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청년들에게 대안결혼의 길을 열어주자 / 채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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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여성가족부는 인구감소와 비혼독신가구의 증가 등 최근의 급격한 가족변화를 반영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이하,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자녀 성(姓)을 부모가 협의하여 결정하고, 민법 제779조가 정하고 있는 가족의 정의와 범위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 계획이 실시되면, 비혼 동거 커플이나 위탁 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방송인 사유리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혼 독신자도 정자를 기증받아 보조생식술을 이용하여 출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이번 기본계획은 최근의 사회현상을 반영하고 있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기본계획은 양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 측면이 강하다. 정부가 주장하듯이 양성평등과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전향적·전면적으로 기존의 가족 관련 법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이 법률혼 중심의 전통적 혼인제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결합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혼인적령에 이른 남녀 혹은 양 당사자는 자유롭고 완전한 합의 아래 혼인을 하고, 가정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혼인은 가정의 출발점이고, 가정의 핵심은 가족이다.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도 기초적인 단위이고, 그 구성원인 가족은 사회와 국가의 두터운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소위 ‘정상가족’이 되는 길은 법률혼밖에 없다.

법률혼이란 결혼의 실질적 요건과 형식적 요건을 모두 갖추어 법에 의해 인정된 결혼을 말한다. 민법 제812조 1항에 따르면, “혼인은···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법상 혼인은 신고라는 형식적 요건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법률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즉, 법적으로 인정받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시(구)·읍·면의 장에게 혼인 사실을 신고해야만 하는데, 이 절차를 혼인신고라 한다.

우리 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혼인신고는 민법 제813조의 규정에 따라 심사를 거쳐 수리된 때 비로소 부부관계가 형성되는 창설적 효과를 갖는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14호파 1842). 결혼의 다른 형태인 사실혼은 부부가 공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혼인신고를 할 수 없으므로 법률혼에 준하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 혼인신고가 법률혼과 그 외의 부부결합을 구별하는 차별수단이 돼버린 형국이다.

현실에서는 혼인신고를 할 수 없거나 하지 않고 부부공동생활을 하는 다양한 커플이 있다. 예를 들어, 사실혼 부부는 법률혼 부부와 마찬가지로 동거의무, 부양의무, 협조의무 및 정조의무(민법 제826조 1항)를 진다. 하지만 그 권리의 행사에 있어 양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사실혼 부부에게도 일상가사대리권(민법 제827조 1항)이 인정되지만 법률혼 부부와 달리 사실혼 부부에게는 친족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 결과, 배우자가 사망하더라도 사실혼 부부는 상속권이 없다. 이 외에도 사실혼 부부는 의료보험, 국민연금 수급권자에서 제외되고, 상대 배우자 의료과정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등 법률혼 부부에 비하여 현실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 법률혼 부부에 비하여 사실혼 부부의 권리를 이렇게 차별해도 될까.

법률혼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도 가족 형태의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의 이혼증가율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단연 1위이다. 특히 20대 청년의 결혼관은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절반 이상의 20대가 결혼을 원치 않고 비혼독신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다. 가령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 없이 부부만의 독자적 삶을 살기를 바란다. 또한 20대는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동거를 해본 후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견해가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위의 통계와 설문 결과에 나타난 청년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요컨대 오늘날 청년들은 남녀 이성 부부 중심의 전통적 결혼에 얽매이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원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한국 현실에 부합하는 대안적 가족결합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유럽과 달리 우리는 혼인을 집단의 중대사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강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혼인이란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이성이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사회현상”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혼인을 이토록 무겁게 받아들이니 부모와 자녀는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정상가족’이 되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현실은 급변하고 있다. 이혼율 급증과 출산율 감소, 고령사회의 진입 등으로 사회경제의 불확실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또한 청년들은 비혼독신을 선호하고, 혼인을 해도 자녀 갖기를 원치 않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을 결합하기를 바란다. 청년들의 바람대로 우리는 법률혼 중심의 전통결혼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혼인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 대안적 방법의 하나가 생활동반자법이다.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 진선미 의원은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생활동반자법안)을 발의한 적 있다. 이 법안은 특정인 1명과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성인을 생활동반자로 보고,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보수단체의 강한 반대로 이 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보수정당 및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는 생활동반자법이 우리사회의 전통결혼 관념에 부합하지 않고, 사회윤리 질서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였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법률혼주의에 따라 혼인한 ‘정상부부’는 도덕윤리규범에 따른 가정생활을 통해 ‘정상가족’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특히 이혼이나 배우자의 일탈은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정상부부’의 이혼율은 증가하고 있으며, ‘정상가정’에서도 범죄나 일탈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더욱이 기성부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20대의 절반 이상이 결혼을 원치 않고, 또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원치 않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은 물론 자녀 갖기를 원치 않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혼에 대한 인식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법률혼주의를 고집할수록 청년세대는 오히려 결혼을 거부하고 홀로살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들에게 법률에 따라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인정되는 ‘정상부부’ 혹은 ‘정상가족’이 되기를 강요해서는 아니 된다. 그 보다는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가족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법률혼주의를 내세워 청년들의 혼인할 권리와 다양한 가족결합권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법은 폐지하거나 수정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의 하나가 생활동반자법의 제정·시행이다.

이 법은 법률혼에 기반한 현재의 결혼제도를 부정하거나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통결혼방식만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현행법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결혼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은 모두 성인이다. 국가가 나서서 더 이상 이래라저래라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간섭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권리를 확인하고 보장(대한민국 헌법 제10조)하는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이 헌법정신에 따라 청년들에게 혼인과 생활동반자 관계 중에서 그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하자. 개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오롯이 그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여 청년들에게 대안결혼의 길을 열어주자.

채형복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