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작은 공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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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삶을 일치시키는 건 참 어렵다. 나처럼 말이 많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직업을 가지면 더더욱 그렇다. 기후위기에 대한 기사를 쓰고도 일회용품을 마구 쓸 때, 일을 하면서 너무 쉽게 타인을 평가할 때, 내 일을 남에게 맡기면서도 그걸 몰랐다는 걸 깨달을 때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멋진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경각심을 놓지 않게, 정신을 차리게.

‘운동가들’ 기획기사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했다. 매달 한 명씩 활동가를 만나 인터뷰하는 기획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활동가를 1993년생인 내가 만나고, 1980년대 사회운동을 시작한 활동가는 1985년생 선배 기자가 만난다. 기사에는 복지, 여성, 장애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활동가, 은퇴를 앞둔 활동가들이 등장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한다. ‘어떻게 활동가가 됐는지’, ‘선배 활동가들과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없는지’ 고리타분한 질문을 던지면 그들은 질문을 뒤집는다. 활동가라고 규정하는 범위를 넓혀야 한다거나 선배들의 단물을 빼 먹을 작정이라거나.

기획을 시작한 또 다른 이유는 절박함이다. 활동판에 더 이상 새로운 인물의 유입이 없는 것 같은데 이거 괜찮냐고, 이렇게 고여있다 다 함께 멸망으로 가는 거냐고 농담 반 진담 반 누군가 말했다. 대구시에서 운영하던 청년활동가 인건비 지원 사업이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새로운 인물의 유입이 대폭 줄었다고 덧붙였다. 인건비 지원 사업만 줄어든 게 아니다. 작은 모임을 지원하고 마을 공동체를 육성하는, 다른 삶을 고민하는 이들의 선택지가 전반적으로 줄었다.

절박함 또한 관성이 될만큼 멈춰 있다고 느낄 때 최태현의 책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읽었다. 저자는 ‘작은 공(共)’ 개념을 말하는데, 전지구적 빈곤이나 기후에 대응하려는 지역적 모임 같은 걸 예로 든다. ‘상당한 정치적 자산을 소유한 이들이 아니라 오로지 사회적 연대만이 자산인 이들에게 작은 공은, 그것이 마치 ’계‘처럼 각자의 자원을 모아 자신들의 대표자에게 몰아주든, 작은 공의 관계적 속성 자체에서 새로운 정치적 자원을 창발시켜 공유하든, 개인에게서는 불가능한 정치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혼자일 때 그저 혼자일 수 밖에 없던 많은 장애인이 장애인운동의 최전방에 서 있을 수 있는 건 그들이 함께이기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작은 공들을 자꾸 조명하려 한다. 지금보다도 어릴 땐 투표로 세상을 바꾸거나 광장에서 시대가 변화하는 상상을 했는데, 이젠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어쩌면 그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대신 작은 공들을 만나며 조금씩이나마 나부터 변화하려 한다. 그들과 만나 드는 복합적인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게 되는 순간을 기사에 담고 싶다. 평평하지 않은, 다각형 모양으로 복잡한 세상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이들이 주인공인 기사를 쓰고 싶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