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장례식장 취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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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새로 운영하는 #053/054 코너는 <뉴스민> 기자들의 주장과 생각, 취재 뒷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칼럼 코너입니다.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들과 만나기 위한 <뉴스민>의 한 방편입니다.

올해 초, 카카오톡 ‘업데이트 친구’에 빛바랜 가족사진 하나가 떴다. 몇 해 전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 사건 취재로 알게 된 유가족 계정이다. 무덤을 배경으로 가족사진과 케익이 놓였다. 꽂힌 초 개수가 적은 걸 보니 고인 딸의 생일인가보다. 아니면 결혼기념일일 수도 있겠다. 고인의 기일이 몇 해 전 2월이었는데, 그 기념일 즈음 사망하셨나 보다.

‘유가족’이라는 단어로 친구를 검색해 본다. 프로필 사진이 주욱 이어진다. 어느 유족의 프로필은 옛날 가족사진이 차지하고 있다. 고인 자녀의 한껏 멋 부린 프로필도, 이제 막 세상 빛을 본 어린아이 프로필도 있다. 그 사진마다 깊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젊은 시절의 빛을 발하는 고인 자녀의 얼굴에도 그늘이 보인다.

노동자 산재 사고를 취재할 때 여력이 된다면 장례식장을 찾는다. 부의 봉투를 쓰고, 분향한 다음, 고인과 유족에게 절을 한다. 장례식장 한 켠에 앉아 땅콩을 먹고 있으면 신원을 물어오는 유족이 있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장례식장을 굳이 찾는 이유는 고인의 사고를 전하는 소식에 깊이를 더하고 싶어서다. 영정 사진을 보고,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본다. 허락한다면 유족의 이야기를 듣는다. 좀 더 깊은 어떤 이야기에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뉴스민> 창간 10주년 기획 기사로 산업재해의 무게에 관한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그 한 꼭지에서, 공개된 대구경북 사망사고 판결문 5년 치를 정리해봤다. 판결문에 담긴 사망 사고 이야기가 처참하다. 그 처참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산재 때문에 하루에 2명꼴로 사람이 죽는다.

산재로 사람이 죽어도 책임자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다. 지역 발생 산재 사망 사고 57건 중 단 2건에서 피고인에게 실형 선고가 나왔다. 그마저도 가중 처벌할 요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건은 피고인이 유족에게 피해 보상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집행유예 기간에 범행을 저질렀다. 다른 한 건은 피고인의 과실치사죄에 더해 폐기물관리법 위반죄 등 다른 범죄까지 병합한 결과다.

다른 사고 55건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이야기가 결코 실형 사건 2건보다 가볍지 않다. 여기에 [중대재해, 신호위반] 기획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사망 사고의 간략한 경위를 정리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 바로 가기)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간다. 어느 지면에는 분식집 아주머니도 안전담당 이모를 선임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걱정 가득한 기사가 있다. 어떤 이야기인들 하지 못할 법은 없다. 그 말이 가볍게 흩날리지 않기 위해, 먼저 중대재해라는 무거운 현실에 뿌리 두면 좋겠다. 그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자.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