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수당, 기점] ⑤-1 “농민수당 넘어 농촌기본소득으로”

뉴스민 10주년 기획취재 [신호, 등] 6. 농민수당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인터뷰
도시의 분출구 역할 해 온 농촌, 한계에 도달
소농 다수지만, 직불제 중심 농촌···곡물 자급률 21%에 그쳐
“절박한 심정으로 농촌기본소득 도입해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5년간 실험 돌입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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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상북도는 올해부터 모든 지자체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으로 연간 60만 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2019년 처음 지급하기 시작한 농민수당은 같은 해 경북 봉화에서도 지급됐다. 점차 번져가 제주도를 포함해 넓은 농촌 지역을 끼고 있는 9개 광역(특별)자치도에서 도입했고,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제 갓 기점을 떠난 기차처럼, 농민수당은 이제 막 시작된 정책인 만큼 농민들에게 실제적 도움이 될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경북 농민수당 1번지, 봉화군민이 전하는 농민수당
올해부터 전국 확대···갈 길은 멀어
농민수당이 기본소득으로 운영된다면?
농업소득 비중 큰 경북, 군위군 편입 대구···농민수당 전환기?

농민수당 출발, 그다음 고민해야 할 것

“경북의 영양군 인구가 몇 명인지 아세요? 1만 6,000명이에요. 군민 1인당 월 30만 원씩 농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연간 768억 원 정도입니다. 영양군 한 해 예산이 3,000억 원 정도이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실제 거주인구는 그보다 적을 테니 군 예산의 20% 이하로도 가능해요”

도시 이슈가 아니기에 주목받지 못했을 뿐, 농민수당은 꽤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15년부터 농민수당 연구를 시작해 전국으로 강연, 기고, 인터뷰를 다녔다. 지난 3월 24일 충남 공주 충남연구원에서 박 연구원을 만났다. 현재 지급하는 농민수당의 방향부터 농촌 인구 전체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 정책의 실현가능성, 농촌의 미래까지 폭넓은 이야기가 오갔다.

도시의 분출구 역할 해 온 농촌, 한계에 도달
소농 다수지만, 직불제 중심 농촌···곡물 자급률 21%에 그쳐

박 연구원이 농촌에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초창기,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보편지급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지금은 재난기본소득, 무상급식 등의 경험을 통해 대중의 시선이 넓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보편지급에 늘 강한 이념 논쟁이 섞였다. 특히 농업 분야에는 이미 여러 직불금이 있었다. 오랫동안 농정의 핵심 역할을 해오며 정교하게 자리잡다 보니 이 틀을 깨기가 어려웠다. 농민단체조차 직불금 확대나 농산물 최저가격보상제에 더욱 신경을 쓸 때였다.

“기존 제도에 한계가 있다는 건 이미 검증됐죠. 근본적으로 농업은 시장 원리로 돌아갈 수 없어요.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소농 위주 농업 형태에선 불가능한 일이에요. 우리나라는 1ha(1만 제곱미터) 미만 농가가 전체의 70% 이상이에요. 직불금 형태에선 이분들이 받는 금액이 얼마 안 돼요. 미국, 유럽 같은 해외에도 농사지어서 생계 꾸리는 농민이 많지 않아요. 다양한 직접 소득 지원 제도를 통해 전체 농정 예산의 50~70%를 농민에게 주고 있어요. 농산물을 생산하고 토지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대우해주는 거죠. 그렇게 가꿔진 농촌은 도시 사람들에게 힐링과 치유의 공간으로 사용돼요.”

우리나라에서 농촌이 갖는 이미지는 좀 다르다. 사람을 쉽게 보기 어려운 동네 한 가운데 주민쉼터, 커뮤니티센터 따위의 뜬금없는 건물이 세워지거나 각종 산업단지, 부동산 개발, 발전소, 쓰레기와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면서 ‘힐링과 치유의 공간’과 거리가 멀어졌다.

도시 자본은 몰락한 농업과 농촌지역을 투기 대상으로 삼았다.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산업화는 도시 위주의 공업화였고, 도시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농업과 농산물이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됐다. 무분별한 농산물 수입 개방은 농업의 어려움을 더했고, 농촌민은 값싼 도시 노동자로 전환됐다.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는 건 과한 해석이 아니다. 코로나19는 대전환의 시기를 앞당겼다. 돈만 주면 사 올 수 있던 해외 농산물은 기후위기와 팬데믹, 전쟁 등의 이유로 수입이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1%, 나머지는 해외에서 수입해 지탱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한 ‘식량전쟁’의 시대다.

“도시 팽창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문제도 있어요. 산업자본에 의한 농촌의 파괴는 이제 더 이상 빈 땅이 없을 정도로 진행됐어요. 농촌에 사람이 없으면 난개발과 공해시설이 쉽게 들어설 수 있어요. 무분별한 개발은 농지를 잠식시키고 공해시설이 난립하게 만들어요. 1년에 약 1만ha씩 전용되면서 이젠 더 이상 개발할 농지도 없어요. 이대로라면 사람은 계속 줄어들겠죠. 홍수가 나고 산불이 나는 문제를 넘어서 지역의 다양한 역사를 지키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거예요.”

“절박한 심정으로 농촌기본소득 도입해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5년간 실험 돌입

박경철 연구원은 기존 지원사업과 개발사업이 지역의 해체와 갈등을 조장하고, 소수가 이익을 독차지하는 체제를 공고히 했다고 주장했다. 행정복합도시, 혁신도시, 각종 도로와 철도는 도시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농민기본소득은 사람에게 투자하고 사람들의 삶을 연결하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부 사업들은 중앙에서 계획을 짜서 내려보내는 탑다운 방식이에요. 예산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죠. 지역민들끼리 예산 사용을 두고 분란이 일고 소송도 해요. 이런 방식이 답이 아님을 인정하고 사고의 전환을 해야 돼요. 직접 지불 방식으로 예산을 주고, 마을 안에서 논의를 통해 정하는 거죠. 주민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곳에 가야 하는데, 지금은 컨설팅사에서 보고서를 잘 써주는 곳으로 예산이 가요. 말도 안 되는 곳에 커뮤니티센터 지어놓고 나중에 가 보면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문이 닫혀있는 사례는 너무 많죠.”

농촌기본소득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다. 농촌 인구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주장이 아직 대중성을 갖긴 어렵지만 박 연구원 의견은 다르다.

“독일은 농업인구가 1~2%밖에 안 되지만 농촌인구가 50%를 넘어요. 도시에서 일을 해도 거주는 농촌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우리나라는 이런 생존방식이 거의 불가능해요. 농사도 소규모이기 때문에 생존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요. 다만 농촌에 어느 정도 인구를 유지시켜 재해와 재난에 대비하고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의미로 농촌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어느 정도 현실가능성이 있어요.”

올해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이 ‘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역으로 선정됐다. 5월부터 모든 주민에게 기본소득 월 15만 원이 주어진다. 연간 180만 원이 5년 동안 지급될 예정이다. 4인 가족이라면 한 해 기본소득 720만 원이 생긴다. 박 연구원은 지역의 인구 유지 및 증가, 주민 삶의 질 향상,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연구원은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소득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땅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존중, 그리고 식량전쟁 시대의 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 농촌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국방만큼만 농업을 지켰어도 지금 같은 위기는 아닐 것”이라며 “지금까진 농업을 등한시해도 산업 발전을 통해 국가가 성장했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저물었다. 이제라도 절박한 심정으로 농촌에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김보현 기자
촬영 및 편집=여종찬, 박찬승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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