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d by Amazon Polly

[편집자주] 경상북도는 올해부터 모든 지자체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으로 연간 60만 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2019년 처음 지급하기 시작한 농민수당은 같은 해 경북 봉화에서도 지급됐다. 점차 번져가 제주도를 포함해 넓은 농촌 지역을 끼고 있는 9개 광역(특별)자치도에서 도입했고,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제 갓 기점을 떠난 기차처럼, 농민수당은 이제 막 시작된 정책인 만큼 농민들에게 실제적 도움이 될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① 경북 농민수당 1번지, 봉화군민이 전하는 농민수당

“주니까 좋지. 그런데 나라에 돈이 있나 몰라.”
“농민들 어려워요. 그래도 정부에서 주는 거 많이 달라고 할 수 있나. 주는 대로 받아야지.”

봉화군은 경북에서 가장 먼저 농민수당을 지급했다. 2019년 50만 원, 2020년 70만 원, 2021년 80만 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경상북도 차원에서 농가당 60만 원을 경북도 농민에게 지급한다. 봉화군은 원래 계획했던 군 차원의 농민수당을 ‘코로나19 농업인 한시적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봉화군에 거주하며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농가는 경북도가 지급하는 60만 원과 봉화군이 지급하는 64만 원을 더해 124만 원을 수당으로 받는다.

지난 4월 19일 오전 경북 봉화군 춘양면 억지춘양시장에서 만난 봉화 농민들은 대체로 농민수당 정책을 환영했다. 그들은 인구유입이 멈추고 영농비가 폭등하는 어려움 속에 지난 3년간 지급된 농민수당이 충분친 않아도 농업을 유지해나가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농업에 종사하는 이와 종사하지 않는 이가 느끼는 체감도에는 괴리가 있어 보였다.

지급 4년차 봉화 농민들, 긍정적 평가
“수당으로 비료도 사고 마트 장도 봤다”
비농민들은 효과 체감 못하는 한계도

<뉴스민>이 억지춘양시장을 찾은 19일은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춘양시장은 면 단위 재래시장 중 전국에서 큰 편에 속한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세 다리의 노인들 사이를 간혹 두 다리의 젊은이가 앞질렀다. 도시의 시장과는 다른 속도감이다. 길가에 자리 잡은 트럭에선 여름 바지를 팔고 바닥에 깔린 돗자리에선 모종을 팔았다. 시장 안에서 간식거리를 사든 간호사가 빠른 걸음으로 입구 길목의 중앙의원에 들어갔다. 병원 앞은 지팡이 짚은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병원 앞 북새통을 지나 시장 입구에서 10미터 채 떨어지지 않는 노상에서 김태희(58, 여) 씨는 모종을 팔았다. 김 씨는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러 2년 전 봉화로 되돌아와 3,000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농사를 지어보니 해마다 100만 원씩은 마이너스”라며 “인건비, 비료 가격, 농약 가격까지 안 오르는 게 없다”고 말했다.

농가 자재비가 자꾸만 오르는 새에 지급되는 농민수당은 그나마 그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 김 씨는 “정부가 그래도 농사짓는 사람을 챙겨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액적으로 큰 도움이 되진 않아도 매년 나오니 좋다”고 덧붙였다.

김 씨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은 시장에서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법전면에서 장을 보러 나와 김 씨가 파는 모종을 구경하던 장 아무개(77, 남) 씨는 “형편에 도움이 된다. 지금 같으면 모를 살 수도 있고, 고추 모종도 살 수 있다. 직불금은 연말에 들어오니까 그전까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권순길(72, 여) 씨도 “1년에 50만 원, 70만 원이 농촌에 사는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크다. 시장에 나올 때 주로 쓴다. 금액이 확대되면 우리야 고맙지”라고 말했다.

춘양면에서 벼와 고추 농사를 짓는 김상길(77, 남) 씨도 마찬가지다. 김 씨는 “내일(20일) 수당이 나온다. 올해는 124만 원 나온다는데, 큰 돈”이라고 지급 시기와 액수까지 콕 짚어 알고 있었다. 그는 벼농사를 지으며 받는 직불금과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하면서 “작년에 나온 80만 원도 다른 돈 빼 쓰는 것보다 살림에 보탬이 됐다. 비료 사고, 마트서 장도 봤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지만 촌에선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대체로 농민수당을 알고, 그것의 효과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20년 기준 봉화군의 농업종사 가구원은 9,180명, 전체 인구 2만 9,945명 중 30.7% 수준이다. 봉화 주민 10명 중 3명은 농민인 만큼 그 효과가 반영된 반응이라고 볼 순 있다. 하지만 나머지 7명이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정책 연속성에 불확실한 안개를 드리우게 한다. 지난 대선 기간 경기도 기본소득 정책이 실제로 경제적 효과를 보이느냐를 두고 일었던 논란이 일종의 예고편인 셈이다.

<뉴스민>이 현장에서 만난 비농민들도 정책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 효과성도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춘양면에 거주하는 이길방(82, 여) 씨는 “우리는 농사를 안 지어서 잘 모른다”고 했고, 영주에서 춘양시장까지 모종을 팔러 온 최탁(63, 남) 씨도 마찬가지였다. 봉화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20대 정다은(26, 여) 씨도 “부모님이 과수 농사를 하지만 농민수당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말했다.

수당을 받고 있는 이 중에서도 정책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일종의 ‘퍼주기식 복지 정책’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오순기(66, 여) 씨는 농민수당을 받는 농민이지만 다양한 복지 수당을 언급하면서 “우리 자식들 세금 덜 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오 씨는 “젊은 사람들이 애 낳고 잘 살도록 해야지, 세금 거둬 노인들 다 퍼주면 안 된다. 진짜 필요한 사람 찾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식이 공무원이고 교수하는 사람들도 지원금을 다 받는다”며 “이것(농민수당)도 (면사무소에) 가서 얘기할 줄 모르는 할매들처럼 진짜 필요한 사람은 못 받는다”고 덧붙였다.

▲<뉴스민>은 지난 4월 19일 봉화 억지춘양시장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농민수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올해부터 지급되는 봉화 외 지역은 기대 반, 불만 반
“줄 거면 빨리 좀 주지, 줄 거면 좀 많이 주지”

봉화 외의 다른 경북 지역에서도 농민들은 대체로 경북도의 농민수당 정책 시행을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늦은 도입 시기와 적은 지급 규모는 숙제로 남아 있다. 금시면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사무처장은 “‘줄 거면 빨리 좀 주지, 남들 다 주는데 눈치 보다가 이제야 준다’는 분위기”라며 “‘줄 거면 좀 많이 주지’하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뉴스민>이 지난 1월 미리 경북 의성과 군위, 경주 등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의성군 의성읍에 거주하는 남상규(70, 남) 씨는 정부 재정을 걱정하면서도 더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남성은 ‘애들 사탕 주는 것 같다’며 소액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남상규 씨는 “정부 재정을 봐가면서 해야 할 거 같다. 농민 살린다고 정부 재정이 없으면 또 안 되지 않느냐”며 “없으면 없는대로 하고, 있으면 돌아오면 좋다. 꼭 60만 원으로 못 박지 않고, 상황에 따라 더 줄 수 있으면 더 줘도 되지 않겠냐”고 말했고, 단촌면에 거주하는 59세 남성은 “애들 사탕 주면서 달래는 것과 같다. 한 달에 60만 원도 아니고, 일 년에 60만 원은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위군 소보면에서 만난 유병찬(63, 남) 씨 역시 “안 주는 것보다 고맙지만 1년에 60만 원이 크게 살림에 보탬이 되진 않는다”며 “요즘 하루 일당인 12만 원이 넘는다. 정부 살림이 어디까지 되는지 모르지만 농민들 사기가 올라가려면 이보다 더 적절하게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아니라는 박한 평가도 나왔다. 의성군 안평면에서 마늘과 고추 농사를 짓는다는 김 아무개(75, 남) 씨는 “돈 주는 건 필요 없다. 그보단 농산물 가격이 안정되어야 한다”며 “내릴 땐 한 번에 폭락하고 오를 땐 정부가 조정해버리는데 농사가 잘되겠느냐”고 했다.

그나마 농사를 짓는 이들은 올해 농민수당이 지급된 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봉화와 마찬가지로 비농민들은 농민수당을 잘 알지 못했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크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의성전통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김민아(65, 여) 씨는 “겨울에 농사를 안 지으면 할 게 없으니 나미 많은 사람들은 그거(농민수당)라도 받아서 살면 좋다”면서도 “일단 많이 주는 건 좋지만, 군이 돈이 어디 있어서 자꾸 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의성읍에 거주하는 배분옥(74, 여) 씨는 “나는 농사를 짓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그 안에 또 차별이 생길 거라 생각한다.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투명하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급 행정시스템 정비 필요하다는 지적도
“농업경영체 경영주 1인에게만 지급 시스템 문제”

▲봉화군 억지춘양시장에서 만난 김태희 씨는 농민수당을 긍정적을 평가하면서도 행정적 미비점을 지적했다.

이미 시행 4년차에 접어든 봉화에서는 행정시스템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시행하는 경북의 다른 지자체에선 반면교사 삼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김태희 씨는 “동네 노인들에겐 정보가 다각도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장이 얼마나 재빠르게 움직여서 전달하고 안내하는지에 따라 지급률이나 속도에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 씨는 “농민수당 같은 지원정책에 대해 공무원이 직접 와서 챙겨주면 좋을텐데, 그런 경우는 잘 없다. 동네 노인 중에는 상품권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시골에서 우리 집처럼 자식이 일일이 챙기는 집이 몇이나 되겠나. ‘주면 땡’이라 생각 말고 잘 챙겨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금시면 사무처장도 “경기도, 경남같이 농민수당이 늦게 도입된 일부 지역에선 지급 대상자를 농민 개인으로 하거나,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공동 경영주에게 따로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경북은 시작도 늦었는데, 농가당 1명이라고 못을 박았다”고 지적했다.

금 사무처장은 “지급 대상에 여성·청년 농민을 포함시키는 것부터 지자체마다 금액이 다른 문제, 농민수당 신설에 따른 타 보조금 예산 감액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게 많은데, 지자체에서 장기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산업화 희생양이었던 농업의 역사를 봤을 때, 그리고 앞으로 식량 위기 시대 속 농업의 역할을 봤을 땐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농촌과 농민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서 농민수당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김보현, 이상원 기자
편집 및 촬영=여종찬 PD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