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인쇄매체에 바치는 헌사, ‘프렌치 디스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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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프랑스 가상의 도시 블라제. 세계 정치와 예술, 대중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소식을 다루는 가상의 주간지, <프렌치 디스패치>는 폐간을 앞두고 있다. 편집장 아서(빌 머레이)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기자들은 마지막 발행본을 준비한다. 아서가 죽기 전 심혈을 기울인 기획기사는 뭘까.

첫 편은 기자 세저랙(오웬 윌슨)이 자전거를 타고 지역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소개한다. 그의 취재는 지역 과거와 현재의 변화상이 담겨 있다. 둘째 편부터 본격적인 기획기사가 시작된다. 모세(베네치오 델 토로)는 천재 화가이자 살인마다. 그는 교도관 시몬(레아 세이두 분)을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모세의 그림을 본 미술상 줄리언(애드리언 브로디)은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다. 기자 베렌슨(틸다 스윈튼)이 이 일대기를 소개한다. 제목은 ‘콘크리트 걸작’이다.

셋째 편은 파리 학생운동의 주역 제피렐리(티모시 살라메)와 그를 취재하는 기자 루신다(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이야기다. 루신다는 제피렐리의 선언문을 교정해준다. 제목은 ‘선언문 개정’이다. 넷째 편은 기자 로벅(제프리 라이트)이 경찰서의 소문난 요리사 네스카피에 경위(스티브 박)의 요리에 대해 취재한다. 취재 도중 경찰서장(마티유 아말릭) 아들이 마피아에게 납치되면서 요리보다는 그를 구해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진다. 제목은 ‘경찰서장의 전용 식당’이다.

영화는 <프렌치 디스패치> 기자들의 취재기를 묶은 옴니버스 형식이다. 영향력이 쇠퇴하는 잡지의 기자가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 풍경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역사에 남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년)>로 명성을 떨친 웨스 앤더슨 감독의 특기인 아름다운 미장센과 영상미가 오롯이 담겨 있다. 동화 같은 색채와 자로 잰 듯한 대칭 구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장면 하나하나 출력해 벽에 걸어놓으면 사진전시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쟝센은 매우 훌륭하다.

건물 내외부의 세트와 인물들의 의상은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고, 배우들은 양식화된 연기를 한다. 다만 단편으로 쪼개져 있는 탓에 빠르고 많은 대사 탓에 자막 읽기만으로도 바쁘고 서사가 탄탄하지 않다. 하려는 이야기가 많다 보니 내용 전개가 빠르고 새로운 인물이 계속 등장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바쁘다.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은 에피소드도 있다.

하지만 앤더슨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종이 잡지라는 인쇄 매체에 대한 헌사라는 점 때문이다. 언론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인터넷과 SNS가 빠른 속도로 소식을 전달하는 요즘 세상에서 인쇄 매체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주민들의 일상을 관찰하거나, 유명인의 일대기를 취재해 다음날 종이 잡지나 신문으로 알리는 건 낡은 수법이다. 인쇄 매체가 가진 힘과 매력을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아서의 유언장에는 “인쇄기를 녹일 것, 잡지의 발행을 중단할 것, 직원과 기자들에게 후한 퇴직금을 줄 것”이라고 적혀 있다.

현실은 영화처럼 감성적이지 않다. 언론은 수난을 겪고 있다. 기자는 ‘기레기’로 불리고, 기사를 향한 불신이 팽배하다. 물론 언론 종사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지만 불신의 바탕에 언론개혁은 빠져 있다. 2018년 SBS에서 방영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방송인 강유미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뉴스의 중심이 된 이들을 직접 찾아가 질문을 던진 것 때문이었다.

“기자들이 했어야 할 질문을 대신 던졌다.”, “올해의 기자상을 받아야 한다.”, “기레기들보다 훨씬 낫다.”, “기자들은 뭐하고 있느냐?” 인터넷에는 이런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강유미가 논란이 된 이들을 찾아가게 된 건 앞서 신문에서 보도됐기 때문이다. 기자의 활약은 묻히고 대중의 기억에는 강유미만 남았다. 사실과 진실보다 자극적인 권선징악에만 몰두하고 취향과 가치관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은 탓이다.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대중의 무관심과 기레기라는 힐난에 맞서 저널리즘 원칙을 신념처럼 여기며 취재하고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열렬한 애독자였던 앤더슨 감독이 종이매체에 바치는 107분짜리 헌사다. 언론이 저널리즘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