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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요. 살려주세요”
#장면 1. 위협적인 복장을 착용한 한 남성들이 짬뽕을 먹으러 가던 이주민 두 명을 붙잡아 무릎 꿇린다. 한 이주민을 앞으로 넘어뜨리고 팔을 꺾는다. 팔이 꺾인 이주민은 힘없이 호소한다. 이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하는 사람도 있다. (이주민 폭행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동시에 ‘스탑’을 외친다.) 경찰이 등장했고, 이주민을 체포한 사람들에게 호통친다.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폭력을 행사하느냐고.
#장면 2. 버스를 운행하던 기사가 갑자기 출입국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차량을 발견하고 도주한다. 탑승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살려달라며 울부짖는다. 도주할 길이 없었고, 출입국 차량과 결국 충돌된 다음 전원이 체포된다. (관객들은 다시 ‘스탑’을 외친다.) 체포 후, 연극에 참여한 결혼이주여성이 말한다. “한국인 김민수(가명) 아저씨는 이주노동자를 동료로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동료 이주노동자를 외면할 수 없었던 김민수 아저씨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아저씨 힘내세요. 우리는 아저씨 풀려나올 때까지 함께 할 거예요.”
이주민 사회에서 두 인물이 화제다. 한 명은 사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검문하고 붙잡아 추방시키는 박진재 전 국회의원 후보다. 보도에 따르면 박 씨가 주도하는 자국민보호연대 회원들은 최근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미등록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즉시 추방시켜야 할 존재로 여긴다.
다른 한 인물은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현장을 피하려고 버스를 운행하다가 출입국 차량을 박고 실형을 선고받은 김민수다. 이주민들은 김민수 이야기를 이주민을 동료로 여기고 그들의 사정을 살피려 한 사람도 있다는 사례로 받아들인다. 두 사례는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이주민을 공존해야 할 이웃으로 여기느냐는 기준으로 보면 대척점에 있다. 이주민들은 두 사례가 강제추방 제도로부터 비롯된 문제적 상황이라며, 비극이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관련 기사=접견 시간은 10분, 동료시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24.2.28.))
28일 오후 4시 국채보상공원 화합의 광장에서 2024 세계노동절 대구경북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대경이주연대회의와 경산이주노동자센터가 주최한 이날 집회에서는 이주민들이 3주가량 연습해 준비한 두 단막극이 펼쳐졌다. 연극을 관람하던 120여 명의 참가자들은 사적 체포 장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 장면 등에서 ‘스탑’을 외치며 공연에 참여했다.
연극에 배우로 참여한 한 결혼이주여성(달서구, 35)은 “우리도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 친구도 2월에 (사적 체포로) 잡혀갔어요. 그리고 본인이 아닌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걱정 때문에 사고를 낸 기사분 이야기를 접하고 너무 슬펐는데, 그래서 연극도 만들게 됐어요. 이 두 문제는 강제추방 제도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에요”라고 말했다.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A(36) 씨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올 때 무슨 일을 어디서 할 지도 모른 채 온다. 일이 맞지 않아도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비자 연장도, 사업장 이동도 사장이 허락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돈을 안 줘도, 위험한 일을 강요해도 안 한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불법 사람을 만드는 제도가 불법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마음대로 잡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때리는 사람들이 범죄자다. 우리가 여기서 일하는 게 한국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자국민보호연대 활동을 주도하는 박진재 씨는 현재 대구경찰청 수사를 받고 있다. 박 씨는 본인의 폭행 등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또한, 본인이 경찰과 합동작전을 하기도 하며, 본인의 체포 또한 상대가 현행범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관련 기사=극우정당 후보가 올린 미등록 이주민 체포 영상, 내 남편이었다(‘24.4.8.))
하지만 박 씨가 속한 자국민보호연대는 사적 체포 과정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신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금품을 갈취해 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근 경찰은 충북 지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폭행하고 위협해 1,700여만 원 상당의 금품을 갈취한 자국민보호연대 소속 회원 3명을 구속하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감금, 공동공갈)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충북 지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십수 명을 무작위로 붙잡아 가스총과 삼단봉으로 폭행하고 위협했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이주노동자를 발견하면 임의로 제작한 사설탐정 신분증을 보이며 외국인 등록증을 요구했고, 이주노동자가 도망가면 추격해 체포하고 폭행했다. 이후 체류 자격을 문제 삼지 않는 조건으로 수백만 원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