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습니다”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치료제 있어도 속수무책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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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저는 농성장 바닥에 누워 투쟁했지만, 40대에 이른 지금, 그나마 제 삶에 자유로움을 주었던 오른쪽 손가락마저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점점 손에 힘이 빠지는 걸 느낄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세계적으로 처음 안락사를 시도한 사람은 근육장애인들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살 수 있는 치료제가 있다고 합니다. 저를 포함해 이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치료제를 지원해주십시오.”  노금호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

▲대구장차연 등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를 위해 대선후보에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금호 척수성근위축증 당사자이자 한자협 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가연 비마이너 기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 등은 12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를 위해 대선후보에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척수성근위축증 환자 치료제 급여적용 확대를 공약에 반영하도록 요구하기 위해 국민의힘 당사 앞을 찾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측도 답이 없어 요구안을 들고 찾아갈 예정이며, 이재명 대선후보가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남인순 국회의원을 통해 포용복지국가위원회에 요구안을 전달한 상황이다.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은 운동 기능에 필수적인 생존운동신경세포 단백질의 결핍으로 전신의 근육이 점차 악화되는 희귀질환이다. 과거에는 별다른 치료제가 없었지만, 지난 2016년 최초 치료제인 ‘스핀라자(뉴시너센나트륨, nurinersen)’가 개발되어 한국에서도 2019년부터 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스핀라자의 1회 주사 비용은 약 1억 원이며, 보험급여 적용 시 환자 본인부담금은 약 600만 원 수준이다. 치료를 위해서는 첫해에는 6회, 이후부터는 4개월에 한 번씩 투여해야 한다. 설령 보험급여를 적용받더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든다.

스핀라자는 모든 유형 및 전 연령대의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유형과 연령을 따지지 않고 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비싼 약값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환자가 총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치료제 급여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약제급여기준 소위원회의 조건에 따르면 △척수성근위축증 유전자의 결손 또는 변이의 유전자적 진단 △만 3세 이하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 발현 △영구적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1일 16시간 이상, 연속 21일 이상)를 모두 만족해야만 치료제에 대한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노금호 척수성근위축증 환자이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합자협) 부회장은 1986년 ‘근디스트로피(muscular dystrophy)’ 진단을 받았으나, 2021년 검사에서 상세불명의 척수성근위축증으로 다시 진단받았다. 그러나 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는 세 가지 조건 중 ‘만 3세 이하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 발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존재하지 않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아래 심평원)으로부터 보험 적용이 최종 불승인됐다.

그의 담당 의사는 ‘통상 신경근육질환의 경우, 발병 과정이 서서히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병원에 방문할 정도의 증상 변화를 감지하기에는 시일이 걸리는 점 등을 고려해 만 3세 이전에 임상 증상과 징후가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소견서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심평원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만 3세 이하에 척수성근위축증 관련 증상과 발현 여부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며 불승인했다.

노 부회장은 “30년 이상 알고 온 저의 질환이 사실과는 다른 상황에 매우 당혹스럽다. 국내에 관련 치료제가 급여 등록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신청했지만, 만 3세 이하에 증상과 징후 발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절망스럽다”라며 “어릴 적, 언론에서 저와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을 위한 치료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아들의 병을 고쳐보겠다며 주식을 했다가 돈을 날린 적이 있다. 최근에는 아버지가 우연히 치료제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돈이 없어 병을 못 고쳐줘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저는 살고 싶다. 정말 열심히 살며, 투쟁하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척수성근위축증 환자는 관련 질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비교적 최근에서야 진단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전체 환자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현재 질병관리청에 등록된 환자의 질병코드(G12.3, G12.9 등)로 짐작할 때 200명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

노 부회장과 같은 척수성근위축증 환자인 안석희 한국근육장애인협회 간사는 “저는 스핀라자 보험급여 대상자로, 2019년 투여를 시작해 11회차의 투여를 앞두고 있다. 스핀라자 보험급여 초기에는 저 역시 보험급여를 받지 못해 투여가 불가능한 대상자였다. 당시 SMA 최종진단을 받아 다니고 있는 병원 최초 진료기록이 3세를 넘긴 나이로 기록되어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몇 달 동안 여러 병원에 연락한 결과, 3세 이전의 진료기록을 찾아내 보험급여를 승인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안 간사는 “만일 제 진료기록을 가진 병원이 문을 닫아 저의 기록이 파기되었다면, 저는 치료제를 투여받지 못했을 것이다. 치료제가 있음에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좌절이고 아픔”이라고 밝혔다.

노 부회장과 20여 년간 장애인 투쟁활동을 해온 최용기 한자협 회장은 “노금호 동지는 누구보다 혈기왕성했고 현장에 앞장서서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해 투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삶에 희망이 없는 듯한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최 회장은 “성인이 되어서 그 병명을 알았고 또 치료제가 있다는 소리에 얼마나 기뻤겠는가. 치료제가 1억이라고 한다. 한국은 돈 없으면 치료제가 있어도 죽어야하는 나라인가. 노금호 동지를 살리고 싶다. 앞으로 좀 더 노금호 동지와 차별받고 억압받고 소외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더 투쟁하고 싶다”라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말했다.

따라서 대구장차연 등은 대선후보에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보험적용 확대 공약 수용을 요구하며 △스핀라자 보험적용 현행 제한 기준 폐지 및 급여적용 확대 △스핀라자 외 SMA 치료제의 개발 및 등재에 따른 보편적 적용 △희귀난치성 질환자 치료제에 대한 자부담 경감 대책 마련 △척수성근위축증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정책 마련 △전 연령대에 걸친 SMA 환자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계획 수립 등을 촉구했다.

기사제휴=비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