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동티모르에서 순직한 전우 5명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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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오에쿠시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자랑스러운 내 아들 정중아! 너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믿는다.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한다.”

2003년 3월 6일 동티모르에서 평화유지활동 중에 장병 5명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위 글은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고 김정중 병장’의 부모님께서 동티모르에 있는 추모비에 올린 내용이다.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님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다. 볼 때마다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유족은 일평생 가슴 아프게 그리워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이분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위로와 존중이 필요하다. 명예롭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해야 한다. 호국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간 ‘호국보훈’을 말로만 했음을 고백한다. 오는 현충일을 앞두고 참회하면서 국립대전현충원에 미리 다녀왔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서 필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우리는 국가를 지키다 목숨 바쳤다. 내 가족을 지켜다오”라는 속마음이 가슴으로 전해 왔다. 이는 영웅들의 진심일 것이다.

충혼탑에 참배하고 먼저 동티모르에서 평화유지활동 중에 순직한 전우 5명을 찾았다. 고 민병조 중령(육사43기), 박진규 중령(육사46), 백종훈 병장(통신), 최희 병장(통역),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한 김정중 병장(운전) 등 5명이다. 필자(당시 합참 공보장교)는 2002년 10월 평화유지활동 홍보를 위해 현지에 갔다가 위 전우들을 만났다. 또 영웅이 되어 귀국했을 때 공항에서 맞이해 각별하다.

2003년 3월 6일 베트남전 이래 해외파병부대에서 최초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국방부는 즉시 동티모르 현지에서 유족들과 함께 6일 동안 조사했다. 유족들은 현지의 열악한 상황과 열대성 기후의 특이현상을 직접 보고 천재지변임을 인정했다. 더욱이 애통해하는 장병들과 현지 주민들을 오히려 위로했다.

영웅들은 3월 14일 06시경 인천공항 화물터미널로 귀국했다. 여러 사정으로 바로 국군수도병원 영안실로 모시기로 했다. 함께 현지에서 귀국한 유족들은 공항 터미널에 나와 계셨다.

3월 새벽이라 쌀쌀했다. 필자는 유족 외 합참 의정장교(중령)과 동기생 대표와 기다리던 중 알루미늄관 5개가 터미널로 나오자 격분했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영웅이 귀국하는데 태극기로 예의를 갖추지 않느냐”며 다시 터미널 안으로 돌려보냈다. 유족들은 “동티모르 현지에서 경황이 없었을 텐데 이해한다”며 필자를 위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규정상 알루미늄관 안에 태극기로 고이 싼 목관을 보관했다. 유족들은 동티모르 평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영웅들을 생각하여 그 어떤 것도 포용하신 것 같다.

지금이라면 아마도 대통령님께서 직접 공항 터미널로 나가셨을 것 같다. 얼마 전 ‘영웅들의 귀환’ 때 대통령님께서 직접 공항에 나가신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1년 후, 필자는 동티모르에 기자 10여 명과 함께 재방문했다. 전우들을 데려간 에카트강에도 가보았다. 상류에 내린 집중폭우를 순식간에 급류로 만든 민둥산이 보였다.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주민은 “장병들이 서로 구하려다 모두 급류에 휩쓸려 갔다”고 눈물로 증언했다.

내년이면 순직 20주기다. 해마다 기일 날에 유족들은 이 묘역에서 만나 서로 위로하며 그간 삶을 나눈다. 해마다 동참하는 당시 상록수 부대장(7진) 김영덕 예비역 대령의 전언이다.

▲2020.11.5 오에쿠시 에카트 강가에서 지난 2003.3월 집중 호우로 인해 불어난 에카트 강 강물에 휩쓸려 순직한 우리 상록수부대 장병 5인을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사진=주 동티모르 대사관]

동티모르에서도 주한 대사와 주민들이 기일 날에 추모한다. 빨라반 고등학교에는 ‘민병조 교실’을 만들어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에카트강가에 추모비도 세워졌다. 부대 주둔지가 있던 오에쿠시 시내 한가운데 추모공원도 있다. 이곳 추모비 앞에는 전우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뒤에는 유족들이 쓴 글이 슬픔을 승화시켜 놓았기에 더욱 더 진한 울림을 주고 있다.

필자는 국방부에서 근무할 때 힘들고 지치면 국립서울현충원에 갔고 육군본부에서는 대전현충원에 갔다. 갈 때마다 신기한 체험을 했다.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호국영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이다.

현재 현충원이나 호국원 그리고 민주묘지와 신암선열공원은 모든 곳이 열린 공간이다. 엄숙하면서도 평화롭고 아름답다. 다만, 때때로 적막감이 흐른다.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것이 유족들을 위로하고 존중하는 길이다.

그리하면 호국보훈의 달 6월엔 묘지 주변에 꽃잔디가 더욱 짙푸르를 것이다. 새들의 울음도 슬프지만은 않을 것이다. 83만 보훈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혼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영웅을 기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그 유족을 위로하고 존중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도리이다.
호국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이다