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6) ‘대구에서 비건하기’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기

2015년 하루 저녁에 비건이 된 백소현 씨는
‘나른한 책방’에서 비건 음료, 간식 만들고
2019년 비건이 된 연인은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세계비건여행 다녀오고 비건 식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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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백소현(34) 씨는 직접 우물을 파기로 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동천역 인근 주택가에 작은 점포를 냈다. “동물과 어린이 환영.” 안내문을 붙여놓고, 그는 이곳에서 비건식 음료와 간식을 판다. 카페 겸 책방 ‘나른한 책방’이다.

‘나른한 책방’에선 저동력 커피, 생레몬·매실청 에이드, 토마토 주스, 오곡 라떼 같은 비건(vegan) 음료만 취급한다. 쇼케이스에 채운 호두파이, 마들렌, 스콘 같은 간식거리도 우유와 계란, 버터 같은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고 만든다. 책방이 취급하는 책도 비건, 동물권과 기후위기 등 환경 관련 책이 대부분이다.

▲2022년 10월, 백소현 씨는 비건 음료와 간식을 파는 카페 겸 책방을 열었다.

그는 2015년 어느 날 하루 저녁에 비건이 됐다. 공장식 축산 실태를 다룬 황윤 감독의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본 날이다. 그는 그날 저녁부터 고기 먹기를 중단해버렸다. 인식은 했지만, 스크린을 통해 확인한 실상은 더 참혹했다.

하루 저녁 만에 비건이 된 그는 ‘당연하게’ 어려움에 봉착했다. 2015년 변변한 비건 식당이 제대로 없던 대구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건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일이다. 비건이 된 후 그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 늘었다. 순두부찌개를 자주 끓어 먹었다.

수고로움은 그만의 몫도 아니었다.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밥 한끼는 해야 ‘식구(食口)’가 되는 대한민국, 거기에서도 ‘보수성’이 하늘을 찌른다는 대구다. 그는 주변인들로부터도 자신으로 인해 ‘희생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어야 했다.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그의 선택은 쉽게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그땐 제가 있으니 고기 대신 회를 먹는다거나 그랬거든요. 물론 저는 회를 안 먹지만 이런 것들이라도 가끔 허용해야 사회 생활을 하니까요. 그런데 누군가 ‘우리가 이렇게 너를 위해서 많이 ‘희생’을 했으니까 너도 한 번은 고기를 먹어야 되지 않냐’, ‘소현이만 없으면 바로 저기 저기 다(고깃집) 가면 되는데’ 그러더라구요. 건강상 이유가 아니니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어요.”

비건이 되기로 한 후 7년,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대구는 여전히 비건인이 갈 카페며 식당이 많지 않다. 소현 씨는 직접 카페를 열기로 했다. 그는 “신영복 선생님이 세상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어요.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 자길 맞추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구요. 제가 좀 그런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2015년 하루 저녁에 비건이 된 백소현 씨
‘나른한 책방’에서 비건 음료, 간식 만들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 바꾸려 해···제가 좀 그런 것 같아”

‘나른한 책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소현 씨의 단골 비건 식당이 있다.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베지하우스’를 가면 순두부찌개 대신 버섯가지 강정볼, 두부카츠 플레이트, 볶음우동, 토마토 리소토, 팔라펠 부다볼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소현 씨는 “1년 전에 집 주변에 베지하우스가 생겼을 땐 너무 반갑고 좋았어요. 매주 갔어요”라고 말했다.

▲‘나른한 책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소현 씨의 단골 비건 식당이 있다.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는 ‘베지하우스’다.

소현 씨가 ‘너무 반갑고 좋았던’ ‘베지하우스’의 주인장 부부 정광환(34), 손희(30) 씨도 비건인이다. 2019년 손희 씨는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240까지 치솟았다. 평균적인 콜레스테롤 수치(150)보다 100가까이 높은 결과치였다. 그때부터 손 씨는 건강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였던 광환 씨에게도 자연스레 전파가 됐다.

물론 갈등이 없진 않았다. 30여 년을 육식을 잘해왔던 광환 씨는 “강요받는 느낌”을 받았다. 광환 씨는 “평생 문제 없이 먹어온 음식인데, 동물을 희생해서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하니 공격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스로 이런 문제에 대해 찾아보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동의가 됐던 것 같아요”라고 갈등을 넘어선 과정을 설명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이 됐지만, 다른 숙제는 여전히 남았다. 소현 씨가 겪었듯 마땅히 갈만한 식당이 많지 않았다. 부부는 연애시절 갈만한 비건 식당이 다섯 곳 정도였다고 헤아렸다. 그렇게 찾아다닐만한 식당이 많지도 않으니, 접근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폐업한 곳도 여럿이다.

“데이트를 시내에서 많이 했는데, 많은 가게들 중 갈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비건 식당이 많이 없을 때라 사찰 음식점도 알아보고, 일반 식당에서 채식 메뉴로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다녔어요. 인도 커리집 비건 옵션도 애용했고, 최근엔 프랜차이즈 샐러드집도 종종 가요” (정광환)

비건인이 된 후 이들의 삶은 크게 변했다. 2020년 이들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광환 씨는 경산시청, 손희 씨는 달서구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세계 비건 여행’을 계획한 이들은 그해 2월 호주로 떠났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가 ‘셧다운’ 됐다. 2년을 계획했던 비건 여행은 4개월 만에 종료됐다.

여행은 길지 않았지만 비건 생활에는 많은 영감을 얻었다. 워크어웨이(workaway)로 여행을 하면서 현지 비건인들 집에서 숙식을 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호주는 다양한 식습관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 보였다. 어느 상점이나 쉽게 비건 제품을 접할 수 있었고, 어떤 식당에선 비건 옵션도 선택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에선 못 봤던 비건 김치도 있었다.

“‘식습관’을 존중받는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 땐 동료들이랑 점심을 먹으면서 ‘저는 이제 이거 안 먹습니다’ 이러면 좀 이상하게 봤거든요. 장황하게 설명을 해도 오히려 ‘잘 먹어야 한다’, ‘힘 못 쓴다’로 시작해서, 이해는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분위기만 이상하게 만들 수도 있구요. 비건에 대한 이해가 아무래도 어렵잖아요. 회식도 고기집으로 많이 가구요. 여자친구는 그때 도시락을 싸서 다녔어요.” (정광환)

여행을 다녀온 후 이들은 여러 경로를 두고 미래를 탐색하다가, 직접 비건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다. 광환 씨는 “연애시절 우리가 식당을 차리는 게 낫겠다는 이야길 했었는데, 정말 현실이 됐다”며 “다행히 단골도 생겨서 생활비는 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땐 한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 무렵은 ‘비건 소비’가 늘어나던 시점이었다.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갈만한 비건 식당을 찾아다니던 정광환 씨는 이제 비건 식당의 주방장이 되었다.

지난 9월, KB국민카드는 채식의 날(10월 1일)을 맞아 최근 3년 간 오프라인 비건 전문음식점 매출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2019년부터 지난 8월까지 비건 전문 음식점 가맹점 수가 391% 증가했고, 가맹점 매출은 272%까지 늘었다. 베지하우스가 문을 연 2021년과 2022년을 비교해보면, 레스토랑은 19년 대비 21년 8월 매출이 55% 늘었지만, 22년 8월엔 206%까지 늘었다.

‘비건 소비’ 증가를 주도하는 건 2030인데 그중에서도 여성의 소비 증가가 두드러진다. 베이커리의 경우 20대 여성 매출액이 930% 늘어서 634%인 남성과 차이를 보였고, 30대 여성에서도 518% 증가했다. 레스토랑 매출액이 높은 성별과 연령대는 20대 남성(308%)과 30대 여성(301%)이었다. 광환 씨도 “10명 중 8명 정도가 여성일 건데, 소비층은 넓어지는 것 같아요. 가족단위나 종교인, 동료들끼리도 와요”라고 말했다.

2019년 비건이 된 연인,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세계비건여행 떠나며 부부로

정확한 집계는 확인되지 않지만 지역의 비건 인구 또는 비건 문화를 즐기는 인구는 분명히 늘어나는 추세다.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비건 식당 겸 카페인 ‘더 커먼’은 2020년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문을 열어서 지난해에는 40평대로 확장 이전했다. 대표 강경민 씨 혼자 운영하던 것이 직원도 3명으로 늘었다.

‘맛집 비건 식당, 카페’로 소문이 났고, 제로웨이스트샵을 함께 운영하면서 지역의 대표적인 환경권·동물권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덕이다. 소현 씨도, 광환 씨 부부도 ‘더 커먼’을 거쳐 간 인연이 있다. 대구에서 ‘비건 좀 한다’ 싶으면 거쳐 가야 하는 곳이 된 셈이다.

대표 경민 씨는 “비건 인구가 많지 않으니 한계는 있어요”라면서도 “저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본다. 여기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강경민 씨는 2020년 대구에서 비건식당 겸 카페, 제로웨이스트샵을 함께 운영하는 ‘더 커먼’을 열었다.

‘더 커먼’ 단골 손님이었던 전나경 씨는 카페나 식당 문을 여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우물을 팠다. 전 씨는 2020년 9월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과 재학중인 경북대학교 홈페이지에 비거니즘 동아리 ‘비긴’ 모집글을 올렸다. 모집글이 올라가고 청소년을 포함해 회원 6명이 모였다.

동아리를 만들고 나경 씨는 학교 학생식당에 채식 메뉴를 도입하는 활동에 나섰다. 그해 11월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에게 학생식당 비건식 도입 등에 대한 질의를 했다. 동아리 차원에서 비건식 도입 조사와 비건식 제공 가능 메뉴도 조사했다. 조사를 토대로 생활협동조합 학생위원회에 비건식 도입 필요성을 전달했다. 비긴의 제안으로 생협이 운영하는 학생식당 2곳에는 지난해 4월경부터 비건식이 도입됐다. 대구·경북 지역 대학 중 처음이다.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아요.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당은 학생위원회와 소통하고 있고 그래서 저희 의견을 빠르게 받아준 것 같아요. 단순히 비건식을 먹는 학생들의 편의 차원을 넘어서 학생들이 학식에서 비건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접하면 좋겠다고 기대했어요.”

▲대구 비거니즘 동아리 ‘비건’ 운영자 전나경 씨는 지난해 경북대 비건식 도입 활동을 펼쳤다.

대구에서 비건인으로 살아가면서 직접 우물을 판 이들은 비건이 보편적인 삶의 방식으로 지역에 자리잡길 희망한다. ‘더 커먼’이 ‘더 커먼’인 이유는 ‘더 커먼’이 보편적이고 보통의 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기 때문이다. 대표 경민 씨는 “사실 비건이라고 하면 별나다, 특이하다는 이야길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전 여기 오는 분들을 커먼 피플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문화들이 보편적으로 퍼졌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