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식당 99%는 ‘장애인 출입금지’하는 현행법, 위헌심판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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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에 따르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편의점, 식당 등 대부분의 생활편의시설에 갈 수 없다. 출입구의 턱 때문인데, 현행법이 이 턱을 합법이라 규정하고 있다. 법 이름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이다. 장애인 등 약자의 편의를 위해 1998년부터 시행됐다. 이 법이 오히려 전체 생활편의시설의 99%를 ‘장애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만들었다.

이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은 지난달 29일,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를 제출했다. 법원이 신청서를 받아들이면 헌법재판소가 장애인등편의법 7조의 위헌 여부를 가리게 된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생활편의시설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생활편의시설 공대위)는 13일, 서울시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당사자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고 밝히며 “법이 장애인의 출입가능한 권리를 지켜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장애인이 출입할 수 없는 출입금지 구역을 합법적으로 늘려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애인권단체 활동가, 공익변호사 등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등편의법은 차별을 조장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사진=하민지 기자)

“현행법은 장애인을 합법적으로 차별하는 법”

장애인등편의법은 건축물에 경사로, 점자 표기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의무로 설치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법의 시행령이 장애인을 되레 차별하고 있다. 시행령 3조 별표1에는 이 법의 시행일(1998년 4월 11일) 이전에 지어진 건물과 바닥면적 300㎡(약 90평) 이하인 건물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와 있다.

문제는 전체 생활편의시설 중 98.8%가 바닥면적이 300㎡ 미만이라는 것이다. 201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편의점 98.8%, 음료 및 담배 소매업 98.7%가 이에 해당한다. 즉,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생활편의시설은 100개 중 1~2개뿐이다.

면적기준이 이렇게 정해지게 된 건 장애인등편의법 7조 때문이다. 7조에는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 설치 대상을 시행령으로 규정한다고 나와 있다. 나동환 생활편의시설 공대위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장애인등편의법 7조는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설치 대상의 범위를 아무런 기준 없이 하위법령에 위임했다. 그래서 바닥면적 300㎡ 이상이라는, 합리적 근거 없는 기준을 만들어 대부분의 생활편의시설이 제외되도록 했다”며 이 법이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장애인 등은 2018년 4월 11일에 투썸플레이스, GS리테일(편의점 GS25 운영사), 호텔신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다. 투썸플레이스와 호텔신라는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이고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GS리테일과 국가는 조정안을 거부하고 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장애인등편의법을 들며 면적 300㎡ 이하인 곳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동환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나동환 변호사는 “장애인등편의법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직접적으로 차별한다는 점에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반한다. 편의점 등 생활편의시설이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공간이란 걸 생각하면 헌법상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고 평등원칙도 위반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나 변호사는 “피고 대한민국은 헌법이라는 상위법령을 위반하는 법을 제정하고도 20년 넘게 개정하지 않았다. 이는 장애인 차별을 조장하는 불법행위다. 법이 위헌으로 인정될 경우 GS리테일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에 대한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위헌적 법령을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법령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국가와 기업들이 ‘합법적인 차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성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 간사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법이 장애인을 향한 차별을 만들었다. ‘장애인 출입금지 구역’은 합법적으로 늘어가고 있다”고 규탄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 또한 “1998년에 장애인등편의법이 시행될 때는 장애인이 더는 식당 문 앞에서 돌아서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법 때문에 장애인 등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약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법이 있는데 장애인은 아직도 계단 앞에서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며 “이번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장애인의 간절한 바람이다. 서울 시내 모든 턱을 없애 달라 외치고 죽어간 김순석 열사의 외침이 다른 장애인의 외침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생활편의시설 공대위는 “장애인도 고객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이란 걸 알린다. 법이 헌법에서 명시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에 다가서는 결정을 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제휴=하민지 비마이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