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라면서···대구 공영장례 제도의 현실

배지숙 대구시의원, 시민단체와 토론회 열어
“조례화 되고 있지만 무연고사망자 ‘처리’의 다른 이름”
동구, 최초 조례 만들었지만 탈시설 장애인 장례에 무용지물

16:26

“우리가 복지라고 이야기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을 많이 쓰면서, 왜 정치, 행정에서는 요람에만 신경을 쓰고 무덤에 관한 정책은 그동안 왜 없었을까?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표가 없기 때문이다”

배지숙 대구시의원(국민의힘, 본리·송현·본동)은 적나라한 표현으로 쓸쓸한 죽음에 대한 국가 및 행정적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유를 꼬집었다. 배 의원은 내년 2월 대구시 차원 공영장례 제도 도입을 위한 조례 제정을 준비하면서, (사)자원봉사능력개발원, 반빈곤네트워크와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22일 낮 대구시의회에서 열린 ‘존엄한 애도, 대구지역 공영장례 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박진옥 (사)나눔과나눔 상임이사가 전국적인 공영장례 제도 현황 및 한계 분석을 통해 배 의원이 준비 중인 대구시 공영장례 제도에 대한 제언을 발제했다.

이어서 이기봉 영남장애인협회중앙회장,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장,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 등이 현장의 현실을 전하고, 이선애 대구시 어르신복지과장이 제도 도입에 대한 대구시 입장을 밝혔다.

▲22일 낮 대구시의회에서 대구지역 공영장례 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전국적으로 공영장례를 조례화해서 운영하는 지자체는 많지 않다. 12월 22일 현재 기준으로 광역지자체 9곳을 포함해 모두 66곳만 운영 중이다. 전국 광역·기초지자체 245곳 중 26.9%에 불과한 수준이다. 박진옥 상임이사에 따르면 2007년 전남 신안군이 가장 먼저 조례를 제정한 후 2017년까지 단 10곳이 제정하는 수준에 그쳤다. 최근 4년 사이에 50여 곳이 더 늘어난 것이다.

대구의 경우 2017년 대구 동구가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에 관한 조례’를 가장 먼저 제정했고, 올해북구, 수성구, 달서구, 달성군이 잇따라 무연고자나 저소득층 장례 지원 조례 또는 공영장례(수성구) 조례를 제정했다.

박 이사는 조례 제정 지자체가 늘어나는 상황을 두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이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는 사회적 분위기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공영장례조례’가 제정되곤 있지만, 기존 무연고사망자 ‘처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실효적이지 못한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박 이사는 현행 조례의 한계를 크게 세 가지로 짚었다. 첫 번째는 지원대상의 협소함이다. 박 이사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짚었다.

두 번째는 장례를 치르기엔 부족한 지원 내용이다. 박 이사는 “최근 제정된 조례의 경우 장제급여의 200%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추세”라며 “현금 160만 원을 지원받게 되는데,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빈소를 차리기에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공영장례지원을 신청하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조건이 안된다는 점이다. 조례상 신청자를 연고자나 이웃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되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연고자는 인수를 거부했으니 장례를 치를 수 없고, 이웃사람은 연고자가 아니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완벽하게 ‘고립’되어야 지자체가 ‘알아서’ 장례를 ‘처리’ 해준다는 의미다.

실제로도 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조민제 사무국장은 지난해 숨진 한 탈시설 자립 장애인의 장례를 치렀던 경험을 통해 제도의 허점을 짚었다. 지난해 8월 숨진 최현창(당시 64세) 씨는 시설에 거주하다가 탈시설하여 홀로 살았다. 그가 숨진 후 조 국장을 비롯한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가족이 아니여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했고, 화장터와 장례식장을 마련하는 일도 이들의 ‘책임’이 담보되어야 했다. 최 씨가 ‘무연고자’인지 확인하는 과정 때문에 장례가 지연되었으며, 최 씨가 평소 모아두었던 자산을 장례에 사용할 수 없었다. 최 씨는 대구에서 가장 먼저 무연고 장례 지원 조례가 제정된 동구 거주자였는데도 그랬다.

조 국장은 “고인의 장례를 치르며 우리는 ‘탈시설’,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의 고인의 마지막 길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현행 제도와 법률, 행정시스템의 한계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며 “지역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던 최현창 님을 기억하며 탈시설 장애인의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가벼울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