 국어교사 강성규라고 합니다.

“학교, 알맹이는 남고 껍데기는 가라” 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준비해봤습니다. 부제는 코로나라는 인류의 재난 속에 꾸역꾸역 학교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한 교사의, 대구 교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구, 한국 사회, 세상 이야기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소 불편한 시민들이 계실 수도 있지만 청년들이 많이 쓰는 말이죠. 쉽게 말하면 ‘X나 버틴다’의 줄임말인데 저는 학교가 이 ‘존버’라는 말과 왜 그렇게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30년 전에, 9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3년은 저에게 지워진 시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하루 열 몇 시간에 달하는 장시간의 학습 노동. 1년 내내 별다른 행사 없이 야간자습과 수업과 보충수업으로 진행되는 갑갑한 학교, 늘 닫혀 있던 학교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지냈을까요.

하루하루 이곳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도에서 내 머리를 잘라대고 아침에 5분 늦었다고 엉덩이를 다섯 대씩 때리는 이 학교에서 어떻게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하루하루 시간을 재면서 버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닐 때보다 30년 후인 지금은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라도 학생들에게 청소년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더욱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시험이 더 많아졌고요. 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고, 사회는 정말 생존 경쟁이 더욱 더 치열해진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가 교사고 현장에 있으니까 여러분에게 학교의 속살 이야기를 들려 드려야겠습니다.

최근 2년 간 학교, 많이 궁금하시죠. 작년 학교, 많이 힘들었습니다, 여러분. 2020년 한 해 동안 학교에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다. 학교에는 시험과 여전한 입시경쟁과 그리고 새롭게 도입되기 시작해서 학교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에듀테크, IT 기술, 이 세 가지가 2020년의 승자입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요? 학교 현장에서 특히 고등학교에서 사라진 것은 모든 행사입니다.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진 행사, 체육대회, 수학여행. 이 시험만 두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그리고 입시의 정점인 수능 시험만 두고 나머지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학교 재미있었을까요?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그래도 학교에 오고 싶어 했습니다. 나오고 싶어했죠. 선생님들도 그리워했습니다. 학생들을. 그래서 결국 온라인으로 먼저 만나고 얼굴 모르는 학생들과 정을 나누고 하다가 5월 말에 만났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그런데 그 반가움이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마스크 너머 학생들은 말을 잃고 가만히 시험 대형으로 앉아서 우리는 진도를 빼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나와 있을 때 수행평가를 해야 되고 업무를 처리해야 되고 도무지 학생들과 교감을 나눌 시간이 없더군요.

그 반복되는 학습, 그리고 교사의 노동 속에 우리는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2020년에 모든 사라진 것들 틈바구니에서 시험은 수능이 좀 연기되긴 했지만 착착 치러졌습니다. 대단히 놀라운 IT 기술의 개가라고 할 수 있겠죠.

작년까지 일하던 자율형공립고등학교는 에듀테크 선도학교로 지정이 됐습니다. 유용했습니다. 아주 유용했습니다. 학생들의 기록을 남기기에도 유용했고 접속한 시간도 착착착 정리 되었습니다. 강한 유혹에 빠졌습니다. 이거면 아주 효율적으로 교육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술을 알려주던 구글에서 일하던 그분은 구글의 기술을 학교에 도입하면서 교사들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어요.

선생님들! 이 기술을 효율적으로 교육적으로 활용하시는 건 좋은데 분명히 학생들을 통제하고 구속하는데 유혹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선생님들이 교육적으로 판단해 주십시오.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신기술을 가지고 학생들이 시간 안에 과제를 제출하는가, 출석 체크에 1분도 늦지 않게 실시간으로 접속 하는가, 이런 데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답답한 학교가 가정으로까지 확장이 된 것이죠. 숨 쉴 곳 없었고 학생들은 이따금 결석을 했습니다.

2021년 왜 학교는 다시 모이기 시작한 걸까요? 교육은 만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사람을 만나야 되잖아요. 먼 나라에 인터넷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빠질 수 있죠. 하지만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겁니다. 사랑은 최소한의 만남, 인간적 접촉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류는 대면접촉을 통해서 여기까지 진화해왔습니다. 교육도 만나야 합니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뭔가를 서로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대단한 감동입니다.

여기서 질문을 좀 드려보고 싶습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왜 그러시죠? 마스크 벗고 수다를 나누고 친구와 포옹하고. 저는 그것 빼고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 학교의 치열한 입시경쟁과 대한민국의 가혹한 장시간 학습 노동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거 빼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만나야 됩니다. 그리고 적정 규모에서 만나고자 합니다. 근데 만나서 뭘 할 겁니까?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내려놓고 이 가혹한 입시경쟁에 틀에서 벗어나서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이 신호를 알아채야 하지 않을까요?

코로나 재난 속의 학생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저에게 물어보셨어요. 하지만 저는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힘듭니다. 이걸 보고 계시는 화면 너머에 계신 대구 시민 여러분. 학생들에게 청소년들에게 물어보셨습니까? 어떤 마음이냐고 물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사자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 경직된 사회. 고등학생에게 중학생에게 언제 물어보셨나요? 저도 못 물어봤습니다. 많이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소통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안에 그들의 입장을 일부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이 생태위기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간절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입시경쟁 지나치게 힘들어요. 힘들어요. 왜 세상은 나아지지 않죠”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 학교의 성격은 변하지 않고 있죠. 선발의 공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답을 드릴 수도 없는 입장이라서 평범한 교사의 평범한 질문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탈락과 좌절의 공간인 이 학교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 학생들에게 계속 물어보잔 얘깁니다. 뭘 원하십니까? 계속 물어봐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코로나 시기에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포함하는 선생님들은 “자 시대가 힘들지만 여러분 방법이 있겠어? 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합시다. 일단 여러분이 할 일은 공부예요. 선생님은 여러분 지지하지만 이 현실을 어쩔 수 없어요. 받아들이세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딴 생각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딴 생각 1년 있다가 하세요. 부탁합니다. 1년 뒤에 세상 바꿔주세요.” 선생님이 딴 생각하라 그러면은 그렇게 되묻는 청년도 있습니다. “선생님 저를 너무 불안하게 하지 마세요.”

제가 열심히 공부해 세상 바꿀 거니까 일단 입시공부 최선을 다해주세요. 이렇게 부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안합니다. 청년들에게 제 자신에게 학교는 딴생각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두 학교 이야기는 한국과 대구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대구 이야기가 궁금하시죠. 대구, 다른 지역과 다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도시입니다. 그래서 대구의 학교는 한국 사회가 가진 보편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거기에 더해서 대구 교육의 특수성이 좀 더 있습니다. 대구 교육, 교육 수도라고 자칭하면서 대구 교육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최근에 대구에서 다 부결되는 것들이 있어요. 시군구의회에서 민주시민교육조례, 그리고 청소년노동인권교육조례. 이런 것들이 다 부결되고 있습니다.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대구의 기품과 전통 때문이겠지만 그걸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하나 생겼습니다.

몇 년 전에 대구에 특별한 조례가 하나 통과됐는데 효행교육조례가 통과됐습니다. 학생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죠. 인성을 법으로 정해서 예절과 효를 법으로 정해서 가르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겁니다. IT, AI, 4차 산업혁명에 집착하는 것이 미래교육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청년 당사자들에게, 학생 당사자에게 묻고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미래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지금 이 화면 너머의 시민들 중에 학부모님 많이 계시죠? 한 평론가 사회 디자이너가 말합니다. 학부모가 되지 말고 부모가 되자고. 이걸 저는 좀 확장 하겠습니다. 저한테 확장하겠습니다. 저에게 묻습니다. 강성규, 당신은 교사가 될 거요 참된 교사가 될 거요? 아니면 계속 입시 대행자로서 그냥 업무에, 공문에 명령에 따라서 왔다 갔다하는 관행적인 그러한 월급쟁이가 될 거요?

두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겠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여쭙습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청년들에게 혀를 끌끌 차는 그들의 외모와 자유분방한 몸짓에 혀를 끌끌 차는, 조금의 기준에서만 벗어나도 교복에서 머리 스타일 조금만 벗어나도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꼰대가 될 것입니까? 아니면 조금 먼저 태어난 동료시민이 될 겁니까? 저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부족하게 살다가 생을 다 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우리 학생 글 제목이 “라떼 is 홀스” 라는 아주 풍자가 가득한 글로 우리 세대를 풍자하는 글을 제 수업에 써서 냈습니다. 아주 좋은 점수를 줬습니다. 좋은 점수를 줬다는 것도 되게 건방져 보이네요. 미안합니다. 이런 틀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이걸로 갑시다. 뭘 없애야 할지 리스트를 만들어 봅시다. 입시경쟁, 이 인간의 시민성과 개인성을 짓밟는 어떤 집단성 이거 없앱시다. 여러분 경쟁 없앱시다. 다투다가도 예전에 한 국회의원도 말했잖아요. 서로 싸우다가도 멈춰야 되는 순간이 있다고.

환경생태 소설가 최성각의 에세이 “욕망과 파국”의 54쪽. 이런 대목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2018년 여름 그레타 툰베리는 태평양의 쓰레기산을 본 이래 방에 틀어박혀 사흘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사흘뒤 방문을 열고 나온 그레타는 이제 사흘 전의 그 소녀가 아니었다.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것이다. 여러분 그레타 툰베리 잘 아실 겁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이자 트럼프 앞에서 연설한 기후정의행동가라고 하지요. 트럼프의 눈으로 보기엔 맹랑하고 당돌한 꼬마 아이일 뿐이었겠지만.

그럼 우리는 트럼프의 눈으로 툰베리 같은 청년들을 볼 것인가. 아니면 동료시민의 눈으로 기후위기 최일선에서 정말 건강한 질문을 하는 친구로 볼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봅니다. 한국사회는 기후위기 시위에 나가는 청년들을 너 그러면 미인정결석이야 입시에 괜찮겠어? 라는 질문 밖에 던지지 못 하는 것일까요? 사흘 동안 방구석에 들어 앉아 있다가 나올 때 그레타 툰베리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것이죠.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단절과 비약의 순간이 있습니까? 시민 여러분 어떻습니까?

사흘간의 방구석의 고민의 시간을 보장해 줍시다. 그들이 문을 열고나올 때 박수 쳐 줍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도와줍시다. 우리가 그 동안 쌓아온 지혜와 모든 것을 쥐어짜듯 총동원해서 떳떳한 시민으로서 동료로서 손 내밀고. 그 비약과 도약의 순간을 함께 해야 됩니다. 그 문을 닫아 두지 맙시다. 밀고 나올 때 당겨 줍시다. 여러분 새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살아가도록 합시다. 우리에게도 그 사흘은 필요합니다. 오늘 부족한 이야기 일단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촬영=천용길, 여종찬, 권지해
편집=권지해
출연=강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