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그저, 음유시인 ‘아치의 노래, 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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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혹은 중세 유럽에서 시와 노래를 짓는 이들을 음유시인이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에서 음유시인들은 늘 환영을 받았다. 심지어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누리며 성대한 대접을 받았다. 음악가 정태춘은 음유시인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가요계를 논할 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원로가수 중 한 명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사회 운동가, 시인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정태춘의 노래는 생소하고 그의 존재감도 낯설다. 원로가수로 나훈아, 조용필은 알아도 정태춘은 누군지 모를 거다. 정태춘 역시 가요계에서 그들 못지않은 거물이다.

정태춘의 존재는 국내 가요계에서 음악적 측면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화 운동을 겪은 세대에게는 거리와 광장에서 사회 참여적 노래를 불렀던 저항 가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태춘이 한국 가요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건 사회운동을 벌인 가수라서도 아니다. 정태춘은 부인이자 가수 박은옥과 함께 한국적 멋이 담긴 노래와 서정적 가사가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불렀다. 7080 노래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정태춘 부부는 서정적인 포크 가요를 불렀던 부부 가수로 남았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은 정태춘의 음악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가 40년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이야기를 정태춘 부부의 28곡으로 빼곡하게 담아냈다. 정태춘이 유명인과 얽혀 역사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는 둥, 획을 긋는 일을 했다는 둥의 미화는 없다. 그가 왜 음악을 하는지에 대해 인터뷰하고 정태춘이 어떤 사람인지 주변인들에게서 이야기를 듣는다. 이를 통해 그의 음악적 궤적 안에 담긴 철학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정태춘의 현재를 비추며 그가 첫 음반을 냈을 때를 회상하면서 출발한다. 1979년 MBC 신인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 부문상까지 수상한 신인은 두 번째 음반과 세 번째 음반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경제적 곤궁을 겪는다. 하지만 네 번째 음반부터 부인 박은옥과 듀엣을 하면서 부부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가 본격화된다. 그리고 전국을 순회하는 공연도 시작한다. 이때부터 사회적인 고민도 하게 된다.

다큐는 정태춘이 가요계에 남긴 업적은 길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한다. 정태춘은 사전심의 제도라는 검열에 맞서 싸우고 폐지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수많은 음악인이 검열의 칼 아래 금지곡 판정을 받고 음반을 내지 못했는데 정태춘은 군부독재 시절부터 정면으로 맞섰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 정태춘을 저항가수로 부르지만 그는 민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민중의 삶을 주제로 노래를 불렀다. 투쟁 한복판에서 노래를 부르고 기사나 책 속 인물을 지나치지 않고 낯선 이의 상황을 상상하고 공감하면서 일일이 떠올리며 곡을 썼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정태춘에 대해 “모든 것을 떠나 과거 이름만을 먹고살지 않고 지속적으로 신보를 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는 국보급 포크 뮤지션”이라고 평했다. 정태춘은 주기적이진 않지만 새 음반을 내고 있다. 갈수록 저항의 목소리보다는 민중의 삶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짙어진다. 10년간 음반을 제작하지 않던 때 부인 박은옥이 세상에 의미를 던지는 것만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노래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설득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서는 정치적 사건이 없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가 다소 헐겁게 느껴진다며 정태춘과 유대가 깊지 않고 음악과도 크게 연관 없는 이들이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오히려 정태춘의 대중음악사와 사회운동사적 위치보다 민중을 노래하는, 고유한 정서를 내포한 음악적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대중음악가로서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영화에선 공연 도중 정태춘이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자, 관객 두 명이 “이념이 아니라 노래를 들으러 온 것”이라며 거세게 항의하며 퇴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태춘을 저항가수로 기억할 수도 있고, 서정적 포크 가수로 기대할 수도 있다. 두 모습 가운데 하나만 도드라지는 가수가 아니다. 그저 음유시인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