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홍준표는 정말 대구 경제를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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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기사를 쓰지만 여전히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사이 경계를 다룰 때 힘이 든다. 그럴 때 꺼내 드는 책이 헥터 맥도널드의 <만들어진 진실>이다. 모든 현상에는 하나 이상의 진실이 존재하고, 어떤 진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내용이다. 각 장의 말미엔 ‘다음과 같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박스가 있는데, 그중 몇 개에 밑줄을 그었다.

‘숫자를 실제보다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보이게 만들거나, 추세를 실제보다 더 의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오도자’. 홍준표 대구시장은 취임 후 1년간 21개 사 4조 5,227억 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냈다고 한다. 대구시가 보도자료와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한 내용이다. 이 내용 어디에도 사실이 아닌 부분은 없다. 다만 취임 직후 이 숫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홍 시장과 대구시가 무리했다는 것은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다. 시민 관심이 높았던 이케아 대구점도, 3조 원을 강조한 태양광 프로젝트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실화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없는 인과관계를 마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오도자’. 대구시가 말한 투자 유치 건 중엔 이미 투자를 계획해 부지 매입까지 마친 상태에서 행정 절차 간소화를 위해 협약을 체결한 사례(메가젠임플란트), 이미 전임시장 때부터 관계가 있었으나 홍 시장의 성과를 부각한 사례(이케아, 플러그앤플레이)가 포함돼 있다. 홍 시장의 역할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기존의 맥락은 의도적으로 소거한, ‘실제로 있는 인과관계를 마치 없는 것처럼 이야기한 오도자’라 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스토리에 끌린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대권 출마 경험 있는 홍 시장이 대구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신화 같은 이야기를 믿고 싶어 한다. 홍 시장의 투자 유치 성과는 거기에 부응하듯 부풀려져 왔다. 허수가 드러나고 있지만 대구시는 성과를 홍보할 때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하진 않는 모양새다. 이미 홍보 효과로 스토리를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지난 8일 대구시의회 행정감사에선 ‘태양광 프로젝트’의 달성 가능성에 대한 질의가 나왔지만 대구시는 외부 요인을 이유로 들며 정확한 상황 전달을 피했다. 협약을 맺은 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설치를 마무리한 공장은 1곳으로, 대구시가 목표한 1.5GW의 0.02% 수준에 불과하다.

“대구가 잘 되길 기자님도 바라지 않냐. 안 되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잘 봐달라” 대구시 관계자가 투자유치 진행 상황을 묻는 통화 말미에 덧붙인 말이다. 당연하다. 대구가 잘 되길, 홍 시장이 대구 경제의 구원투수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홍 시장이 ‘만들어진 진실’을 통해 더 큰 정치판으로 나아가는 데 대구가 이용되는 걸 바라진 않는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건 대구 시민이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별표 다섯 개 친 부분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오도자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심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의심할 수 있을 때는 의심하라. 명확한 설명과 확언을 요구하라. 여지를 주지 마라. 뭔가 빠져 있다 싶으면 물어보라. 숫자가 오해를 일으키도록 제시돼 있다면 다른 해석을 시도하라.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나 이름이 동원되면 관련성을 의심하라. 주장의 기초가 된 도덕적 가정이나 신념이 뭔지 질문하라. 공식적으로 용어를 정의해달라고 요구하라’. 홍 시장이 능수능란하게 ‘사실’을 이용해 ‘진실을 만드는 걸’ 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 언론의 역할이자 시민의 역할일 테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