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서프러제트’ 상영 중 여성 폭행 남성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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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참정권을 얻기 위해 싸운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개봉 당시,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영화관에서 옆자리 여성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4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 남성은 “요즘 여성들만 보호한다”며 남성과 여성을 차별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언론 보도는 피해 여성을 ‘옆자리녀’라고 지칭하거나, 남성이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폭행 논란’으로 표현했다가 모두 정정됐다. 여성참정권 영화를 상영하는 현장에서 벌어진 폭행과 이를 대하는 사회의 시각에서 여성인권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스크린 속 여성들과 달리, 여성 관객은 참정권은 갖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바꿔나가야 할 현실이 있다.

서프러제트 활동 역시 그저 투표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 대한 친권 행사 제한, 남성과 임금 차별, 일상적 성폭력 등은 여성을 한 사람으로 자립하기 어렵게 한 현실을 참정권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이었다. 새로운 길로 향하는 여정은 고달프다. 세상에 없던 길을 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꺼이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세상을 바꾸려던 사람이 있기에 오늘이 존재할 수 있었다.

▲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세탁공장 노동자인 ‘모드 와츠’가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수많은 여성이 ‘서프러제트’로 싸우던 현실은 사라졌을까? 일하는 여성의 어려움을 평가한 ‘유리천장’ 지수는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래로 한국은 줄곧 최하위다. 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믹스가 발표한 해당 통계에서 한국은 100점 만점에 20점을 받는데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였다.

▲여성과 남성의 고등교육 격차(28위) ▲소득격차(29위) ▲여성의 노동 참여율(28위) ▲고위직 여성 비율(여성의원 국회 의석비율 27위) 등 관련 지표를 종합해 산출한 결과다. 한국 여성은 다른 선진국 여성들보다 사회적 권한이 적고,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거나 소득 불평등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코노믹스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의 관련 제도 추진도 미진하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적절한 근거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거 캠페인에 이용했고, 성별 갈등을 조장했다. 지난 25일 전국의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라고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여성가족부의 역사적 소명인 성차별 해소와 성평등 실현은 여전히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며 “수많은 통계가 증명하듯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용률이 낮고 훨씬 더 많은 폭력에 노출돼있고, 가사노동과 육아 등 돌봄은 여성에게 전가돼왔다”고 말했다. 특히 “고용률과 고위직에 여성이 적은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 성별고정관념 등으로 발생한다”고도 지적했다.

윤 당선인의 ‘일하는 여성’에 대한 정책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임신·출산 전 성인여성 건강검진 지원 확대 ▲모든 난임 부부에 치료비 지원 ▲육아휴직 기간 확대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유급 난임치료 휴가 확대 등이다. 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윤 당선자의 여성 노동 공약 분석 결과에 대해 “여성도, 노동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SNS에 올린 내용.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적절한 근거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거 캠페인에 이용했고, 성별 갈등을 조장했다.

여성가족부 대신 ‘인구가족부’로 이름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선 토론회에서도 사회자가 ‘출생’으로 물어도 ‘출산’으로 답했다. 이들에게 여성은 인구를 늘리는 데 기여하는 데만 쓸모가 있는 걸까? 2016년 행정자치부에선 전국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어 뭇매를 맞았다. 여성으로 겪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관련 대책은 전무하다. 대신 여성들에게 출산해 인구 문제를 해결하라며 등을 떠민다.

‘서프러제트’ 상영 중 여성을 폭행한 남성은 어떻게 됐을까. 윤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와 무고죄 강화를 두고 여성만 보호하는 현실이 달라진다며 환호했을까. 21세기 ‘서프러제트’는 역사적 소명이 지속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사회적 존재로 존중받기 위한 목소리 내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일하는 여성으로, 한명의 사람으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때때로 용기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윤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붙일 것이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저명인사들은 당당히 ‘여성혐오’ 발언을 할 것이다. 여성들은 일상이나 거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성혐오’ 범죄를 걱정한다. “절대 굴복하지 마세요. 투쟁을 멈추지 말라”던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에멀린 팽크 허스트의 외침은 여전히 절실하게 울리고 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