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하루 전…“5인 미만, 긴급 대책 촉구”

16:02
Voiced by Amazon Polly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미만 사업장 확산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 당사자들이 고용노동부에 이를 최소화할 긴급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대재해처벌법에 5인 미만 사업장이 적용 제외되면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수법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오전,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입법추진단)은 서울 광진구 한국종합안전(주)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권리찾기유니온과 법률사회단체가 함께하는 입법추진단은 그동안 근로기준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적용 제외되는 문제를 지적해온 바 있다. 이들은 법 제도 전면 개정안이 이뤄질 때까지 “차별의 확산을 최소화할 긴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용노동부 지정 기관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논란

▲사진=권리찾기유니온

고용노동부 지정 재해예방전문지도기관 한국종합안전에 별도 등록된 비영리법인 협회에서 해고된 김민정 씨는 “노동부 지정 기관도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실정”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을 관리·감독하는 기관부터 제대로 운영하는지 노동부의 점검이 먼저 필요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19년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겪어온 그는 이를 한국종합안전 사장에게 신고했다가 해고됐다. 김 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도 쟁점이 된 것은 ‘5인 미만 사업장’ 여부였다.

김 씨의 사건을 대리한 허성희 노무사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형식적 징표를 근거로 두 개의 사업장을 별개의 사업장이라고 판단했고,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곧바로 재심을 신청했지만,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은 상시 근로자 수 1인 사업장이라고 판단해 사건을 각하했다”라고 설명했다.

김민정 씨는 “협회는 내외부 간판도 없고, 지도에서 검색도 되지 않는다. 직원 30명 이상인 협회 회원사 중 하나인 한국종합안전에 칸막이로 가리고 자리를 하나 만들어 이곳이 협회니, 협회 서류를 처리하라고 했다”라며 “30명 이상의 직원과 네 일, 내 일 없이 일하고 회식에 밥도 먹었다. 시무식과 창립기념일도 참석했지만, 해고할 때는 나만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허성희 노무사는 “김민정 씨는 한국종합안전의 지휘체계에 편입돼 감독을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해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만 한국종합안전과 김민정 씨와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라며 “한국종합안전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면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나, 이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차별 제도를 악용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김 씨 사건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판단돼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과 해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례다. 이렇듯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지만, 근로기준법에 이어 곧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있다. 이에 당사자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관련한 긴급 대책을 촉구했다.

“5인 미만 제외 법제도 전면 개정해야…
사업장 규모로 제한하는 법, 근거 없어“

입법추진단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공포된 지난해 1월 26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과 권리찾기유니온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의견서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고용노동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법률의 일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청구인들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국가가 다하지 않았다거나 평등권, 재판절차진술권이 침해됐거나 근로의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의 합헌 의견서가 차별제도를 옹호했다며 이에 대한 사과도 요구했다.

아울러 입법추진단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전면 적용 개정안 실현 전까지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며 △‘사업주의 일방적 주장 및 위장 조치에 순응해 상시근로자 수 및 적용대상 여부를 예단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행정 지침 전달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여부를 의무 점검하는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 채택 등을 요구했다. 이어 “4대 보험 미가입 노동자들이 손쉽게 노동자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당사자 직접 조사에 의한 ‘선제적 근로자지위 확인 제도’를 도입하고 실질적 재정 지원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끝으로 이들은 “근로기준법에 이어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휴일법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빼앗아 사회 구성원 다수를 위험에 빠뜨리는 차별적 법 제도를 전면 개정”도 요구했다. 특히 이 요구에는 ‘5인 미만’ 기준에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함께했다.

하태승 민주노총 법률원(헌법소원 청구인단) 변호사는 “한국은 OECD 가입국 가운데 산재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중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수 대비 재해자 비율이 가장 높다. 2020년 기준 전체 재해자의 33%, 사망자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재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단지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도저히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미소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노무사는 “1954년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정 때 국무회의 및 제정 전후로 유관기관의 공청회나 관련 근거 자료 하나 없이 제정됐다. 적용 제외 기준이 된 숫자 ‘5’의 기준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 제외 기준은 과거 최저임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현재 중대재해처벌법등에관한법률, 공휴일에관한법률 등의 적용을 배제하는 주요 기준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영세사업주가 힘들면 법을 준수할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써야지 왜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근거 없는 희생을 강요하나”라고 비판했다.

기사제휴=참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