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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4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일하다가 사고로 죽지 않도록 하라는 국가의 신호는 지난 2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삼표산업 산재 사망 사고로 깨졌다. 하루 2명 꼴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한국 사회는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①“ ‘사고 사망 노동자’ A 씨, 우리 아버지 전수권입니다”
② 대구경북 지역 산재 사망 판결, 실형 선고는 단 3.5%
③ 중대재해처벌법 탄생 약사···반복된 참사의 기록
④ 퇴직까지 산재 숨긴 포스코 노동자의 후회
⑤ 잘나가던 불로반점 사장님, 가게 문 닫은 사연
⑥’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산재 부상, “통합 체계 필요”

산업 현장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는 여러 참사를 거치며 무르익었다. 지난 2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전사(前事)는 한국사회를 뒤흔든 참사와 함께 펼쳐진다.

2013년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폭발사고로 사상자가 17명 발생했다. 이 사고 후 국회에서는 김선동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주도로 기업살인처벌법이 추진됐다.

기업살인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노동자 또는 종사자에게 중대재해를 야기하는 행위를 기업살인 범죄로 규정하고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사망 사고 발생 시 7년 이상의 징역, 상해 시 5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해 강한 처벌 조항을 포함했다.

기업살인처벌법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4년 2월 14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2차 임시회 전체회의에서 주영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산재 사고 예방 취지는 동감한다면서도 사망이라는 결과만 두고 기업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산재 예방에 부작용이 있으며, 산업계도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지적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업주 책임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수 산단 폭발 사고 처벌 촉구 기자회견 (사진=참세상)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묻는 여론이 제기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경합범 가중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추진하고, 대검찰청도 ‘기업책임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목만 끌다가 모두 불발됐다.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경합범 가중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중대한 범죄에서 형법상 경합범 가중 규정으로 인해 그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할 수 없다며, 최장 100년까지 유기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자며 추진됐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2014년 7월 열린 국회 제326회 임시회 제5차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특례법안과 관련해 법안 통과를 요청했으나, 세월호 참사 면피를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들었다.

박민식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권순일 법원행정처 차장을 향해 “세월호 사건을 보고 시의적절하게 법률안을 만든 것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평소에 진지한 고민이 있었나”라며 “‘100년(처벌) 할 수 있다’고 신문에 한 번 나올 수는 있다. 현재 지나치게 온정주의적 판결을 많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4년 7월 국회 제326회 제5차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제안한 기업책임법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업주가 아닌 기업(법인) 자체에 독립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제안됐다. 하지만 한국의 형법은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기업책임법’을 추진한다는 뉴스만 양산한 뒤 자취를 감췄다.

2017년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이 추진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도 세월호 참사와 당시 공론화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계기였다.

특별법에는 중간 관리자 처벌에 그치던 기존과 달리 경영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현대의 대형 재해가 노동자 개인의 위법 행위가 아닌 기업 내 시스템과 조직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기 때문에 직급이 다양하고 책임 관리자도 다수인 큰 기업일수록 사고 시 중간 관리자 처벌에 그친다는 것이다. 특별법을 통해 경영책임자 처벌을 규정해 중대재해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이 특별법 또한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지만, 특별법의 핵심인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조항은 향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실현됐다.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 (뉴스민 자료사진)

2018년 국회를 통과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故 김용균 씨 산재 사망 사고로 추진됐다. 당초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19세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 모 씨가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가 사망한 뒤 추진되다가 중단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김용균 씨 사후 우여곡절 끝에 완료됐다. 김용균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 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하고, 위험한 작업을 도급에 맡기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2020년 4월에는 경기도 이천시 물류센터에서 화재로 인해 3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여론이 확산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명시했고, 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일어났을 때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점은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계승하는 요소다. 또한 형벌의 하한을 정해 ‘기업살인처벌법’의 요소도 계승한다.

경기 이천시민회관에 마련된 냉동물류센터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중대재해처벌법, 재계 우려 있지만
“산재 예방 시스템 갖추기 위한 제도”
재벌 대기업 중대재해처벌법 공포
“엉망인 한국 재벌 구조에서 기인”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경영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법에 명시된 ‘경영책임자 등’과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개념이 모호해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고, 법정형이 과해 책임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 전문가 네트워크 회원인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과)는 법 조항이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설령 ‘경영책임자 등’,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규정이 모호하다 하더라도 판례가 쌓이는 과정에서 해결된다는 설명이다.

권오성 교수는 “‘경영책임자 등’이란 개념이 기존에 있던 개념을 준용하는 게 아니고 새로 만든 개념이다. 핵심은 권한과 책임”이라며 “계열사 사고까지 재벌 총수가 책임지느냐고 하는데,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는 대표이사다. 등기도 안한 사람이 경영에 개입한다면 그것으로 불법이다. (재계의 공포는) 한국 재벌 구조가 워낙 엉망이고 법을 안 지키는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벌이 과하다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재해 시 경영책임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게 아니고 법이 정하는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그에 따라 중대재해가 발생해야 적용될 수 있다. 미수범을 처벌하는 법이 아닌 결과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규정하는 의무는 대단한 게 아니다. 기업을 운영할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라는, 즉 시스템을 갖추라는 말”이라며 “그리고 이 의무를 법인을 운영하는 사람이 책임지고 수행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중대재해가 범죄라는 인식이 강화돼야 한다. 거기에 대해 검찰과 사법부가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