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의 졸업···대구대 학원민주화운동 중 숨진 조용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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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2시 대구대학교 성산홀 2층 접견실에서 29년 만의 조촐한 졸업식이 열렸다. 1993년 대구대 학원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다 돌연사한 조용필(당시 25세) 씨의 명예졸업식이다.

조용필 씨는 대구대학교 회계학과에 재학하면서 93년 당시 대구대 야간강좌 학생회 기획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대구대는 학교재단의 비리 의혹과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학생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학원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조 씨는 그해 6월 학생회 기획부장으로서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이 회의를 준비하고 운동 계획을 마련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6월 17일 새벽 2시까지 회의를 진행하고 홀로 회의실에 있다가 쓰러졌다. 뒤늦게 동료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인은 심근경색, 밤낮없는 활동으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함께 학생회 활동을 한 권태용(당시 학생회 생활체육부장) 씨를 비롯한 동료들은 돌연사로 졸업도 하지 못한 조 씨를 위해 명예졸업을 대구대와 추진해왔다. 이날 명예졸업식에는 권 씨를 비롯한 동료와 조 씨의 형님이 참석해 동생을 대신해 졸업장을 받았다.

▲18일 낮 대구대학교에서 29년 전 학원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故 조용필 씨에 대한 명예졸업장 수여가 진행됐다. (사진=유족 제공)

형님 조용태(63) 씨는 “우선은 동생 일을 잊지 않고 이런 자리를 준비해준 권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며 “죽은 동생 입장에서 보면 인생을 잘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제 입장에선 옛일이 떠올라서 복잡한 마음도 있지만 고맙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권 씨는 “대구대 학원민주화운동이 92, 93년에 가장 활발했다. 학생이 그 주체였고 그 중심에 생명을 헌신한 고인이 있다”며 “오랫동안 명예회복이 되지 않았는데,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유족의 명예회복과 치유, 더 나아가 학원민주화운동의 주체였던 학생들의 투쟁, 헌신을 보상받은 의미가 포함된다”고 졸업식의 의미를 새겼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