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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면 폐지하고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기후 위기와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감 속, 어떤 이는 원전이 답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답이 아니라며 대립한다. 하지만 양쪽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한 문제가 있다. 핵폐기물이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은 90년대부터 줄곧 입지 선정을 시도했으나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전 지구적으로 아직 영구처분장을 마련한 곳은 없다. 무작정 원전 부지 내에 임시로 쌓여만 가는 핵폐기물. 답을 내야 할 정치인은 이 문제에 대해 말하길 꺼린다. 한국 원전 가동 40년, 진척 없는 빨간불만 이어지고 있다.

① 응답 없는 정치, 불안한 주민
“고준위 방폐장, 답 있다는 사람에게 속지마라”
③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실패의 역사
월성원전 인접지 주민에게 방폐장이란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어요. 지금은 뭔 큰 소리만 나도, 소방차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 원전 때매. 지금 와서 보면 우리는 그냥 제물이었던 거지. 희생을 하라는 거지. 대를 위해서. 알면 알수록 억울해.” (양남면 나아리 주민 황분희, 75)

서울 노원구 아파트단지 인근 도로 아스팔트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자, 도로를 뜯어내 경주로 보낸 일이 있다. 이송 시점은 2013년 12월.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다. 방폐장 완공일은 방사성폐기물이 경주에 들어오고 1년 8개월 뒤인 2015년 8월이었다. 당시 노원구청(구청장 김성환)은 뜯어낸 폐아스팔트를 보관할 곳을 찾지 못해 구청 주차장, 인근 공원 등을 전전하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결국 방폐장이 준비되지도 않은 경주로 보냈다.

방폐장 인근 주민들은 방폐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반발했고, 경주시의회 원전특위도 반입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별 수 없었다. 경주 방폐장으로 이송이 확정되자 노원구청은 “노원구 60만 구민이 정부의 방사성 도로 폐기물 완전 이송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아스팔트 도로 현장. (사진 출처=환경보건시민센터. www.eco-health.org/)

월성원전과 경주 방폐장이 있는 동경주 지역에 사는 황분희 씨는 훗날 이 소식을 알게 되자 분통이 터졌다. 황 씨는 월성원전 지척에, 방폐장 부지와 약 3km 거리에 살고 있었다. 폐기물 반입 당시 상황을 바로 전해 듣지는 못했다. 반입 시작 얼마 뒤 소식을 들은 황분희 씨. 그때 황분희 씨는 갑상선암 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다.

“김성환 구청장 지금 국회의원 하고 있지요. 서울에는 길거리 아스팔트도 허용이 안 되는데, 우리는 옆에 원전이 있어요. 그런데 기준치 이하라 괜찮대요. 말이 됩니까. 시골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억울한 생각밖에 안 들어요. 서울 가봐요. 불야성이 돼서 전기 쓰고 편하게 살고.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예요. 원전 대신에 혜택받는 게 있다고요? 없어요. 전기세 조금 보조해주는데. 그 돈 드릴게요. 필요 없어요. 원전도 필요 없어요.”

황 씨는 울산에서 지내다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자 좋은 환경을 찾으러 나아리에 터를 잡고 살게 됐다. 황 씨가 나아리로 이사 왔을 당시는 월성원전 1호기만 있을 때였다. 황 씨를 포함해 지역 주민은 원전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 없었고, 국가사업이라니 큰 문제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크게 느꼈고, 이후 본인도 갑상선암에 확진되면서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황 씨는 현재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다.

황 씨는 핵폐기물 문제도 특별히 알지 못하고 있다가, 2003년 전북 부안에서 방폐장 반대운동이 일었을 때를 기점으로 폐기물 처리 문제 또한 심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뒤이어 부안에서 실패한 방폐장 입지 선정은 황 씨가 사는 나아리와 바로 인접한 봉길리로 추진됐다.

황 씨는 당시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 과정도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경주가 토함산을 기준으로 동쪽은 동경주(양남, 양북, 감포)로 구분되는데, 유치 투표는 큰 상관도 없는 경주 시내 주민까지 포함해 진행했기 때문이다.

▲월성원전이 있는 나아리 주민 황분희 씨

“부안에는 고준위 방폐장과 중저준위 방폐장이 같이 들어가기로 했잖아요. 반대가 워낙 심하다 보니 정부가 중저준위부터 추진하기로 했는데, 그때 우리 지역 분위기는 갈렸어요. 어떤 사람은 인구도 유입되고, 동경주가 잘살게 된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원전도 싫어하는데 현실적으로 중저준위라도 받으면 고준위는 안 들어 오겠다는 판단도 했어요. 그래서 중저준위를 받아들이자고.”

황 씨는 일단 주민투표라는 절차가 진행됐기 때문에, 방폐장에 반대하긴 했지만 투표율이 높게 나오면서 입지 선정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돌이켜 생각해보면 입지 선정 당시 엄청난 지원을 할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느낀다. 방폐장과 함께 공장도 생기고, 교육시설 신설, 3,000억 원 지원과 같은 말들이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신뢰할 수 없는 거야. 정부고 한수원이고. 누가 책임져. 후쿠시마 사고 난 거 보세요. 자연재해는 방법이 없어. 고준위 방폐장은 어쩔 겁니까. 똥을 싸면 치워야 하는데 치울 데가 없잖아요. 폐기물은 아무래도 영원히 저장할 방법을 찾지 못할 거 같아. 그런데 과연 저걸 누구를 위해 짓느냐는 말이야.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우리 세대는 끝났지만 내 손자들은 저거랑 같이 살아야 하는 거잖아.”

중저준위 방폐장 들어선 봉길리 주민
“인구가 적으니 불가항력···갈수록 위험해질 것”

“(중저준위) 방폐장이 여기 있는데요. 경주 전체 찬성률 높았는데 여기(동경주)는 반대가 당연히 많았어요. 인구가 적으니 불가항력이지···자손 대대로 사는 데에 문제가 있죠. 땅도 다 팔았어요. 난 여기서 회도 안 먹어요.”(양북면 봉길리 주민 최창렬, 70)

최창렬 씨는 중저준위 방폐장이 있는 봉길리 주민이다. 방폐장 문제에 더해 최 씨는 얼마 전 불거진 월성원전 삼중수소 유출 등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최 씨는 황 씨와 마찬가지로 중저준위 방폐장 입지 선정이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 씨는 방폐장이 장기적으로 지역을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

“경주 방폐장에 지하수가 차고 바닷물이 섞여 들어가요. 오염된 물이 이제 우리 마을 쪽으로 온단 말이야. 당연히 우리 마을에는 반대를 많이 했죠. 그런데 들어왔어요. 투표로 하니까. 경주 인구가 26만이면 여기는 1만 5,000명이야. 불가항력이지.”

실제 2005년 11월 있었던 방폐장 유치 투표와 관련해, 찬성률이 경주 중심가 쪽과 동경주 지역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 당시 주민투표 결과를 분석한 논문1에 따르면, 투표 결과 동경주 지역은 평균 58%의 찬성률을, 그외 지역과 중심가는 평균 89% 찬성률을 보였다.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 결과 분석. 지도의 지역마다 쓰인 숫자가 찬성율이다. (자료 출처=김태현, 김홍규,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 주민투표 결과의 공간적 패턴 분석」)

해당 논문은 “같은 행정구역 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 위험시설이 위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상을 둘러싸고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간의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며 “이들에게 보상을 전제로 한 혐오시설 입지는 자신들에게 현실적으로 불리하더라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딜레마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어 “고준위 방폐장 건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회적 수용 가능한 입지를 고려할 때 구체적 보상구역의 차등 설정 방안이나 지형적 여건을 고려한 주민투표 실시구역 설정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창열 씨는 정부 정책이 신뢰를 얻기 위해선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씨는 “폐기물 보관하는 거,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는데, 괜찮으면 여기만 하지 말고 대구에도 서울에도 보관해야 한다”며 “전기는 똑같이 쓰는데, 앞으로 주민들에게는 백혈병이든 갑상선암이든 후손들에게 문제가 생길 것이다. 주민 입장에서는 진실되게, 실상이 어떤지, 발전소 문제는 어떤지 진실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도 입장 정하기 어려운 고준위 방폐장 문제
“현실적으론 적합한 방안 찾기까지 기존 부지 보관해야 할 듯”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 투표 당시 이상홍(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씨는 투표 반대 운동에 나섰다. 이 씨는 투표 당시 상황에서 여러 부정과 비리를 목격했다. 당시 투표는 주민투표법에 따라 진행됐는데도 현장에서 지켜볼 때는 부재자 투표, 관권선거 등 문제가 다수 적발됐다는 것이다.

이 사무국장은 “당시 부재자 투표는 우리가 지금 아는 방식인 동사무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서 투표하는 게 아니고, 투표용지가 집으로 배송되는 거소투표였다. 상당수가 거소투표로 했는데 어떤 마을에서는 이장이 마음대로 부재자 신고해서 투표용지를 받아서 찬성 도장을 찍고 통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며 “어떤 젊은 부부가 투표하러 갔는데 선거인 명부에 이미 투표한 걸로 처리된 적도 있다. 항의해도 먹히지 않더라. 유사한 민원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 지역의 보상 문제에서도 어느 지역을 피해 지역으로 선정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라며 “동경주가 생활권이 분리돼 있다. 울산보다도 더 멀리 있는 경주 중심가 시민들도 투표했는데 오히려 지역에서 가까운 울산은 투표 대상에서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인구가 적은 지역에 반대표도 적다. 이런 지역을 정치인이 선호하고, 그런 지역을 선정해서 과학의 이름으로 그곳이 안전한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은 정치적으로 유리한 곳인데 과학적으로 안전한 곳이라고 포장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준위 방폐장과 관련해 이 사무국장은 현재 환경단체 사이에서도 합의된 입장이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한다. 현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방안과 관련해 안전성이 입증된 처분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입지를 정해 처분에 들어섰을 때 문제가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사무국장은 “핀란드에서 지하 500미터를 파고 묻는다는데, 그 기술이 증명된 것도 아니고 한국은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연구가 제대로 안 돼 있다. 섣불리 부지선정을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맥스터를 계속 증설하는 상황도 용인할 수 없다. 딜레마에 있다”며 “현실적으로 보면 정말 지역 주민에게 죄송한 말이지만, 앞으로 100년 동안은 원전 부지에서 보관하면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더이상 핵폐기물을 만들지 않도록 탈핵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최적의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1. 김태현, 김홍규,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 주민투표 결과의 공간적 패턴 분석」, 『한국도시지리학회지』, 제13권 2호,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