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기업들이 예민해 해서요”

09:26
Voiced by Amazon Polly

“그 정보는 공개하기가 좀, 기업들이 예민해 해서요.”

미래차 배터리 소재 기업인 엘앤에프를 분석하는 기사를 쓰면서 대구시에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지원 내역을 문의했다. 대구에 본사를 둔 엘앤에프는 2차전지 특수 흐름을 타고 명실공히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됐다. 지역은 이 기업에 어떤 지원을 했으며, 기업은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대구시는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구체적인 금액을 공개하는 건 개별 기업이 예민해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통해 2주 가까이 기다려서야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엘앤에프는 최근 5년간 보조금을 수령한 기업 19개 중 가장 많은 금액을 받았다. 전체 보조금 규모의 31.8%에 달하는 103억 원을 수령해 모두 설비투자에 사용했다.

최근 5년은 엘앤에프가 폭풍 성장을 이룬 기간이기도 하다. 지난해 엘앤에프는 한 주당 가격이 7만 원에서 25만 원까지 3배 이상 뛰었다. 지난해(2021년) 기준 전년(2020년)대비 대구 제조업 취업자가 8.6% 증가할 동안 엘앤에프는 13% 증가하기도 했다.

L&F
▲지난해 12월 24일 엘앤에프 구지1공장을 방문한 권영진 대구시장. 당시 최수안 엘앤에프 대표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만나 “지역 인재 채용과 관련 산업육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대구시)

공장 증설에 토지 매입비까지 세금으로 지원해 기업을 모셔 온 다음,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업 성장은 분명 지역에 도움이 된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근 상권을 활성화시키며 지방세도 낸다. 하지만 지역의 여러 상장 기업을 살펴보니 직원 급여와 임원 보수 상승률의 차이가 크게 난다거나, 본사만 대구에 있을 뿐 신설 공장은 타지역에 짓는 등 ‘모셔온 다음’에 대한 관리·감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발전적 비판은 기업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엘앤에프를 분석하는 기사를 쓰며 주변에 정보를 묻자 업계 관계자, 기자 할 것 없이 모두 ‘기업과 소통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범GS가에 속한다는 사실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관리·감시의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난해 8월 국토연구원에서 발표한 보고서 ‘기업 본사의 지방 이전 최근 동향과 정책 시사점’은 “충남 소재 대기업 공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역 소재 공장은 거의 생산 기지 역할만 수행할 뿐, 제품기획‧영업‧재무‧국제업무 등 대부분 고급관리 기능은 수도권에서 담당했다”고 짚고 있다. 지역에 생산 업무 외에 다양한 일자리가 없다는 문제도 여기서 발생한다.

경제‧산업 분야 기사를 써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처음엔 건방지게도 ‘지역의 경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제는 모든 곳에 있었다. 쉽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지만 기업들이 예민해하는 정보를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겠다. 그게 모셔온 다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