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시대와 호흡한 정태춘을 그리다

6일 대구에서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시사회 열려
1987년 시인의 마을로 데뷔···사전 심의 철폐 투쟁 통해 음반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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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1993년 발매된 노래는 2016년 광장에서 다시 등장했다. 가수 정태춘은 2016년 11월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노래는 시대와 함께 쓰여졌다. 정태춘은 가요 사전검열 철폐운동, 6월 항쟁 집회, 전교조 합법화 투쟁,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그리고 2016년 광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박은옥은 시대와 싸우다 더 이상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세상에 다시 나와 마이크를 잡은, 모든 시절의 정태춘과 함께 했다.

▲6일 열린 <아치의 노래, 정태춘> 대구 시사회에는 가수 정태춘(왼쪽 두 번째)과 박은옥(왼쪽 세 번째) 씨를 포함한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사진=정용태 기자)

6일 저녁 대구 중구 CGV대구아카데미에서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영화의 주연이자 가수 정태춘과 가수이자 그의 아내인 박은옥이 참석했으며 고영채 감독, 박채은 프로듀서가 함께 했다.

시사회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 나선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정태춘이 데뷔 초 출연한 방송이 나오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어린 남매 화재 사망 사건을 노래로 만든 ‘우리들의 죽음’이 흘러나오자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이 영화는 2019년 새 앨범과 책, 전시를 선보이고 전국 투어 공연을 열었던 ‘정태춘‧박은옥 40주년 기념사업’을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워낭소리’, ‘똥파리’ 등 30여 편의 독립영화를 제작한 고영재 감독의 첫 연출작이기도 하다.

박은옥은 상영 전 무대인사를 통해 “45년 정태춘의 음악 세월이 두 시간으로 압축돼 영화로 만들어졌다. 음악적 삶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 돌아갈 때 ‘정태춘이라는 음악가가 이렇게 살아서 사회를, 노래를 만들었구나’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7년 시인의 마을로 데뷔
사전 심의 철폐 투쟁 통해 음반법 개정
“정태춘, 살아있네!”

▲사진=인디플러그 인스타그램

영화는 주연 정태춘과 동반출연 박은옥의 삶, 그리고 노래 28곡을 교차해 보여준다. 정태춘은 1987년 데뷔해 노래 ‘시인의 마을’과 ‘촛불’로 10대 가수상을 타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이후 만들어 낸 두 개의 앨범은 이전과 같은 대중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정태춘은 직접 ‘이야기 노래마당‘이라는 무대를 만든다.

1990년 나온 7집 ‘아, 대한민국’은 그를 사전 심의 철폐 투쟁에 뛰어들게 했다.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거부하고 비합법 발표를 택한 것. 정태춘은 1993년 다음 앨범인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역시나 비합법으로 발표한 뒤 김영삼 정부에 고발당했다. 그는 곧바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을 신청했고 이후 국회에선 가요의 사전 심의를 폐지하는 음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6년 걸린 싸움이었다. 박은옥은 당시를 ‘정태춘이 가장 외로워 보이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여러 현장에서 노래하던 정태춘은 더 이상 노래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오랜 칩거 끝에 그는 다시 세상에 나왔고, 그간의 작업을 정리했으며 노래를 썼다. 영화에는 촛불집회에서 노래를 접한 청소년 활동가, 노래 ‘5.18’로 2019년 세계 수영 동호인 대회인 광주마스터즈에 참여한 유나미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 투병 중인 정태춘의 오랜 팬 등 여러 세대가 등장한다. 감독은 이들을 통해 시대가 해석하는 다양한 정태춘을 보여준다.

▲6일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정태춘 씨가 팬들의 싸인 요청에 응하고 있다. (사진=정용태 기자)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런칭 예고편은 ‘2030 버전’과 ‘4050 버전’, 두 가지다. 정태춘을 잘 모르는 2030세대를 위한 예고편에선 시대에, 그와 그의 노래를 기억하는 4050세대를 위한 예고편에선 노래에 집중한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시대와 함께 흐른다.

고영재 감독은 작년 8월 영화가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처음 관객을 만난 작년 8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정태춘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와 이념을 떠나서 지구의 미래, 사회의 모순을 고민하며 특유의 음악성으로 풀어낸다. 가사가 깊어지는 것은 물론 그가 다룰 줄 아는 악기도 늘어간다”며 “시대는 급속하게 변하는데 정태춘에게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리고 그 말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며 속으로 말하곤 한다. ‘정태춘, 살아있네!’”라고 전했다.

영화는 이달 18일 개봉한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