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산불에 취약한 단일종 소나무 숲, 정치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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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에서 산불이 나흘째 꺼지지 않고 있다. 바람을 타고 산불은 번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7일 오전 6시 기준으로 울진 1만 2,039ha, 동해 2,100ha, 강릉 1,900ha, 삼척 656ha, 영월 80ha 피해가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는 나오지 않았지만,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코로나19 상황과 겹쳐 고통이 배가 됐다. 도로를 지나던 차량 운전자가 밖으로 던진 담뱃불 때문일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정확한 발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진상 규명을 해야 할 일이다. 도대체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11년 4월 5일 국립산림과학연구원 ‘산불 부르는 숲의 비밀 밝혔다’는 보도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활엽수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로 이루어진 혼합림일수록 산불의 연소시간이 짧았다. 그러나 단일종으로 구성된 소나무 숲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소나무 숲의 면적이 크고 그 숲이 서로 가까울수록 산불을 끌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산불 확산속도는 빨라지며, 그에 따른 피해면적 또한 커졌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은 우리나라 산림 면적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유물질인 테르핀(Terpene)을 함유하고 있어 산불이 번지는 걸 돕는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는 솎아베기와 가지치기를 하고, 장기적으로는 소나무 숲 사이에 불에 강한 활엽수를 적절히 배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몸에 좋은 음식도 한 가지만 먹으면 좋을 리가 없듯, 숲도 다양한 종이 어우러져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선거를 앞둔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1등만 하면 모든 정치적 결정권을 독점하는 현상에 사활을 걸고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다.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상대방 비난에 열을 올린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냐”고 하지만, 반장선거에서 “쟤가 반장되면 안 되니 저를 뽑아주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현상은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제도 탓이 크다.

언론의 주목도는 현저히 떨어지지만, 괄호 밖 후보들의 활약은 제도 개선 여지를 열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꿋꿋함은 170석이 넘는 여당의 정치개혁 의지를 끌어냈다. 똑같은 기탁금을 내고도 늦은 밤 1번의 TV토론밖에 참석할 기회를 받지 못한 조원진 우리공화당 후보는 공직선거의 불공정함을 지적했다.

조 후보는 “초청후보자끼리 3번, 비초청후보자끼리 3번을 같은 시간대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졌지만 잠잠해진 ‘기본소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오준호 기본소득당 후보였고, 김민찬 한류연합당 후보는 지역구 중심의 의석구조를 비례대표 중심으로 바꾸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 12명인 대구는 11명이 한 정당 소속이다. 나머지 한 명을 뽑는 대구 중·남구 보궐선거가 대선과 함께 치러진다. 숲에 소나무를 독점 공급하던 정당이 이번엔 소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4명이 ‘난 지금 소나무가 아니지만, 당선되면 소나무가 될 수 있다’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1명도 ‘나도 곧 소나무가 될 겁니다’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소나무 사이에서 활엽수 한 그루 심어달라는 후보가 1명 뛰고 있다.

하루빨리 이재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건조한 날씨 탓을 해본다. 비라도 내리면 산불이 꺼지지 않을까 일기예보도 찾아본다. 잊지 말자고 다짐도 한다. 소나무로만 빽빽한 숲이 산불에 취약하다는 사실 말이다. 소나무를 심는 유권자도, 참나무를 심는 유권자도, 자작나무를 심는 유권자도 숲을 아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탓할 이유가 없다. 정치는 숲속에 다양한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치 제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