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사자에게 필요한 건 ‘생닭’ 보다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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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구 한 동물원이 ‘비건 페스티벌’을 열 계획을 밝히면서 행사 수익금 일부를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한다고 했다. 업체는 ‘비건 작가와 만남, 유명 유튜버를 초청하여 비건 먹방, 비건 뷰티 체험 등 비건을 주제로 이색적인 체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은 반발했다. 이들은 “해당 동물원은 대형 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실내에서 백사자 등 수많은 야생동물을 좁은 공간에 감금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시대착오적인 대표적 동물 학대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동물을 감금하고 착취하는 것이 동물을 위한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오해를 낳는다”고 말했다.

‘비건 페스티벌’에 대해서도 “비건은 이색적인 것이 아니라 중요한 가치관과 윤리의 문제”라며 “비거니즘은 모든 동물에 대한 착취와 학대를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자 사상”이라고 했다. 이들은 “해당 동물원이 이러한 기본 상식 없이 비거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며 비판했다. 해당 동물원은 결국 행사를 취소했다.

이 동물원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평소 하루 15마리 생닭을 먹던 백사자에게 5마리만 줬다. 당시 멸종 위기종인 수달을 포함해 두 달 동안 동물 13마리가 폐사하기도 했다. 삐쩍 마른 백사자의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생닭보내기 운동’이 벌어졌다.

▲ 대구의 한 동물원은 코로나로 관람객이 줄어 경영이 어려워지자 사자에게 매일 주던 생닭 15마리를 5마리로 줄였다. 앙상한 꼬리뼈를 드러낸 사자의 모습. 소식이 알려지자 사자를 위한 ‘생닭 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진= SBS 뉴스 갈무리)

동물원은 야생동물과 축산법에 따른 가축 10종 이상 또는 50개체 이상 보유하거나 전시하는 시설을 말한다. 동물원 등록도 쉽다. 명칭, 소재지, 인력, 생물종 목록, 관리계획 등의 서류를 갖춰 지자체장에게 등록하면 된다. 대구에서 운영 중인 민간동물원은 해당 동물원을 포함해 8곳으로 확인된다. 참고로 여기엔 미어캣이나 토끼, 알파카 등을 데려다 카페에서 먹이주기 체험하거나 이용료를 받는 곳은 포함되지 않는다. 10종 이상이나 50개체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법으로 보호되는 ‘전시동물’은 거의 없다.

애초에 법부터 문제였다. 100년 가까이 없던 동물원 법이 활발히 논의된 건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2017년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하 동물원법)이 통과될 때도 업계 반발로 주요 내용이 빠졌다. 허가제나 동물쇼 금지, 동물 폐사와 질병 보고 등의 동물복지와 관련한 내용들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사육 시설의 넓이나 먹이의 종류 및 횟수, 치료 등에 관한 규정은 물론 야외 방사장 의무 확보 조항도 없다. 2020년 기준 전국 110개 동물원 중 민간동물원이 90개(81.8%)로 상당수였고, 그중 절반 정도가 실내동물원이다.

2020년 환경부가 펴낸 제1차 동물원 관리종합 계획 보고서의 국내 동물원 환경 조사 결과를 보면 5점 만점에 동물복지, 공중보건, 안전, 서식환경 등이 모두 2.3~2.4점으로 ‘나쁨’에 속했다. 동물원 법에 따른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도 이때 처음 이뤄졌다. 동물원은 ▲오락 ▲교육 ▲종 보존 ▲연구의 기능이 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동물원 가운데 교육과 종 보존, 연구의 기능을 구현하고 있는 곳이 과연 있을까? 오락 기능이라고 해도, 그것이 상업화를 위해 동물을 학대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소한의 동물복지 노력도 없는 동물원은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

지난해 7월 노웅래(더불어민주당, 서울 마포갑) 국회의원은 동물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동물원 허가제 전환과 질병·안전 관리 강화, 동물 이동전시 금지 등으로 동물원의 관리 체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해당 법안은 상임위 계류 중이다. 지하에 좁은 우리에 갇힌 사자가 굶는다고 불쌍해서 생닭을 보내는 것으로 그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관련 법은 더 엄격하게, 사육 시설과 관련한 규정도 동물복지에 준해서 이뤄져야 한다. 애초 법이 제대로 존재했다면 그곳에 사자는 없었을 것이다.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동물원 나들이도 계획할 수도 있겠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보며, 먹이 주기 체험 따위를 하는 일은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일 수 있다. 그렇다고 철장 너머 동물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먹으면 안되는 것들을 던져주며 ‘우리 아이가 동물을 좋아’한다고 하면 안 된다. 판매되는 먹이를 사서 준다고 한들, 매일 수많은 낯선 사람이 대중 없이 건네는 먹이에 영양 불균형과 스트레스를 받을 동물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게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알려줘야 할 동물의 아픔에 공감하는 ‘동물권’ 교육의 시작이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